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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응답 방법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2 조회수361 추천수8 반대(0) 신고
 
 

주님의 응답 방법 - 윤경재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마태 11,2-11)

 

 

복음서에서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참 알쏭달쏭합니다. 긍정하셨는지, 부정하셨는지 헷갈릴 적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빌라도의 질문에 답변하시는 말씀입니다. 세 공관복음서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대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묻자, 그분께서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라고 똑같이 전합니다. 이 말씀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어림짐작만 할 뿐입니다. 같은 대목을 다룬 요한복음서는 조금은 낫지만, 그래도 알쏭달쏭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 생각에는 헷갈립니다.

오늘 복음 내용에서도 즉답을 피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예수라는 분의 정체성에 궁금했을 겁니다. 그는 자기가 조만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제대로 사명을 수행했는지 아닌지 알고 싶었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메시아일 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확실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예수께서 메시아가 틀림없다면 편하고 기쁜 마음으로 눈감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요한의 심정을 모르셨을 리가 없는 예수께서는 “그렇다. 네가 기다리는 그분이 나다.”라고 한 마디면 될 것을 전혀 다르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동안 보여주신 일들을 언급하실 뿐이었습니다. 최종 판단은 그에게 유보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같으면 답답해서 속이 터져버릴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하고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참으로 계신지, 구원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는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지 등등과 같은 신앙의 문제로부터 우리의 청원기도가 언제, 어떻게 실현될는지 하는 궁금증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확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언제나 개인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저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지라 해도 그렇게 될 것이라.’라는 말씀에 의지해서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었다고 투덜댈 뿐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의 한계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간에게 스스로 결단을 내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안다고 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전혀 별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깊다고 해서 하느님을 실제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주님을 잘 안다고 주장하겠지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지 못하고 불충분한 예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안다고 하는 것과 행동에 옮기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요한의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행동하셨던 일들을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다고 자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고 아무리 기록했더라도 지금의 우리가 떠올리는 의문은 똑같을 것입니다. 정말 예수께서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냐는 의구심은 그 강도가 전혀 약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그렇다!’라고 적혀 있은들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믿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은 체험이고 또 동사입니다. 실제로 행동에 옮겨야 신앙이란 말입니다. 신앙을 향한 개인의 결단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세례자 요한은 기쁨에 차 하느님을 찬미하며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전 생애에 걸친 외침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땅에 내려온 하느님의 나라를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질문한 내용에 대해 네 생각은 어떠냐는 식의 질문을 되돌려 들은 빌라도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그는 ‘나야 유대인이 아니잖소.’라고 말하며 자신의 결단을 회피하였습니다. 역사상 구세주 예수를 그처럼 가깝게 지켜볼 기회를 얻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 보냈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라는 예수님의 묘한 대답은 아마도 이런 뜻일 것입니다. ‘어찌 됐든 네가 옳게 말하였다. 그러니 그 생각을 계속 밀고 나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 보아라. 그렇다면 지금 네가 할 일이 무엇이겠느냐? 알아채 보아라.’

보았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니요, 안다고 해서 참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며, 깨달았어도 여전히 행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늘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배웁니다.

 

주님, 주님의 깊은 가르침에 새삼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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