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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통즉불통 불통즉통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06 조회수699 추천수8 반대(0) 신고

 

 

통즉불통 불통즉통 - 윤경재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루카 5,18-25)

 

 

한의학의 최고 원전인 황제내경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경구가 적혀 있습니다. ‘소통하면 통증이 없고 불통해서 통증이 온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이 병의 통증으로 고통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不通의 현상을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몸 안이며, 둘째는 나와 남의 인간관계에서 소통이 막힌 때이며, 셋째는 사회와 자연, 나아가 천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 벌어집니다. 

자기 몸 안에서 불통하면 생명의 기운이 막혀 경락이 불통하는 탓에 통증이 생깁니다. 인간관계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억울한 심정이나 분노, 열등감, 공포감, 화병 등이 생겨 결국 자신의 몸에 통증이 온다는 말입니다. 한의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절과 기후변화, 사회병리와 天地自然의 뜻마저 살핍니다. 예를 들면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도발 사건 같은 사회문제도 한 개인에게 압박감으로 작용하여 병이 생긴다는 이치입니다. 결국 한 개인의 병이 자신의 탓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나 자연과 사회의 흐름에도 그 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뛰어난 의사가 되려면 그런 면까지 살펴 합당한 처방을 내고 환자들에게 충고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환자를 대하다 보면 개성이 매우 다르다는 경험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면 금세 죽음까지 생각합니다. 그들은 병이 자신에게 닥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합니다. 곧이어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사실에 분노합니다. 그리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우울의 단계에 빠져 병을 더욱 악화합니다.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잠시 혼란을 겪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의 병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인가 말씀하는 것이 있을 거라며 그것을 읽고 바른 방향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이런 분은 의사의 지시도 무척 잘 따릅니다. 병의 예후도 무척 좋습니다.

제가 아는 한 형제가 건강검진 후에 당뇨병에 걸렸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 형제는 자신의 병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충고를 청했습니다. 그랬더니 누구는 혈당측정기를 사다 주고, 어떤 분은 당뇨에 좋다는 쌀과 야채 등 식품을 구해다 주었답니다. 당뇨병에 관한 서적과 올바른 정보를 찾아주기도 하였습니다. 레지오 모임에서는 이 형제를 위해 당뇨병에 해로운 음식과 술을 자제하고 운동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형제는 자신이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끌 줄 몰랐습니다. 성당에 다닌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기회에 주님의 사랑을 더 살갑게 체험했다고 합니다. 주위 분들이 염려해주시는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얼른 몸을 추스르고 건강을 회복하여야 하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이와 다른 한 분은 폐에 종양이 생겼다는 의사 소견을 받자 그만 모든 연락을 끊고 사라졌습니다. 하던 사업도 갑작스럽게 남에게 넘기고 집도 이사하였습니다. 이런 사실도 연락이 두절되어 이상하게 생각하던 다른 형제가 수소문하다가 어찌어찌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소식이 궁금해서 연락을 넣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중풍에 걸린 환자를 친지들이 침상에 들쳐 메고 예수께 찾아와 고쳐주기를 청합니다. 중풍 병을 치료하려 백방으로 노력했다가 효과가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마지막 심정으로 예수께 매달렸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추측해보면 그들 사이가 끈끈한 애정과 신뢰심으로 맺어졌을 겁니다. 인간관계의 不通에서 오는 병이 아니라는 것이 짐작됩니다.

중국 고사에 전쟁터에 자식을 보내놓고 장수가 자기 아들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어머니가 이제 자식을 영영 잃게 되었다고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 제 목숨을 사리지 않고 전쟁에 앞장서 나서리라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종기는 자식의 몸에 난 병이고 그것을 빨아 준 행위는 인간관계의 치료이며,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외부상황이라는 해석입니다. 귀한 자식이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려면 전쟁이 터지지 않거나 얼른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은 어머니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인간에게 병이 생기는 이유는 물론 자신의 탓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부재도 그 원인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병의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공해나 원전 사고 등으로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환경을 만들었다던가, 특정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때도 있습니다. 이 세 번째 원인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책임 탓에 그 누군가가 병고를 짊어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말씀에는 깊은 뜻이 담겼습니다. 그 환자 한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에게 심각한 죄의식을 심어주고 나 몰라라 하는 모든 사회 상황을 헤아려 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불행을 개인의 죄 탓으로 돌리는 당시 잘못된 사회의식 구조를 혁파하시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용서 선언’을 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깜짝 놀란 것입니다. 자신들이 지녔던 가치관을 송두리째 허무는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 속에서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를 하느님의 뜻으로 포장한 위선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위선을 살펴보라는 의미로 ‘죄의 용서’를 꺼내셨습니다. 사실 복음서에서 병자에게 치유를 베푸시며 죄의 용서를 말씀하신 대목은 이 대목뿐입니다. 그만큼 다른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루카복음서 7장에서 죄 많은 여인을 용서하시는 대목도 병을 치유하는 장면은 아닙니다. 바리사이들에게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여인이 회개하는 태도를 보고 용서를 선언하셨습니다. 두 장면 모두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지적하시는 의도가 담겼습니다. 

예수께서 ‘죄의 용서’를 선언하신 깊은 뜻을 이제 우리는 알아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한 개인의 병이라도 사회 공동체가 그 치료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노령화 사회가 급속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만성질환인 중풍이나 치매로 고생하는 노인을 모시는 가정이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각 가정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환자를 위해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 환자를 수발하기 위해 드는 수고와 정신적, 금전적 지출이 엄청납니다. 우리는 언젠가 노인이 되며 이런 질병에 걸릴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병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렸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이웃과 사회가 책임을 미리미리 나누어 준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용서를 선언하신 뜻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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