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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 12.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5 조회수347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15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이사45,6ㄴ-8.18.21ㅁ-25 루카7,18ㄴ-23

 

 

 

 

 

"하느님"

 

 

 

‘하느님’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1.요즘 웬만한 책에는 눈길이 안 갑니다.

  글도 말도 때로는 공해일 수 있습니다.

  사실 세권의 책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성경(하느님) 책, 사람 책, 자연 책입니다.

  살아있는 성경책과 사람 책, 그리고 자연 책을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을 만나 그분의 지혜를 배우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 세 책을 하느님을 공부하는 우리 삶의 교과서라면

  나머지 책들은 참고서에 불과합니다.

 

2.어제 한 젊은 수도형제의 말이 생각납니다.

  “수사님들이 있을 때의 고요와 수사님들이 본원에 행사 차 가고

    둘만 남았을 때의 고요가 달랐어요.

    수사님들이 있을 때는 고요 중에도 마음 든든한 평화가 있었는데

    둘만 있을 때는 웬 지 두렵고 불안한 고요처럼 평화가 없었어요.”

  듣는 순간 저는 하느님 유무에 따른 침묵을 연상했습니다.

  사막이나 수도원의 은수자들이나 관상가들처럼

  하느님 현존 안에서

  풍요롭고 넉넉한 고독과 침묵을 누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적막한 죽음과도 같은

  하느님 없는 고독과 침묵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오늘 새벽 정원에서 어두웠던 성전에 전등이 켜지면서

  환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 연결되어 환한 빛을 발하는 영혼을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영혼은 캄캄한 어둠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단절되어 캄캄한 영혼으로,

  영혼의 맹인으로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3.잡지에 글을 기고했을 때 우선 찾아 수없이 읽어보는 내 글이요

  다른 글은 거의 안 보게 됩니다.

  내 글이 없다면 버릴 수 있는 무의미한 잡지이지만

  내 글이 실려 있기에 보관합니다.

  아, 여기서도 이기적 존재의 나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애인이나 자식을 둔 사람의 마음도 비슷할 것입니다.

  온통 연인 생각으로 가득 하기에

  그 많은 사람들 중 우선 찾는 것이 자기 연인이요,

  연인이 없다면 공허하기 짝이 없어

  그 많은 사람들이 참 무의미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마찬가지 많은 아이들이 있어도 우선 찾는 게 자기 자식이요

  자기 자식이 그 자리에 없을 때

  그 많은 아이들 역시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역시 이기적인 인간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저는 여기서 하느님을 연상합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빠진 세상이

  바로 이러할 것입니다.

  하느님 빠진 세상 참 공허하고 무의미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시기에 충만한 인생, 의미 있는 인생, 빛나는 인생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을 절절히 체험했던 예언자들이며

  그들 중 대표적인 분이 바로 오늘 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려

  우리 모두를 향해 열정적으로 고백합니다.

  그대로 이사야의 하느님 체험입니다

 

“내가 주님이고, 다른 이가 없다.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일을 한다.

  …하늘을 창조하신 분, 그분께서 하느님이시다.

  땅을 빚으시고 땅을 만드신 분, 그분께서 그것을 굳게 세우셨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혼돈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살 수 있는 곳으로 빚어 만드셨다.

  내가 주님이다.

  나 밖에는 다른 신이 아무도 없다.

  의롭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땅 끝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요 하느님 빠진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 생명의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나고, 체험하고, 맛보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움직이고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등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요,

살아있다는 자체가 그대로 하느님 체험입니다.

진정 이런 주님을 깨달아 만날 때 치유의 구원이요 평화와 안정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말씀이 당신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구원의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 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요한의 제자들처럼 우리 역시 이 미사 중

주님을 뵙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적 치유의 변화와 구원을 체험합니다.

마음의 눈은 열리고, 상처로 저는 마음의 다리는 제대로 걷게 되고

마음의 나병은 깨끗이 치유되고

마음의 귀도 열리고 죽어가던 영혼도 되살아납니다.

가난한 우리에게 선사되는 영원한 생명의 복음 말씀과 성체은총 덕분입니다.

 

정작 무서운 것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 영혼의 병입니다.

이사야나 세례자 요한 같이 영혼이 깨어 활짝 열려 있는 자들에게는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한 세상이요 모두가 하느님의 기적들이지만,

영혼이 무디어져 닫혀있는 이들에게는 무의미하고 허무한 세상일 것입니다.

영혼이 무디어져 영성이 사라져 갈 때

남는 것은 잡초같이 무성해지는

식욕, 성욕, 물욕의 육적 본능의 욕구뿐일 것입니다.

 

저절로 영성생활이 아닙니다.

영혼도, 영성도 무디어져 죽기 전에 꾸준히 돌보고 키워 살려야 합니다.

매일 밥 먹고 운동하듯이 매일 말씀을 먹고 기도해야 영혼도 삽니다.

이래서 평생 끊임없는 영성훈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매일 마음을 다해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 또한 영성훈련의 일환입니다.

이래야 영적오관도 살아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으며

풍요로운 내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훌륭한 전사로서 영적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습니다.

매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들이게 하시며

우리의 영육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이사45,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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