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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비를 신비로 남겨두었던 요셉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9 조회수405 추천수6 반대(0) 신고
 
 
 

신비를 신비로 남겨두었던 요셉 - 윤경재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 1,18-24)

  

작년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그린 자화상 밑에 자신을 ‘바보야’라고 부르신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처음 그 자화상과 ‘바보야’란 글을 보았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김 추기경님의 깊은 뜻을 알고서 ‘역시 큰 그릇이시네’하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큰 바다가 이 구비 저 구비를 지나온 세상의 모든 물을 수용하듯 김 추기경님께서도 상처받은 사람이나 성공했다고 여기는 사람 모두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보듬어 주셨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간으로서 살아야지, 제 잘나면 얼마나 잘났으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 

바보일 리가 없는 분께서 자신을 바보야 하고 부르시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뇌성 같은 소리로 울리는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얼마 전 제가 다니는 본당 특강 시간에 차동엽 신부께서 오셔서 바보존이라는 책으로 강의하셨습니다. 직접 쓰시고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대박이었던 무지개 원리에 못지않은 신선한 착상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의 참된 성공을 위해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습니다. ‘꼴찌’인 줄 알았던 바보가 새 시대를 여는 블루 오션의 ‘첫째’ 덕목이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바보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손가락질당했지만, 그들이야말로 엉뚱한 발상과 자세로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엉클어진 현실을 뛰어넘을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들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고 실패한 삶처럼 보이지만, 정말 큰 바보는 세상을 일깨우고 구할 힘을 지녔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바보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이런 위대한 면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바보스러움의 가치를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 서간은 기적과 표징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알리는 방법을 잠시 미뤄두고 걸림돌과 어리석음으로 다가오신 예수님을 먼저 선포하였습니다. 자칫 평범한 성공과 실패의 스토리로 묻혀버렸을 예수님 이야기가 사도 바오로 덕분에 재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1코린 1,23)

오늘 복음은 또 한 분의 위대한 바보를 소개합니다. 바로 성 요셉이십니다. 자신의 혈육이 아닌 아이를 밴 사실을 알고서도 마리아를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당시 분위기로는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친척 엘리사벳의 집에 머물다 온 마리아의 배가 표시 나게 불렀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요셉은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마리아를 부정한 여인이라는 오명을 씌워 돌에 맞아 죽게 할지도 몰랐습니다. 순수하고 솔직한 마리아가 약혼자 요셉에게 자세한 사항을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믿기지 않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요셉은 몹시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나 요셉은 억울함과 분노와 원망을 표하기에 앞서 깊은 묵상을 통해 일단 마리아가 해준 설명을 믿기로 했습니다. 평소 마리아의 품성을 잘 알았으므로 하느님의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그녀의 말에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신비로 남겨두려는 순수한 심성이었습니다. 이런 모자라고 겸손한 마음이 그가 의인이라 말해줍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실천하는 우직함이 그의 덕성입니다. 요셉의 바보 같은 덕성에 힘입어 하느님의 계획이 차질 없이 이어진 것입니다. 요셉은 어린 예수가 무사히 자라도록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실천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예수께 인간적 삶의 지혜를 가르치셨을 겁니다.

교회는 늘 위기에 봉착합니다. 헤로데와 같은 위정자는 자신의 권력을 침해받을까 염려하여 어린 싹을 잘라버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유대교 수석 사제와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와 같이 현세에서 누리던 개인의 이득을 놓치기 싫어하는 부류들은 갖은 감언이설로 교회를 흔들어댑니다. 지금 교회는 성 요셉과 같은 충직한 바보를 필요로 합니다. 되바라지고 헛 똑똑이들이 나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대림 4주일을 맞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은사가 무엇인지 다시 새겨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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