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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29 조회수937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Lord, I am not worthy
to have you enter under my roof;
only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Mt.8.9)
 
 
제1독서 이사야 4,2-6
복음 마태오 8,5-11
 
요즘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보면 도대체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낮 역시 책을 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피곤함을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안경에 문제가 있나 싶어 며칠 전에 안경점을 찾아갔습니다. 노안이라고 합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말했지요.

“제 나이가 몇인데 벌써 노안이 옵니까?”

그러자 책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일찍 노안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경렌즈를 고르는데, 카탈로그에 ‘노안렌즈’라고 쓰여 있습니다. 왠지 서글프더군요. 괜히 확 늙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이 눈을 40년 넘게 잘 썼으면 이제 좀 성능이 떨어질 때도 됐지 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젊어지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젊어지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젊게 보이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젊어 보여요. 동안이세요.’라고 말하면 얼마나 좋아합니까? 이는 화장품 가게만 가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노화방지’라는 선전을 내 걸고 있는 화장품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늙는 것을 거스르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피부의 노화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피부의 노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정신의 성숙도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육체가 아니라 겉으로 보이지 않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즉,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성능이 떨어지는 보이는 육체에 신경 쓰기보다는 영원히 성능이 향상되는 정신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아닌 겉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더 강조하는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부탁을 들어주셨지요.

오늘 복음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백인대장이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그는 직접 가서 고쳐주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렇게 대답하지요.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직접 듣고 직접 봐야 믿겠다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더군다나 백인대장은 로마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사람을 왔다 갔다 하게 할 수 있는 권력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직접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더욱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분, 내가 직접 체험해야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주님께 맡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굳은 믿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은 자기 결정에 따르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스캇)




조건 밖에 해결책이(‘좋은생각’ 중에서)

옛날에 아버지와 아들 셋이 오순도순 살았는데 아버지가 그만 병이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세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너희들은 내가 가진 소 열일곱 마리를 내 말대로 나누어라. 첫째는 2분의 1을 갖고, 둘째는 그 나머지의 3분의 2를, 셋째는 그 나머지의 3분의 2를 갖도록 해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세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소를 나눠 갖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동생들은 형에게 한 마리를 반으로 나눌 수 없으니 형이 양보하여 여덟 마리만 가지라고 했다. 형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는 것이 도리라며 아홉 마리를 가지겠다고 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세 아들은 지혜롭다고 알려진 랍비를 찾아갔다. 전후 이야기를 들은 랍비가 말했다.

“내가 소를 한 마리 빌려 줄 테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나눠 보시오.”

소 열일곱 마리에 한 마리를 합치니 열여덟 마리가 되었다. 큰아들이 열여덟 마리의 2분의 1인 아홉 마리를 갖고, 둘째 아들은 그 나머지 3분의 2인 여섯 마리를 갖고, 나머지 세 마리 중에서 셋째 아들이 3분의 2인 두 마리를 갖자 한 마리가 남았다. 그래서 한 마리는 랍비에게 되돌려 주었다. 랍비가 말했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때는 주어진 조건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조건 밖에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나눔과 희생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Little Com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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