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가 아는 윤한봉, 오교수 님이 아는 윤한봉> | |||
---|---|---|---|---|
작성자장종원 | 작성일2010-12-16 | 조회수47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내가 아는 윤한봉, 오교수 님이 아는 윤한봉>
이심전심 모임 끝나고 두 패로 갈려서 주막으로 몰려갔다. 갈렸다가 또 모였다. 나와 오수성 씨는 슬쩍 빠져 나왔다. 둘이서 맥주집에서 맥주를 작은 병으로 세 병 더 마셨다. 오수성 씨가 심리학 교수라서 성격학 등 심리한 이야기를 좀 하다가 합수 윤한봉 이야기를 했다.
나는 윤한봉 씨가 귀국하여 광주에 살면서부터 찬성이하고 셋이서 계속 만났다. 윤한봉 씨는 자기 일상을 낱낱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세월이 꽤 오래 갔다.
윤한봉 씨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 우리는 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나는 내 속으로 5.18민중항쟁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그 기념사업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년 이사회 정도 참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윤한봉 자서전, 문집을 냈다. 그리고 기념회관을 만들기로 하고 있다.
윤한봉 씨가 제아무리 훌륭했다 해도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차에 오늘 오수성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윤한봉 씨는 민족의 하나 됨과 소수민족들을 감싸는데 전력투구했다는 것이다. 그 자서전에서 읽고 또 이미 들은 이야기이지만 아주 새로웠다.
오교수는 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는 건물을 사서 임대료 받아 직원 두세 명에게 월급 주는 데 그쳐서는 별 의미가 없고 광주에서부터서라도 소수민족이주민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사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전체에서 외국인 이민자들이 200만 명이 되어 있고, 농촌 초등학교들은 얼마 안 있어 혼혈인 아동들이 50%가 넘을 거라 했다. 그러니 윤한봉 씨의 정신을 구현하자면 이민자 여자로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여자들과 그 자녀들을 감싸고 아끼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