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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기 싫은 것만 시키시는 하느님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3 조회수883 추천수18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대림 3 주간 화요일 -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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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소를 좀 늦게 깨달은 편입니다. 대학 다니다가 군대 다녀와서 복학해서 그리고 성소를 느끼고 신학교로 편입시험을 봐서 들어갔습니다. 사실 그 이전엔 사제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결혼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사람들이 물으면 사제가 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수녀님이 계속 사제가 되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했더니 굉장히 기뻐하시고 특별히 챙겨주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당 다니는 아주머니들에게도 앞으로 뭐가 될 거냐고 물으면 신부가 된다고 대답했고 그러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먹을 것이나 용돈도 주시는 적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새로 만난 담임선생님은 예쁜 여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분은 수업시간마다 성경 이야기를 해 주셨고 우리는 매우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분은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앞으로의 희망을 쓰라고 할 때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신부님 혹은 목사님!”

아마 그 때부터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특별히 저를 남으라고 하더니 따로 신앙에 대해 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왕이면 목사님이 되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제건 목사건 상관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돈 많이 벌고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아마 오늘 복음에서 밭에 나가 일을 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말에 말은 나가서 일을 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은 작은 아들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때는 성소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때가 아니었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사람들 눈치 보며 꾸며 댈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25세가 되어 성소에 대한 진정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1년 심하게 고민하고 주님께 ‘항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 년 동안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끊임없이 “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저항의 때였습니다. 신학교 들어가겠다는 친구에게도 “난 절대 신부 안 될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아이들 많이 나아서 신부 몇 명, 수녀 몇 명 바치면 그게 하느님께 더 이익 아닌가요?” 하면서 부르고 계심엔 확신하였지만 결혼하고 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나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진정 주님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에야 거부도 진지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거부를 넘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후회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 처음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중엔 밭에 나가 일을 한 맏아들의 모습입니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아들은 처음엔 안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나간 맏아들입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그들은 작은 아들입니다. 속으로는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지만 겉으로는 가장 잘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진지하게 섰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러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유익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한 젊은 사제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후회되는 건 사제가 되기를 원치 않으면서도 ‘No!’를 하지 못한 거야.”

그 신부는 사제가 된 것을 후회하면서도 그래서 힘들어하면서도 옷을 벗지도 못합니다. 정말 그렇게 힘든 삶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으면서도 어찌어찌 하다 보니 사제가 되어 버렸고 또 사제가 되어서는 후회는 하지만 옷을 벗지는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본인이 원하지 않는 성소를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알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것은 결국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판단에 더 신경을 썼기 때문에 나의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처음엔 주님을 따른다고 말했고 종교와 백성의 지도자가 된 그들이지만 실제로는 처음에 ‘싫어요!’ 했던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속이며 억지로 무엇을 하지 맙시다. 그런 사람이 일을 하면서도 불평도 많이 합니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아는 사람이고 자신을 알기에 한 번 ‘Yes!’ 하면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모든 것을 신중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기 싫을 때 하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겠다고 한다면 그 말은 정말 믿을만한 말입니다.

정호승씨가 기자 생활을 하실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성철 스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철 스님은 성격이 완고하여 누구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정호승씨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자 순순히 포즈를 잡아주셨습니다. 하도 많이 찍으니, “왜 이리 사진을 많이 찍나?”고 물으셨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스님은, “그러면 천 번 찍어라.”라고 하시며 원하는 포즈는 다 해 주셨다고 합니다.

성철 스님은 하기 싫으면 죽어도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허락을 하면 죽어도 하는 스타일이셨습니다. 그래서 한다고 해 놓고 안하는 소인배가 아니라 한다고 하면 죽어도 하는 크신 분이셨던 것입니다.

 

정말로 진실 되지 않으면 그 거짓 속에 결국은 자신이 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긴 고통입니다. 종교의 선택이든, 성소의 선택이든, 결혼이든, 선택하기 전에 모든 것에 있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판단한 것에는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우리들이 됩시다.

 

하기 싫은 것만 시키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특성 가운데 제가 하나 알아낸 것은, 하느님은 꼭 싫은 일만 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가난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좋은 대학 경영학과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좋은 대학은 아닐지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학교 잘 다니고 군대까지 잘 갔다 왔는데, 그 때 주님은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물론 그 때 불러주신 것은 아니고 그 때야 부르심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제 2년만 더 있으면 취직하고 결혼도 하며 살 수 있는데... 부르실 거였으면 진작 불러 주시지... 부모님 고생만 시키고... ’

저는 몇 달을 계속, ‘주님, 저는 싫습니다. 저는 이 길을 택했으니,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렵니다. 제가 애들 많이 낳아서 사내아이는 다 사제 만들고 여자 애들은 다 수녀님 만들겠습니다. 그게 당신께 더 이익 아닙니까?’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들려오는 말은 계속, ‘내가 원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다!’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 1년 버티다가 주님의 뜻에 무릎을 꿇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잘 해 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사실 신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른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공부보다도 기도를 더 좋아하여 기도 잘 하는 사제가 되려고 생각할 때 하느님은 저보고 유학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가기 싫다고 이미 여러 번 영성 지도 신부님께 말씀 드렸었지만 그 분도 저를 배신한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유학 나와 4년 동안 로마에서 공부하면서 집에 한 번도 돌아오지 못하였지만, 나중에는 유학 나와 더 많이 배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유학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던 차라 주교님께 더 이상은 유학가기 싫다고 했는데 본당신부로 막 나가야 하는 때에 주교님은 다시 유학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또 나가기 싫다고 버텼습니다. 주교님은 장상 말을 따라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 달 동안 묵상하고 연락하라고 하셨고, 저는 2주 뒤에 다시 나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다시 나와서는 신혼 때 신부를 빼앗긴 신랑처럼 6개월간은 아무 의욕도 나지 않았습니다. 벌써 5년째 살고 있는데 또 지금 생각하니 잘 나왔다고 느낍니다.

주님께서 지금까지는 제가 싫은 것만 시키셨습니다. 다행히 끝까지 거부하지 않고 중도에 주님 뜻을 따르기로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물론 매우 힘든 결정이지만, 그래야 결국 주님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내가 싫은 것을 시키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행히 오늘 복음을 보니 처음에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주님을 따른 맏아들이 주님께 칭찬을 받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신학교에 들어와 보니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겠다고 들어왔던 많은 신학생들이 나중에는 성소에 대한 갈등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길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본당에 처음으로 보좌신부로 갔더니 이젠 봉사를 그만두겠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너무 힘들어 하시고 또 집안이 바빠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그런 분들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설득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저도, 일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더 일을 충실히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봉사를 하라고 시킬 때도 처음에 거부하는 사람이 완전히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할 때는 끝까지 설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들이 거부하는 이유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이 일을 해야 더 책임감 있게 잘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성당 봉사에 대해 힘들어 하실 수가 있습니다. 사실 그런 분들이 더 책임감 있게 이끌어 나가시는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을 시키시는 이유는 그것이 교회에도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꽃밭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가시밭길이 아닌 다른 쉬운 길을 선택하셨다면 우리에게도 예수님께도 아무런 보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 무작정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짓는 어려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아는 사람이 그 일을 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알기에 어렵게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오늘 복음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선택에 놓여있습니다. 하느님은 계속 내가 원치 않는 일을 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처럼 처음엔 하겠다고 하고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처음엔 배반했다가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교회의 기둥이 되게 됩니다. 우리가 하기 싫은 그 일이 나를 위하고 모두를 위하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 아버지 뜻대로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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