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01 조회수986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2월 1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My heart is moved with pity for the crowd,
for they have been with me now for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I do not want to send them away hungry,
for fear they may collapse on the way.”
The disciples said to him,
“Where could we ever get enough bread in this deserted place
to satisfy such a crowd?”
(Mt.15.32-33)
 
제1독서 이사야 25,6-10ㄱ
복음 마태오 15,29-37
 
자매님 두 분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께서 어떤 이혼한 부부를 가리키면서 말했지요.

“그 부부 이혼한 이유가 도대체 뭐래요?”

그러자 다른 자매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응, 결혼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이 말에도 일리는 있지요. 결혼을 안 했다면 이혼할 일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웃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이렇게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할 때가 너무나 많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왔으며, 내 뜻을 더 강조하는 과정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많이 주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 안에 당신께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던 사랑이 가득 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을 보여주셨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희생까지 보여줌으로 인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주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바로 다른 것, 즉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과 판단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주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있던 군중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하고 반문하지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으로 볼 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쁜 소식과 놀라운 일들을 체험한 군중들이 예수님께 먹을 것을 드리는 것이 정상인 것 같은데, 오히려 거꾸로 그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이러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과 판단으로는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기준과 판단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불가능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빵 일곱 개와 약간의 물고기로 사람들 모두를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조각이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차게 되지요.

주님께서 가지셨던 사랑의 마음을 우리 역시 간직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를 통해 큰일을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우리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멋이란 손해를 볼 줄 아는 것, 희생할 줄 아는 것에서 생긴다.(김용옥)





왜 나인지 묻지 않겠다(‘좋은생각’ 중에서)

1960년대 미국의 버지니아 주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곳으로 흑인은 테니스조차 칠 수 없게 법으로 정해 놓았다. 그런 곳에서 가난한 경비원의 아들로 태어난 아서 애쉬는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한 흑인 남성이다. 그는 1968년 US오픈, 1970년 호주우픈에서 우승했고, 1968년과 1975년엔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며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1979년 심장 질환으로 그는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은퇴 후에는 테니스 코치와 방송 해설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흑인들과 빈곤층 어린이를 위한 인권운동가, 자선사업가로 더 활발하게 일했다.

그러나 1990년 그는 몇 년 전 심장 수술 때 받은 수혈로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음을 알았다. 그 후 애쉬는 더 열심히 사회봉사 활동에 뛰어들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3년 그가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뉴스 앵커조차 그의 죽음을 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가장 인간적인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애쉬가 에이즈와 싸울 때 누군가 “왜 신은 당신에게 그렇게 무서운 질병을 주었을까요.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었을 때 ‘왜 나지?’라고 절대 묻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죽음에 대해서도 ‘왜 나지?’라고 묻지 않겠습니다. 내 고통에 대해 ‘왜 나야?’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왜 나야?’라고 물어야 합니다.”

 
 
 
 
 
To Sleep On Angel's Wings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