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상식] 신자들의 기도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자들의 기도가 지닌 기능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이를 성찬례 안에 복구시키도록 했다. “‘공동 기도’ 즉 ‘신자들의 기도’를 특히 주일과 파공 축일의 강론 다음에 복구시키도록 해야 한다”(전례 헌장, 53항). 신자들은 이 기도를 통해서 세례 사제직 (일반 사제직)을 수행하며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의 명칭에 대해서 아직 일반적으로 ‘신자들의 기도’(oratio fidelium)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전례 헌장에서 사용한 ‘공동 기도’(oratio communis)라는 이름이나 ‘보편 지향 기도’(oratio universa1is)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도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이름은 ‘보편 지향 기도’라고 할 수 있겠다. 1. 전례 회중의 기도 신자들의 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많은 옛 문헌들은 사도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원과 간청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오. 그래야 우리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아주 경건하고도 근엄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1디모 2,1-2a)고 권고하고 있다. 전례 헌장은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권고를 반영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양식과 내용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폭넓은 ‘가톨릭적인’ 관심과 보편적인 염려는 이 기도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전례가 지니고 있는 항구한 원칙을 발견한다. 지역 교회가 드리는 기도이지만 그것은 온 교회 안에서 드리는 기도라는 사실이다. 선택된 온 가족을 위하여 공동의 아버지와 한 분뿐이신 주님께 드리는 간구 안에 구체적인 그리스도 공동체와 보편 교회의 연대 또는 유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표현된다. 신자들의 기도가 이러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형식주의적인 예식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편 교회는 지역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는 데에 목표로 삼고 있는 이상(理想)이요 형상(形相)으로서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자들의 기도’ 안에서 만나는 지역 교회의 구체적인 필요성은 보편 교회라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는 결코 자신만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 치쁘리아노 성인이 주의 기도 해설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리스도 백성은 세상 안에서 “온 백성이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례를 ‘교회의 기도’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회’는 물론 보편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지역 교회를 완전히 제외시키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지역 교회 없이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지역 교회로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역 교회는 어떤 특정한 장소와 시대라는 제한된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온 교회를 표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교회는 온 세상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성찬례를 거행하는 회중은 지역 공동체의 모임만이 아니라 교회의 신비를 드러내 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교회는 하느님과 인류 앞에서 온 교회에 대한 책임을 지닌다. 그 교회는 구체적으로 수행해야 할 거룩한 직무를 지니고 있는 ‘살아 있는’ 신자들로 구성된 하느님 백성이다. 그러기에 이 기도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자신들을 참되게 ‘교회’로 이해한다. 보편 교회를 위한 지역 교회의 기도인 신자들의 기도는 그 내용에 이러한 독특한 위치를 표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시대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특성을 포함하고 있는 기도가 될 때에만 신자들의 기도는 세례 사제직을 수행하는 참으로 살아 있는 기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포기할 수 없는 진리이다. 신자들의 기도가 지역 교회의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 회중을 구성하고 있는 신자들의 언어와 표현 방식에 적합한 것이어야 하고, 그들의 삶과 관심과 희망, 염려와 고통 그리고 기쁨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교회 공동체들과 온 교회의 사람들과 상황과 필요가 그 기도 안에 드러나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에 대한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역 교회가 바치는 구체적인 기도의 지향들은 그 기도를 바치는 공동체의 문제들을 넘어서 신자들이 살아가고 그들의 신앙을 전해야 하는 인류 공동체의 문제들을 포용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자들의 기도는 교회 내부에 제한되지 않고 온 인류를 향한 ‘보편 지향 기도’가 된다. 교회의 신비 안에서 각 교회 공동체가 자신을 주님의 몸으로 이해한다면 주님을 대신하여 온 인류의 짐을 대신 지고 구원하는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완수할 것이다. 교회의 기도는 이렇게 구원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구원의 차원에서 바쳐질 때에 참된 ‘전례 회중’의 기도가 될 것이다. 2. ‘신자들의 기도’와 하느님의 말씀 전례 전통은 신자들의 기도를 ‘말씀의 전례’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말씀하신 하느님께 회중이 드리는 응답이다. 전례의 회중은 주님의 말씀에 노래와 기도로 응답한다. 그러므로 들은 성서의 말씀과 기도의 지향은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성서의 말씀은 강론으로 해설되고, 기도로써 신자들에게 대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그리스도 공동체는 기도한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들은 교회는 하느님께 충실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강론은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깨닫게 하고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그 깨달음과 응답이 신자들의 기도 안에서 표현된다. 이렇게 해서 말씀의 선포와 응송, 강론과 신자들의 기도가 밀접한 주제적 연관성 안에서 말씀의 전례를 구성한다. 신자들의 기도는 그 미사에서 들은 하느님 말씀에서 직접 따온 말마디로 하거나 적어도 주제가 일치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이렇게 신자들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교회는 신자들에게 이 세상의 필요와 지향을 하느님의 계획에 비추어 생각하게 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한다. 또한 그것은 기도의 차원을 말씀이 지니고 있는 교리 교수의 차원으로 들어 높이는 효과를 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믿음의 내용(Lex credendi)과 실천(Lex orandi)이 하나가 된다. 믿는 것을 기도하며 기도하는 것을 믿는다. 또 반대로 기도하며 믿고 믿으며 기도한다. 이 둘 사이에 분리는 생각할 수 없다. 신자들의 기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기도를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으로 풍요롭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 양식의 모범을 부활 성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활 성야 미사의 말씀의 전례 때, 매 독서 후에 사제가 바치는 기도는 바로 방금 들은 말씀에 응답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범을 기초로 하여 신자들의 기도를 바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신자들의 기도의 직무를 수행하는 신자들은 들은 말씀의 주제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바치는 기도가 ‘보편 지향 기도’이냐 아니냐는 판단 기준은 바로 말씀에 부합하느냐 아니냐가 될 것이다. 말씀과 밀접한 주제의 연관성을 가지고 기도할 때 우리는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씀의 진리를 표현하는 기도가 바로 ‘교회의 기도’이다. [경향잡지, 1994년 10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본지 주간 · 신부)] [전례 상식] 신자들의 기도 (2) 지난 호에서 우리는 신자들의 기도가 지니고 있는 신학적 의미와 이 기도와 말씀의 밀접한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신자들의 기도는 전례 행위의 중요한 요소로서, 교회가 온 세상의 필요를 위해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하느님께 항구하게 기도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 준다. 신자들은 이 기도로써 그들이 지닌 왕적인 사제직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이 기도를 바치기 위해 말씀에 주목한다. 이러한 이해를 전제로 이번 호에서는 미사 안에서의 이 기도의 자리와 바치는 장소와 양식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고자 한다. ‘신자들의 기도’를 바치는 적합한 자리 신자들의 기도는 사도적 기원을 갖는 전례 요소로서, 그 첫 문헌적 증거는 150년경 성 유스띠노가 쓴 “제1 호교론” 안에서 발견된다. 로마 미사에서는 두 가지 양식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 것은 ‘장엄 기도’라고 불리던 것으로 5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그 흔적은 성 금요일의 전례 안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호칭 기도 형식의 ‘리타니아’(litania)로서 젤라시오 교황 때(492~496년) 미사 안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기도는 7세기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복원되었다. 전례 헌장은 이 기도를 복구시키면서 미사 중 어느 자리에서 바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신자들의 기도’라 불리는 ‘공동 기도’를 특히 주일과 의무 축일에 복음과 강론 후의 자리에 복구시킨다”(53항). 신자들의 기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미사 통상문 개정의 구체적 기준으로 제시한 “세월이 흐르면서 버려졌지만 이제 합당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은 거룩한 교부들에 의해 확립된 옛 규정에 따라 복구되어야 한다.”(전례 헌장, 50항)는 원칙에 의해 복구된 것이다. 성 유스띠노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말씀의 봉독과 강론이 끝난 다음 모든 신자들이 일어나서 이 기도를 바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제1 호교론, 67장 참조). 우리는 앞에서 이 기도와 말씀의 밀접한 연관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기도를 ‘신자들의 기도’라는 이름에 근거하여 성찬의 전례를 시작하는 기도로 해석한다. 말씀의 전례 뒤에 예비자들을 보내는 관습이 유지되고 있던 때에 그들을 보내고 난 뒤, 세례를 받은 신자들만이 성찬의 전례를 시작하면서 바치던 기도라는 의미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말씀과 관련지어 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사실을 무색하게 한다. 그러나 위에 제시한 몇 가지 증거를 통해서 볼 때 우리는 ‘신자들의 기도’를 당연히 말씀의 전례를 마감하는 기도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에서 신자들의 기도는 사제가 없어 공소 예절을 거행하는 경우와 미사와 분리된 혼인 예식 그리고 축복 예식 등의 여러 전례 행위에서 말씀의 봉독과 강론 뒤에 바쳐지도록 적극 권장되고 있다. ‘전례 헌장 실행 평의회’가 낸 지침 “신자들의 기도”(De orationi communi, 1966. 4. 17)는 “신자들의 기도를 위한 적합한 자리는 정상적으로 말씀의 전례가 거행되는 경우에는 그 뒤에 성찬의 전례가 따르지 않을지라도 하느님의 말씀이 모두 봉독되고 난 끝이다……. 이 기도는 신자들의 영 안에 하느님 말씀이 작용하여 맺는 결실이다……. 신자들의 기도는 옛 증거에 의하면 말씀의 전례 전체의 결론이며 절정이다.”(1,4)라고 말하고 있다. ‘신자들의 기도’의 양식 “로마 미사 경본의 총지침”은 교우들이 참석하는 미사에는 신자들의 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하면서 신자들의 기도는 사제의 권고와 여러 가지 지향, 회중의 응답, 맺음 기도로 진행된다고 가르친다(47항 창조). 이와 같은 신자들의 기도에 대해 위에 인용한 1966년의 지침 “신자들의 기도”는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주요 내용들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신자들을 공동체의 기도로 초대하는 것은 전례적으로 또 사목적으로 큰 중요성을 지니는 집전자의 임무이다. 이 초대의 권고는 보통 짧은 말로 하지만 전례 시기나 축일의 주제 또는 경축하는 성인의 생애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사제의 권고 뒤에 따르는 지향도 로마의 옛 관습에 의하면 사제 자신이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부제에게, 부제가 없을 경우에는 합창단원이나 적합한 봉사자에게 맡기도록 하고 있다(전례 헌장의 올바른 적용을 위한 훈령, 1964. 9. 26, 56항 참조). 이 기도의 지향에 대해서 “신자들의 기도”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a) 온 교회의 필요를 위하여. 예를 들면, 교황과 주교 사목자를 위하여, 그리고 또 선교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사제 및 수도 성소를 위하여 등. b) 나라와 세상의 유익을 위하여. 예를 들면, 평화, 위정자, 시대의 발전, 안전한 수확, 올바른 선거, 경제적 어려움의 타개를 위하여 등. c) 가난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하여. 예를 들면, 세상을 떠난 이들과 박해를 당하는 이들, 실업자, 고통당하는 이와 병자, 임종하는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 추방당한 이들을 위하여 등. d) 참례하고 있는 신자들과 지역 공동체의 형제들을 위하여. 예를 들면, 그 본당에서 세례를 받은 이들, 견진성사를 받은 이들, 서품된 이들, 혼인을 준비하는 약혼자들, 본당 신부,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등”(1,9). 이 밖에 혼인이나 장례 미사 같은 경우에는 그 기원에 합당한 지향을 추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결코 보편적인 지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준다. 이러한 기도 지향에 대한 설명이 1969년의 “로마 미사 경본의 총지침”에서는 훨씬 간단해졌다(45항 참조). 이 기도의 지향에 대해 우리는 일률적으로 “……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신자들의 기도”에서는 세 가지 양식이 소개되어 있다. 첫째는 지향 전체를 완전하게 다 말하는 것으로 성 금요일 장엄 기도의 전반부와 같은 것으로 “……하도록(하기를) ……을(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는 것이다. 둘째는 ‘성인 호칭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도록(하기를) 기도합시다.”라는 양식이고, 세 번째 양식은 “……(을)를 위해 기도합시다.”이다. 이 지침은 또 각 지향에 대한 신자들의 환호의 응답을 참되고 능동적인 참여를 실현하는 기회라고 하여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지침에 의하면 환호 또한 몇 가지 방식으로 할 수 있다. 우리가 늘상 하고 있는 것처럼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는 짧은 환호를 언제나 반복할 수도 있고, 침묵으로 응답할 수도 있다. 이 밖에 첫째 독서 뒤의 ‘응송’에서처럼 성서에서 따온 좀더 긴 다양한 말마디로 환호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말씀에 맞추어 매번 환호의 말마디를 바꾸어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은 지향을 말하고 잠깐 침묵한 다음 부제나 적합한 사람의 인도로 백성이 환호하는 것이다. 맺음 기도는 일반적으로 이제까지 하느님께 바친 기도를 자비로이 들어주시라는 아주 간단한 청원의 말로 충분하다. 이 기도가 그날의 본기도의 내용을 반복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기원 미사의 경우에는 지향에서 이미 고유한 기원을 발했다 할지라도 같은 기원을 표현할 수 있겠다. [경향잡지, 1994년 11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본지 주간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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