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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되찾은 양의 비유 살펴보기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07 조회수658 추천수7 반대(0) 신고
 
 

되찾은 양의 비유 살펴보기 - 윤경재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 18,12-14)

  

되찾은 양의 비유는 마태오와 루카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그러나 본문이 나오는 문맥과 세부 사항을 살펴보면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두 저자의 논점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번쯤 그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도 유익하겠습니다. 

마태오복음서의 구조를 살펴보면 모세 오경이 다섯 개의 책으로 구성돼 있듯이 다섯 개의 담화문과 그 실례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이 비유말씀은 네 번째 등장하는 ‘교회론적 담화문’에 속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교회공동체로 발전했을 때 생기는 문제를 예상하여 해결방법을 적어놓았습니다.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이 모여 한 공동체를 이루면 아무리 교회라 할지라도 소수자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인간 심리를 훤히 꿰뚫고 계시는 예수께서 그럴 때 교회가 어떻게 처신해야 좋은지 이 비유를 통해 밝히셨습니다. 

마태오복음서에서 되찾은 양의 비유는 어떤 이유로든 만약 소수자들이 생기면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찾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 일단 한 공동체가 되었으면 끝까지 함께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인간 집단에는 묘한 경쟁심이 흐르게 마련입니다. 은연중에 서로 비교하게 되고 그중에 몇몇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성숙하지 못한 집단에서는 그런 사람을 용케도 찾아내어 왕따 시키는 못된 심리가 있습니다. 의견이 다르다거나, 모습이 조금만 달라도 소수자로 낙인찍고 열외 시킵니다. 자기들이 주류에 들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과시하고자 보이는 유치한 행동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소수 의견을 무시하는 집단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끼리만 뭉치고 강제로 의견을 통일하려는 의도는 결국 부패한 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런 공동체는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소수자에게도 귀를 기울였던 집단은 성장했습니다. 순혈주의를 주창했던 왕족에 정신지체아가 더 많았습니다. 이종교배를 두려워하지 않은 집단이 더 건강하게 융성하였습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바라셨던 점이 이것입니다. 먼저 소수자들을 찾아가 의견을 나누라는 요청입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간에 쌓였던 오해도 풀리고 건설적인 이해가 싹틀 것입니다.

 

루카복음서의 문맥은 약간 다릅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확실한 가르침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하고 투덜대자 이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너희는 세리와 죄인들을 아예 불가촉천민으로 여겨 상대조차 하지 않는데 그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십니다.

‘너희가 죄인을 단죄하여 얻는 이득은 단지 알량한 우월감뿐이지 않은가? 그들을 죄인이라 낙인찍고 소외시켜 생기는 폐해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너희가 손을 내밀어 그들이 회개한다면 그때 기분은 상당히 좋을 것이다. 잃어버린 양을 되찾은 주인이 얻는 기쁨을 상상해보라. 그 주인은 기쁨에 겨워 잔치를 열 것이다. 하느님의 심정도 이와 같다. 너희가 만약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 천상잔치를 맛보고 싶다면 그 방법은 어렵지 않다. 현세에서도 얼마든지 미리 맛볼 수 있다. 별게 아니다. 용서의 기쁨을 느껴보면 된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루카복음서는 이렇게 천상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 것입니다. 

같은 비유말씀도 성령의 감도를 받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졌습니다. 다양성이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때 ‘맞아! 그런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라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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