[전례 해설] 신앙 고백과 신자들의 기도 “사도 신경을 못 외우면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예비자들과 면담할 때 주의를 준다. 요즘 예비자들은 기도문을 외우려 하지 않는다. 세례를 받으려면 ‘주요 기도문’을 암기해야 하는데 60세 이상의 노인이라도 사도신경과 십계명까지는 암기하라고 처음부터 다짐한다. 신경(信經)은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 믿음을 자랑하듯 고백해야 한다. 신자는 소신을 피력할 줄 알아야 한다. “성당에 다닌다더니 무엇을 믿는가?”라고 누가 묻거든 사도 신경을 외듯이 줄줄 이야기하여라. 신앙고백 성서 봉독과 강론이 끝나면 신자들은 들은 것에 대한 답변으로 신경을 함께 외운다. 이것은 독서와 강론에 대한 응답일 뿐 아니라 말씀의 전례 전체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큰 ‘아멘’이다. 미사 경본 총지침(43~44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신경은 미사 중에 성경 독서와 강론으로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며, 성찬의 전례 시작 전에 신앙 개조를 상기하는 행위이다. 신경은 미사 집전자와 교우들이 주일과 대축에 외워야 한다. 노래로 할 경우에는 모든 이가 함께하든지 교대로 한다.” “매일 미사”(미사 통상문) 책에 보면 두 종류의 신경이 나와 있다. ‘신앙 고백’이라고 표시한 부분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 신경’이고 그 다음 부분은 ‘사도 신경’이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 신경 예수님은 신이 아니라 덕을 갖춘 반신(半神)이라고 주창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에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사제인 아리우스(Arius 250?~336년)이다. 또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사상을 아리우스주의(Arianism)라 한다.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자 교회는 니케아 공의회(325년)를 소집하였다. 당시 동방 교회는 백여 년 전부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세례를 베풀 때 신앙 고백을 하였고, 서방 교회는 사도 신경을 사용하였다. 이 신앙 고백문을 모체로 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배척하는 신경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니케아 신경이라고 한다. 이어서 제1차 콘스탄티노폴 공의회(381년)가 열렸는데 그 결정은 니케아 공의회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보아 ‘니케아 콘스탄티노폴 신경’ 또는 ‘니케아 신경’이라고도 한다. 이 신경은 5세기에 시리아에서 성찬의 전례 때 사용되었다. 515년경에는 콘스탄티노폴 대주교인 디모테오가 미사 때마다 이 기도문을 외우도록 하였다. 6세기 말에는 스페인에 전해졌고, 1014년에는 헨리 2세의 요청에 의하여 로마에 보급되었다.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신경을 주일과 대축일에 외우도록 하였다. 미사 때의 신앙고백 미사 중에 신경을 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세례의 갱신이요, 둘째는 믿음의 선포이며 셋째는 하느님 찬미이다. 첫째로 세례의 바탕은 믿음이다. 믿음 없는 세례는 영혼 없는 인간과 같다. 믿음을 재확인할 적에 성령이 임하시고 세례받은 선자이며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우친다. 이렇게 믿음에서 세례의 효과가 나오고 영성체로서 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다. 둘째는 신앙의 선포이다. 믿음은 암송이 아니다. 결단이요 고백이며 선포다. 신자 공동체가 함께 신경을 외울 적에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공적인 견해요 신앙인의 건전한 상식이며 생활의 척도임을 밝힌다. 냉담자란 무엇인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회의와 주저와 방황, 우유부단, 우왕좌왕하는 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너 이것을 믿느냐?” “예, 주님.” 예수님의 질문과 마르타의 응답이다(요한 11.26-27참조). 이 신앙 고백은 바로 오빠 라자로의 부활을 가져왔다. 신앙은 기적을 낳는다.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 셋째는 구원의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선경은 시(詩)의 한 토막처럼 구와 절로 다듬어져 있다. 그래서 시편을 노래하듯 하느님을 찬미한다. 세례로 말씀의 진리를 깨우치고 하느님 나라와 영생과 영복을 거저 주신 주님을 거듭 찬양한다. 신자들의 기도로 말씀의 전례가 끝나고 성찬의 전례로 넘어가며 기도 지향을 봉헌으로 연결한다. 머리숙여 절하라 니케아 신경 중간부분에서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으며” 또는 사도 신경에서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를 합송할 때 신자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도록 지시하고 있다. 특별히 예수 성탄과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에는 몸을 굽혀 깊은 절을 한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흠숭과 감동의 표현이다. 하느님이 사람으로 오시어 구원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 머리숙여 주님을 내 안에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살게 되어 확신을 가지고 서슴치 않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에페 3,12).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들을 격려하며 기도하였다.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3,17). 신자들의 기도 헌금을 많이 낸 개신교 신자가 있었다. 예배 중 목사님이 그 사람을 칭찬하며 기도하였다. “우리 성도 홍길동님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 하느님 아버지의 집을 훌륭히 마무리하도록 노고와 정성을 다하여 모은 OO의 금액을 모두 바쳤사오니 주님께옵서 그를 돌보시고 백배의 상을 내리옵소서.” 누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가. 우리 공동 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미사 총지침(45항)에 보면 기도의 순서가 나와 있다. (1)교회에 필요한 일들. (2) 위정자와 세계 구원. (3) 온갖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 (4) 지역 공동체의 소망. 기타 견진, 혼인, 장례 때에는 특수한 목적의 기도 지향을 포함할 수 있다. 이렇게 신자들의 기도(또는 공동 기도)는 개인의 이해 관계를 떠나 전인류와 교회를 위한 책임감을 부각시킨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1디모 2,6). 첫째 부분의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를 말한다. 즉 하느님의 백성,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와 평신도, 수도자, 성소 등을 포함한다. 둘째 부분의 세계 구원은 전인류 즉 모든 민족, 국가, 종교와 위정자, 미신자, 배반자의 회개, 위기와 평화를 위한 것이다. 셋째 부분은 고통받는 이들이다. 계층별로 가난한 이, 소외된 이, 노인, 병자, 실업자, 감옥의 수인, 인권 등을 위한 기도이다. 넷째 부분은 지역 공동체 즉 교구, 본당, 각종 단체, 가정, 냉담자, 연령을 위한 내용이다. 공동 기도의 특성 초대 교회는 말씀의 전례가 끝난 후 예비 신자들을 돌려보내고 세례받은 신자들만 남아 기도하였기 때문에 신자들의 기도라 하였다. 현재는 신자들이 기도에 직접 관여한다는 뜻이며 신자들이 중심이 되는 기도이다. 미사 지침에 보면 먼저 사제가 신자들에게 기도할 뜻을 전한다(기도 권고). 다음에 대략 다섯 가지의 기도 지향에 따라 부제나 평신도가 나와서 내용을 말한다. 교우들은 공동으로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또는 “주여, 당신 백성에게 은혜를 주소서.” 하고 응답하거나 노래로 답한다. 끝으로 주례 사제가 맺음 기도를 한다. 두 번째 특성은 하느님께 바치는 간청 기도이다. 마리아나 성인이 아닌 하느님께 직접 드리는 기도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셋째는 ‘보편적인 선’ 즉 전인류와 세상 구원을 지향하고 있다. 네 사람이 중풍 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보낸 이야기가 있다(마르 2,1-5 참조). 환자를 위하여 네 명이 협조하였고 사람이 많아 지붕을 벗기고 요에 눕혀 내려보냈다. 이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았다. 이렇게 신자들의 기도에는 힘과 질서, 행동과 품위, 간단 명료, 순수 신앙, 감동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이 기도는 짧은 강론이나 신조, 신문 사설, 정치 평론, 수다스런 설명이 아니다. [경향잡지, 1992년 2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천안 봉명동본당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