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기를 비운 분, 의인 요셉" - 12.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
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0-12-18 | 조회수390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18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예레23,5-8 마태1,18-34
"자기를 비운 분, 의인 요셉"
자기 비움이 겸손이자 지혜요 자비입니다.
자기를 비울수록 상처도, 스트레스도 작지만 자기가 클수록 상처도 스트레스도 큽니다. 말 그대로 자기를 비운 분, 의인 성 요셉입니다.
“의인은 주님의 자비를 보고 기뻐하며 깊이 깨치나이다.”
오늘 새벽 성무일도 중 한 후렴이 의인 요셉을 지칭하는 듯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정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살았던 현자이자 의인인 요셉입니다. 구세주 탄생을 앞둔 하느님의 준비가 참 치밀합니다. 부전자전, 그 아버지 요셉에 그 아드님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단연 요셉입니다. 성 요셉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성 요셉은 다 지나가는 덧없는 세상에서 영원을, 영원한 하느님을 꼭 잡고 살았던 분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하느님의 뜻에,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았던 분입니다. 제 집무실에는 인조석에 조각된 성모자상이 있습니다. 조각상 전면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하다가 뒷면에서 온 힘을 다해 모자를 얼싸안고 있는 성 요셉의 얼굴을 보고난 후에야 ‘아!’하고 탄성을 지릅니다. 앞면에 모자를 안고 있는 보일 듯 말듯 한, 두 팔과 두 손의 정체를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성 요셉은 바로 이런 분입니다. 마리아와 예수, 모자의 보이지 않는 침묵의 배경이 되어 사셨던 의인 요셉은 흡사 흙 같고, 물 같고, 햇빛 같고, 공기 같은 분이셨습니다. 이들 없이는 한시도 못살지만 이들의 고마움을 까맣게 잊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하느님은, 하느님을 닮은 요셉은 이들 같은 분입니다.
“사람들은 그이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 앞서 의인 요셉에게 실현됨을 봅니다. 율법적 정의가 아니라 하느님 자비의 법에 따른 정의입니다. 상대방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비의 정의요, 자기를 비울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셉이 참 고독하게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법에 따를 때 고독한 삶이요 더불어 자기는 비워지고 그 비움의 자리 가득 차는 자비심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끝까지 마리아를 배려한 의인 요셉의 깊고 넓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요셉의 내면은 고뇌와 갈등으로 가득했을 것이며 참 외롭고 고독했을 것입니다. 침묵은 저절로 기도로 이어져 밤새 하느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궁즉통(窮卽通)입니다. 주님은 요셉의 기도에 응답하여 당신의 빛살 같은 말씀으로 요셉의 어둠을 환히 밝혀 주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주님도 순종의 사람, 요셉이 참 고마웠을 것입니다. 주님은 순종의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대림시기 교회는 우리에게 순종의 모범이신 의인 요셉을 배우라 하십니다. 순종하는 마음에 계시되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신 임마누엘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순종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모시는 우리 모두가 또 하나의 임마누엘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