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한주일 동안 편안하게 사셨습니까?
얼굴을 보니 편치 않은 사람도 많네요~~
얼굴은 영혼의 창이라고 그럽니다.
마음이 편하고 평화를 느끼면 얼굴이 평화스러워요
일주일 내내 지지고 볶고, 지 분에 못 이겨서 씩씩거리고 산 사람은....
자기 얼굴 한 번 보세요....보기 싫죠?
‘네~~’
너무 씩씩해가지고..... 좋아요.
저는 대답 잘하는 사람을 제일 좋아합니다.
강론하다가 물을 때 그냥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알면서도 대답 안하고..그러면 참 얘기하는 사람은
민망하고 자존심이 상해요. 도대체 대꾸를 안 해~~ 반응이 없어~~ 좀 맞장구를 쳐줘야
신이 나는데....나는 저 형제 때문에 살맛이 나!
대답을 아주 시원시원하게 잘해가지고....^^
비가 많이 옵니다. 이거 큰일 났어요.
9월 중순까지 비가 이런 식으로 온다는데, 추석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번 추석에는 익은 사과도 구경하기 어렵데요.
지금 막 깨고 뭐고 지금 다 싹이 날 정도로 비가 와서....큰일 났습니다.
“신부님 기도하셔야 돼요. 기도 안하시니까....”
또 저렇게 나오면 제가 당황합니다.
맞장구도 분위기 맞춰서 쳐야 되는데 우리 할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시니까
제가 감당을 못할 때가 참 많아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이 있다면 선택을 하는 겁니다.
사람은 눈을 떠서 잠잘 때까지 뭔가를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돼요.
오늘 교중미사를 갈까... 저녁미사를 갈까?...특전미사를 갈까?
여러분, 짐승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못할 것 같아요?
집에서 기르는 개를 한번 보세요.
개도 더 맛있을 것을 주면 그전에 먹던 것을 안 먹고 더 맛있는 걸 먹어요.
배를 맛있게 먹다가 아주 맛있는 사과를 주잖아요?
배 먹던 것 안 먹고 맛있는 사과를 선택해요.
본능에서 나온 선택인지... 어떤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짐승들도 분명히 선택할 줄 알아요.
짐승들도 불구덩이 속으로 안 뛰어들잖아요. 그렇죠?
위험하면 돌아가요. 이 길로 가면 내가 죽을 거라는 것 알기 때문에 일부러 피해가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다 있지만 사람이 선택하는 것과 짐승이 선택하는 것의 차이가 뭐냐?
사람은 선택한 후에 그 책임을 져야 되요.
선택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되요.
짐승은 자기가 선택만 했지... 책임이라는 게 없어요.
이게 아마 차이가 큰 거예요.
선택에는 일상적인 선택이 있고 영적인 선택이 있다고 그럽니다.
일상적인 선택은 우리가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잘 때까지 순간순간 하는 그런 선택들입니다.
예를 들어 주부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반찬을 뭘 해서 먹고/ 식구들을 어떻게 해서
학교에 보내야 되고/ 무엇을 입어야 되고/ 오늘 누구를 만나야 되고/ 그 짜투리 시간에
내가 뭘 해야 되고..... 이런 것들이 전부다 일상적인 선택입니다.
영적인 선택은 뭐냐?
살아가면서 우리는 선과 악이 내 안에서 같이 싸우는 걸 느낍니다.
내가 오늘 기쁨을 선택해야 될 거냐?
아니면 징징거리면서 분노를 선택해야 되냐?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신 것처럼 선을 행하려고 하면 바로 그 옆에 악이 도사리고 있더라!
그 위대한 바오로 사도도 선과 악이 자기 안에서 매일같이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느꼈던 거였죠.
우리들도 하루 종일 살아가면서 내가 어두운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몇 년 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이 갑자기 생각나면 순식간에 어둠이 내 영혼을 괴롭힙니다.
내가 선을 택해야 될 거냐/ 악을 택해야 될 거냐?
이건 영적인 선택입니다.
일반적인 선택이든 영적인 선택이든지 간에
올바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 영적인 분별력, 판단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기도생활, 꾸준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때그때마다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내 의지 가지고는 어둠으로부터 헤어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나를 움직이셔서 성령이 내안에 들어오시면 나로 하여금 선을 선택해서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가게끔 만들어 준다는 거지요.
아침에 눈을 뜨면 사탄이 마치 먹이를 찾아다니는 짐승처럼 우리를 지 입에다 집어넣으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가지고 유혹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탄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의지가 아닙니다.
머리가 아닙니다.
아이큐가지고 사탄을 이기겠습니까?
자기의 의지가지고 이기겠습니까?
꾸준히 했던 기도생활 그 기도를 통해서 나에게 오시는 그 하느님의 은혜덕분에
내가 어둠으로 빠져들 때도 하느님은 나를 선으로 이끌어주신다는 것
우리들은 무수한 선택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루의 시작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님 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열심히 기쁘게 살겠습니다....오늘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와서
내 속을 뒤집어놔도 내 절대로 내가 분노하지 않고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눈이 떠지자마자 기쁨을 선택한 사람은 그날 하루 종일 기쁨과 평화가 옵니다.
‘아이구 지겨워, 이 하루 오늘 어떻게 보내. 오늘 그 웬수 얼굴 어떻게 또 봐. 아이구 밥하는 것도
지겨워 죽겠어.’
하루시작을 짜증으로 시작한 사람은 그날 하루 종일 구름이 끼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얼굴이 이쁠 수가 없습니다.
음란한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 사람은 하루 종일 음란한 생각이 치고 들어옵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첫 생각을 돈에 대한 욕심으로 생각한 사람은 하루 종일 그 돈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물질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헤어나질 못합니다.
하루의 첫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면 그날 하루 종일 축복이 옵니다.
‘오늘 내가 가서 신부님의 입을 통해서 오시는 하느님을 영접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내 안에 오시는 그 벅찬 기쁨을 느끼러 내가 성당에 간다.’
그런 마음을 선택하고 이 자리에 앉아있다면 이 미사가 얼마나 은혜롭고 기쁜 미사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냥 해치우는 식으로 마지못해 성사보기 지겨우니까.. 그래도 내가 나가야지 하는
마음을 선택한다면 이 미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똑같은 미사를 하면서 똑같은 강론을 듣고도 한 주일을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나고 난 다음에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인 혼수상태에 빠져서 미사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혼수상태가 뭡니까?
심장은 뛰고 있지만 머리가 죽은 사람입니다.
한 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있지만 앞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은 죽어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사 내내 다른데 돌아다니다 옵니다.
사제가 하는 강론 귀에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온갖 분심 잡념 속에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 미사는 하느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죽은 미사이기 때문에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하루의 질이 달라지고
한 달의 질이 달라지고/ 일 년의 색깔이 달라지고
내 인생이 좌우가 됩니다.
내가 어떤 종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내 영혼이 결정이 됩니다.
요즘 여러분 텔레비전에 한참 복잡하게 나오고 있는...영생교?
교주가 지시를 내려서...사람을 암매장하고 때려죽여 전국 곳곳에다 묻었습니다.
마귀도 그런 마귀가 없습니다...지가 하느님이라 그럽니다.
거기 빠져있는 사람들 텔레비전 보셨죠? 아주 미쳐 날뜁니다.
하느님은 그걸 압니다. 말 안 들으면 ‘때려죽여라 저거 마귀새끼다.’
지말 안 들으면 무조건 마귀새끼야.
십년.. 십이 년 전에 행방불명된 얼마나 많은 사람들....지금 파내고 있지요?
종교라고 다 똑같은 종교가 아닙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 자기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집안이 다 망가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예수님이 세우시고 성령이 지켜주시는
천주교를 선택했다는 거,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여러분을 선택하셨죠.
얼마나 감사거리입니까?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는 것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또 다른 성당도 아니고 진천성당이라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감사거립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다른 본당 가보십시오.
진천에 산다고 하면 난리가 납니다.
진천본당신부에게만 싸인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
딴 본당에 가보십시오.
여러분들 싸인 해달라고 그러지 않습디까?^^
내가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는 거, 감사드려야 됩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 년 만에....가나안땅으로 끌고 들어갔는데,
가나안땅에 들어가 보니까 이 가나안 땅이 마귀 소굴이야.
가나안땅에 먼저 와서 살고 있던 그 원주민들이 완전히 미신에 빠져가지고 난리를 치고 있는 거예요.
여호수아가 물들까봐......걱정이 된 겁니다.
여호수아는 나이를 먹어서 죽어갈 때가 되었는데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신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가!
이 가나안 족속들과 어울려서 사탄을 섬기면 어떻게 되는가!
걱정이 되어서 눈을 감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40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 때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나게 많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지요.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느님이라고 그랬습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를 알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편히 죽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세겜이라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선택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만일 야훼를 섬기지 않으려면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결정하시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백성을 향해서 묻습니다.
미신을 섬길 건지 아니면 야훼를 섬길 건지 오늘 결정하라고 합니다.
죽기 전에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야훼를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다니 말이나 될 법한 말입니까?
우리는 목숨을 다해서 야훼를 섬길 겁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백성의 이 소리를 듣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얼마 안 있다가 숨을 거둡니다.
이 말씀과 같은 내용이 한 달 내내 복음에도 나옵니다.
오천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에서부터 계속해서
주님의 몸과 피, 생명의 빵에 대해 들었습니다.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고,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구원 받는 첫 번째 단추는 주님의 몸과 피를 다시 말하면 생명의 빵을 먹어야
된다는 거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그 말귀를 알아들은 사람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대부분은 못 알아듣고 질겁을 합니다.
‘아이쿠, 저 양반 무슨 소리야, 지 살을 우리보고 먹으라고? 그러고 자기 피를 우리보고 마시라고
하다니...’
대부분의 제자들은 다 떠나가고 열 두 제자만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향해서
“자,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열두 사도도 정말로 그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3년 동안 모셨던 정 때문에
‘그래도 저 양반 말에는 뜻은 있을 것이다!’
남아 있다가 막상 예수님께서 물어보니까 제자들은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럴 때 항상 ‘짠~~’ 하고 나타나는 제자가 누구입니까?
‘베드로 사도’
성질 급하기로는 끝내주는 사도이지만 그래도 맏형이기 때문에 열둘을 대표해서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는데 그게 희한하게 정답이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기가 막힌 대답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누구에게 가서 다시 가르침을 받겠느냐?
예수님은 너무 좋아서 입이 확 찢어지십니다.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래, 다른 인간들 다 나를 버리고 가도 똘똘한 놈 너희 열둘만 남아 있으면 나는 부러울 것이 없다.’
베드로 사도는 많은 약점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제자였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하느님을 완전히 안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없습니다.
저도 신학공부를 10년을 하고 신부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느님이 어떤 분이라고 하는 것을 알 재간이 없습니다.
이 작은 머리로 어떻게 하느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죄의 근원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손에서 나옵니까? 발에서 나옵니까?
이 작디작은 머리통 안에서 교만도 나오고 협잡도 나오고 사기도 나오고....
모든 것이 이 작은 머리통 안에서 나옵니다.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는 썩겠지요.
아무리 자식이라 하더라도 썩은 해골 이쁘다고 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차라리 닭대가리 삶으면 개라도 먹이지요.
사람 죽으면 머리 잘라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냐!
이 작은 머리로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먼저 믿을 뿐입니다.
어린이들은 부모의 사랑이나 가르침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지만 나중에 커보면 압니다.
성체성사 역시 믿음 없이는 그 위대한 신비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축성되기 전에 밀떡은 그 안에 주님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사제가 축성을 하면
모양은 똑같은 빵의 모양이지만 그 안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들은 그걸 믿지요?
그 축성된 성체를 가지고 성당 안 다니는 사람들 앞에 가서
‘이거 봐, 이게 예수님의 몸이야...’ 외인들이 믿겠습니까? 웃으면서
‘미쳤구만, 이게 밀떡이지...무슨 예수님이야!’
한 술 더 떠서 ‘이것만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어’ 그러면 다 코웃음 쳐요.
오늘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래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올 수 없다.’
외인들은 이 집에 초대받지 않았기 때문에 성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서 ‘나 예수다!’
그러면 ‘아유, 웃기고 있네~~’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사람은 주님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선택을 통해서 시작이 됩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일단 선택을 잘 하신 분들입니다.
하느님을 선택했고/ 영원을 선택했습니다.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다른 것의 포기함을 뜻합니다.
귀중한 것을 선택하면 하찮은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귀중한 것도 선택하고 하찮은 것도 내가 끌어안고 산다면....
그건 양다리를 걸치는 겁니다.
하느님이 첫째자리에 계셔야 됩니다.
그 다음 것은 전부 다 밑에 내려가야 합니다.
하느님이 첫째 자리요, 그다음에 자식이요, 돈이고 건강이고....
하느님이 저 밑으로 내려간다면 귀중한 것을 선택한 모습이 아닙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깊이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내 가정 안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다고 하는 것을 외인들에게 보여주어야 됩니다.
교회 안에서 드러나야 됩니다.
직장 안에서/ 마음 안에서/ 구체적으로 내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고 하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자꾸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영세 때 힘차게 외쳤던 맹세를 생각해야 합니다.
마귀를 끊어버립니까?
여러분들은 ‘끊어버립니다.’
천주님을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믿습니다.’ 했습니다.
입으로는 마귀를 끊어버리고 천주님을 선택했다고 했으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여전히 세속에 살면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다운 선택이 아닐 겁니다. ~~답변에 이어집니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로사리오의 마리아-김웅열신부님.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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