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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동인형으로 살아온 이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4 조회수384 추천수5 반대(0) 신고
 
 

자동인형으로 살아온 이들 - 윤경재

 

“어떤 사람이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맏아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 21,28-32)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는 아버지의 지시에 두 아들이 보인 행동이 상반됩니다. 먼저 가겠다고 대답하였으나 끝내 가지 않은 다른 아들의 처사는 누가 보아도 잘못된 행동입니다. 이에 비해 맏아들은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라고 합니다. 맏아들은 처음에 보였던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의 행동을 고쳤습니다.

이 비유 말씀에서 새겨야 할 사안 중 하나는 다른 아들의 마음 상태입니다. 그는 이런저런 고려 없이 무조건 아버지의 지시사항을 따라야 한다는 관념에 따라 가겠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 생각도 없이 말로만 응한 셈입니다. 그러다가 더 급한 일이 생겼는지 아니면 아예 일하러 가기 싫었는지 모르겠지만, 포도밭에 가는 것을 미루었습니다. 말과 행동 따로따로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행동이 옳은지 아닌지 전혀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과 행동이 상반된 처신을 하는 까닭은 자기의식의 깨임이 없이 자동인형처럼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동인형은 누군가 스위치를 누르면 늘 똑같은 행동만 합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미리 입력된 내용대로 움직입니다. 자기의 의식이 아니라 외부 자극에 자동 반응함으로써 실은 잠자고 있는 상태와 똑같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본능만이 살아 있고 분별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자기 자신이 하고 있었다는 자각을 하기에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인간이 남을 비평하기는 쉬우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개선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을 보고 성격이 이렇다 저렇다 하고 평가하는데 그때 말하는 성격이 바로 자동인형 성향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그런 게 내 성격이니 내버려둬!’라는 말까지 함부로 내뱉습니다. 이 말의 본뜻은 자기는 늘 잠자는 상태에서 행동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는데, 정말로 생각 없고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 안에는 알게 모르게 자동인형과 같은 성향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강화되면 강박 관념이라는 정신질환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강박은 초기에는 자기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후회를 하다가도 나중에는 후회조차 하지 못하는 단계로 악화하는 상태입니다. 그런 사람은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밖으로 돌려버려 투사나 퇴행 단계까지 악화합니다.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성격을 살펴 왜 이런 성향을 보이는 지 알아채고 다시는 자동인형과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에니어그램이나 MBTI 같은 성격분석을 통해 과거에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분석하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폭넓어집니다. 타인의 성격도 이해하게 되어 공연히 화를 내며 반발하는 잘못도 치유할 수 있게 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매 순간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자기를 제어합니다. 멋대로 행동하려는 본능을 경우에 알맞게 조절합니다. 개인의 본능보다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할 줄 압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이웃과의 관계를, 나아가 생명 전체와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외하고 모두 깨어 있지 못한 사람입니다. 두 아들뿐만 아니라 특히 수석 사제와 원로들이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요행이 그 자리에 올라서 이룩한 사정을 깨닫지 못하고 평생 자기 잘난 맛에 살아온 그들입니다. 삶의 위태로움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현세에 파묻혀 말 그대로 자동인형으로 살아가기를 최상의 가치로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깨어 있음은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닦는 일입니다. 거울 표면에 얼룩이 남았으면 사물의 본래 모습을 비춰볼 수 없습니다. 거울에 남은 얼룩처럼 마음속에 남은 찌꺼기도 지워내야 합니다. 

조선의 유학자 율곡 이이는 마음속에 찌꺼기가 남는 이유를 네 가지로 살폈습니다.

첫째는 기대감입니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에서, 자신의 행동을 통해 무엇인가 획득하겠다는 심정입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를 멍들게 합니다. 둘째는 일이 이미 끝났는데도 붙잡고 있는 미련입니다. 자책과 원망이 모두 마음의 찌꺼기입니다. 마음에 그늘을 드리워 자신을 잊게 합니다. 셋째는 편견입니다.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미리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여 자신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퇴보시킵니다. 넷째는 잡념입니다. 머릿속을 맴도는 하루살이 같은 상념들이 우리를 지배할 때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선악을 분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 할 것과 아니오 할 것을 판별하지 못해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됩니다. 

율곡은 마음속 찌꺼기를 닦는데 그냥 무턱대고 눌러버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데 승리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전투가 아닙니다. 그저 발걸음 하나하나를 깨어 의식하면서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찌꺼기를 놓아버리는 긴 수련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깨어 있기를 닮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참 크리스천입니다. 자신이 자동인형이 될 것인지 아닌지 결심하라는 요청에 어떻게 대답할지 모두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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