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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드레 빤치또(2) -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6 조회수540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드레 빤치또(2)

  

http://www.catholic.or.kr/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땅에 조아리며 죄를 고하던 빤치또 신부님은 다시 환하게 빛이 나는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깊은 포옹을 나누고는 내 방을 떠나갔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방에서 나는 한 동안 다른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죄인임을 자처하면서 젊은 사제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도움을 청하는 한 늙은 사제로부터 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에 젖어 그렇게 한 동안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교만과 독선이 얼마나 큰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 늙은 사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고한 죄의 내용들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들이라서 그랬을까? 나는 빤치또 신부님이 남기고 간 빈자리에서 그렇게 한 동안 말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 얼마나 자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또한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고 고백을 하였던가? 그렇지만 나는 얼마나 깊이 있고 무게 있게 그 죄들을 죄로서 깨닫고 뉘우치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들을 소홀히 함으로서 내 자신의 삶에,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해를 끼치고 있었던가?

 

     빤치또 신부님과의 고해성사를 통해서 나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며 다시 하느님과 화해함으로써, 한 인간이 다시 하느님을 닮은 거룩함을 회복하여 빛이 나는 얼굴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눈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사람의 능력이 제 아무리 크다 하여도 그 능력이 절제와 겸손의 영으로 정화되어 표현되지 않으면, 그 능력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상하게 하고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능력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소명을 실천하는데 쓰이지 않고 자신의 허영과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해 버리면 그 사람은 길을 잃게 된다.

 

     교만과 독선은 자신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감각조차 무디게 하여 이제는 하느님께서 밝혀주시는 광명의 길이 아니라 어둠의 골짜기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자신의 능력을 자신하고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먼저 깨닫는 것이 신앙과 영성의 삶을 살아가는데 훨씬 유익하고 안전하다. 제 아무리 어떤 분야에서 큰 능력을 부리는 사람일지라도 그는 스스로의 부족함과 한계로 인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의 어두움에 빠져들 수가 있다는 것을, 또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상처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절제와 겸손의 덕으로 채우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언제나 어디서나 빛이 발한다. 그들의 삶은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마태5,14)과 같아서 절대 감추어질 수가 없다. 이와 같이 감추어지지 않는 이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을 비추면,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과 영성이 들어나는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된다.

 

     하느님을 말씀은 가장 정확하고 생생하게 선포할 수 있는 도구는 입이 아니라 몸뚱이다. 제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여도,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느님께 인도하는 도구는 결코 감추려야 감추어질 수 없는 선포자들의 선한 행실이다.

 

     다음 주에는 내가 살아가게 될 ‘깜뻬체 교구’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들은 언제나 나를 가슴 설레게 한다. 설레는 가슴도 좋다. 하지만 이번 깜뻬체로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한 가지가 생겼다. 깜뻬체로 떠나기 전에 꼭 빤치또 신부님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드리고 싶다. 이것, 저것 덜어낼 것은 다 덜어내고 좀 가볍고 단순하게 길을 떠나고 싶다. 신앙이나, 인생이나 모든 여정은 가볍고 단순한 것이 좋다.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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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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