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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5일 야곱의 우물- 마캐 3,1-12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05 조회수323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3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 ? 8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 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가까이 오시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도록 저희의 마음과 삶을 새롭게 하소서.

독서
신촌에 살던 쌍둥이 언니가, 갈현동 친정집에 간다는 제 말에 신촌에서 갈현동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그래서 집에까지 같이 들어갔다가 혼자 신촌으로 돌아가는 언니를 제가 또 버스 종점까지 두 정거장을 바래다주었습니다. 이런 저희를 보고 누군가는 “너희들 연애하니 ?” 라고 말했습니다. 연애를 하면 그렇게들 하는 모양이지요 ? 길을 함께 나서는 것, 혼자 나에게 다가오도록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같이 가려고 내 편에서 움직이는 것 말입니다.
 
마태오복음 앞부분은 그런 모습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연애’ 로 보여줍니다. 1 – 2장에서는 먼저 하느님이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의 족보와 예수님 탄생에 대한 기록은, 대를 이은 한 집안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삶 안으로 들어오시는, 우리의 골목길을 걸어오시어 우리 집 앞까지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서두에서부터, 우리에게 오시는 그 주님의 이름이 ‘임마누엘’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고 알려줍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3장에서는 다른 방향의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오시는 주님을 맞으러 자신이 앉아 있던 곳에서 일어나 길을 나서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부터 언제나 유혹의 장소인 동시에 하느님을 향한 선택과 결단의 장소인 광야에 나가 주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은, 인간에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을 맞아 그분을 향해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인간의 대표적 응답입니다. 아니, 요한은 예수님께서 바로 가까이 와 계심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기에 맞으러 달려 나갔다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구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는 것이라면, 태중에서부터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심을 알아보고 기뻐 뛰놀았던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마침표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신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려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 ?” (7절)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그들은 다가올 진노를 피하려 하지만 하느님을 향해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오직 자신의 안전이었고, 그것을 위해 요한의 세례에 피신하려 합니다. 마치 세례를 받고 교회에 적을 두고 최소한의 의무를 지키는 것으로 양심의 편안함을 보장받으려는 것과 같은 태도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의 거짓된 태도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께서 오시면 그들이 과연 회개를 했는지, 곧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온 것인지를 드러내시리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엄격한 요구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용서의 복음과 대조시키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누구나 요한에게 찾아와 세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요한한테서는 아직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요한보다 훨씬 강한 분이신 예수님께서 오시어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때는 그들의 감추어진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별로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강조하다 보니, 그것이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복음의 한 부분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한테 “손에 키를 드시고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시는” (12절) 모습을 덮어버리고 보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입맛에 맞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편한 신앙생활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게 와서 물로 세례는 받고 진노는 피하려 하면서도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는 사두가이나 바리사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성찰
신앙은 장신구가 아닙니다. 율법과 규율, 행동과 실천이 신앙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신앙에는 분명 그에 수반되는 요구가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도 아니고 출발점도 아닙니다. 출발점은 다른 곳에, 인간을 향해 먼저 길을 떠나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연애’ 에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응답이 없을 수 없습니다. 외형적인 세례나 명목상의 신자 생활이 아닌, 삶의 증거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길을 떠날 것을,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합니다.

기도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당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시편 51, 12. 14)

안소근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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