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령미사’ 봉헌으로 얻는 위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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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요하 | 작성일2010-12-14 | 조회수437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30) ‘위령미사’ 봉헌으로 얻는 위안
수량이 풍부한 ‘눈물샘’을 타고났지 싶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내 눈물샘이 유별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단체관람으로 영화구경을 하면서 아무도 울지 않는데 혼자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탓에 아이들한테 놀림가마리가 된 적도 있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걸핏하면 눈물샘이 작동을 하곤 해서 부끄러운 때도 있었지만 차차 내 눈물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신앙생활이 합해지니,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릴 때마다 예수님의 눈물을 떠올리는 ‘버릇’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누구든 한 세상 살다보면 슬프고 괴로운 일도 많이 겪게 됩니다. 또 세상의 갖가지 불행한 일들을 수없이 보고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기쁜 일과 슬픈 일, 행과 불행이 얼기설기 뒤섞이기 마련이지요. 어떤 형태로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가운데서도 간혹 충격적인 일, 전혀 모르는 사람의 불행한 죽음을 듣게 되어 몹시 가슴 아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오후 걷기 운동과 함께 묵주기도를 하며 내내 그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기도로는 미흡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기도뿐이라는 생각 자체가 괴롭기도 합니다. 어떤 불행한 죽음에 대해 마음아파하기만 할 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양심을 자극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위령미사’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추석 귀향길에 사고가 나서 버스 안에서 떼죽음을 당한 분들, 의붓아버지에게 살해 당한 어린 자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살해당한 개신교 목사와 청년, 군 제대 후 복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파트공사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실족사한 청년, 당진 제철공장에서 작업 중 용광로에 떨어져 숨진 청년 등등…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한 적이 꽤 많습니다. 그렇게 위령미사를 봉헌하면 다소나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또 그렇게나마 그 불행한 이들의 영혼을 내가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 가톨릭교회의 ‘위령미사’에 대해 큰 감사를 느끼며 위안을 얻곤 합니다. 지요하(소설가·태안성당) *<대전주보> 2010년 11월 14일(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제2056호 | 5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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