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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겸손한 신중함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9 조회수1,032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대림 제 4주간 월요일 - 겸손한 신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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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밤에 옥상에 올라가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한 오단 쯤 되니까 여기저기서 문 닫는 소리가 나고 저도 돌 같은 것을 밟아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 때 갑자기 앞 쪽에서 사람이 한 명 슉 지나갔습니다. 깜짝 놀라 다시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서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시 맘을 가라앉히고 마저 기도를 마치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왜 하느님과 성모님께 기도를 바치면서도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 분들이 곁에 있다고 정말 느끼며 기도했다면 이렇게 무서웠을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아이는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는 천하무적이 되는 것처럼 하느님과 함께 있다고 믿으면 당연히 두려움이 없어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자 마리아도 몹시 놀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즈카리야에게 나타날 때와 조금 비교하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즈카리야도 천사를 보자 놀랐습니다. 저와 같은 경우입니다. 성소엔 사제 한 사람만 들어오게 되어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옆에 서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경우는 다릅니다. 성모님은 즈카리야처럼 가브리엘 천사의 존재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 천사가 하는 말 때문에 놀란 것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성모님은 천사가 말한 대로 주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자신이 은총이 충만하고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하자 ‘자신을 속이는 마귀가 천사의 모양으로 와서 자신을 교만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신이 전혀 그런 인사를 받을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예수님이 내 앞에 나타나면 침을 뱉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예수님이 나타나실 만큼 온전한 성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으니 그것은 틀림없이 마귀가 둔갑하여 나타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혹 만에 하나 그 분이 진짜 예수님이라면 오히려 이런 겸손한 모습에 칭찬을 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현상을 체험하고 바로 그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어버린다면 교만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을 듣고 성모님은 천사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 또한 즈카리야가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수준으로 보면 안 됩니다. 즈카리야는 믿지 못해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고 성모님은 만약 아들을 잉태하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시 번역을 하면,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가 됩니다. 성모님은 천사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자신이 요셉과 잠자리를 가져야 하는지 동정을 계속 지켜야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즈카리야는 벙어리가 되었지만 성모님은 즈카리야의 아내에게 이런 인사를 받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루카 1,45)

 

성모님은 겸손하셨기에 신중하셨고 또 믿을 줄 아셨습니다. 저도 가끔 신중하지 못해 말을 생각 없이 하거나 일을 대충 처리하여 후회하는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겸손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성모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아주 작은 교만도 자신을 해하지 못하도록 움츠리실 줄 아셨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는 것들에 두려움도 없이 너무나도 당당한 것 같습니다.

오늘 성모님의 겸손한 신중함을 배우며 우리 삶 안에서도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템포 천천히 행동하는 버릇을 들이도록 합시다.

 

지상 교회의 모델이신 성 요셉

 

저희 논문 지도교수님이 성탄 자정미사를 할 때 신자들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는 것이 더 어렵나요, 받는 것이 더 어렵나요?”

대부분이 주는 것이 더 어렵다고 대답했고, 교수님은 의외로 받는 것도 못지않게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많은 신자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였고 어떤 신자는 손을 들고 자신은 주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했습니다.

주는 사람은 사랑이 많아서 줄 것이 항상 있고 주고 싶어 합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받는 입장에서는 받도록 강요받게 되어 심한 갈등에 놓이게 됩니다.

저도 신부가 된 이후로 받기도 많이 받지만 가끔 주려하면 많은 경우에 거절당합니다. 아이들은 신부님이 빈털터리라도 되는 듯이 걱정하며 다시 돌려주고, 어른들은 사제에게 주지도 못하는데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거절하기도합니다. 물론 저도 무언가를 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할 때, 부담스러워 받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관계가 주고받는 것에서 비롯되고 성장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오고가는 것이 없으면 더 이상 관계는 진전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도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요셉은 의인이긴 하여도 성모님처럼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몇 달 친척 집에 다녀 온 약혼녀가 임신하여 온 것을 발견하는 아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약혼녀 마리아가 사랑스럽더라도 남의 아기를 잉태한 여자를 받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요셉은 마리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믿음을 줍니다. 우리가 믿음을 우리 힘으로 갖게 된 것 같지만, 사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코르넬리오가 세례를 받기 전에 천사의 도움을 받아 베드로, 즉 교회를 자기 집에 맞아들인 것처럼, 우리도 세례 받기 전에 이미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비로소 하늘의 도움으로 믿음을 가지게 된 요셉은 마리아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태중에 있는 아기 예수님까지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먼저 마리아를 받아들여야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마리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리스도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받아들이면, 그 잉태의 연장인 성체성사도 함께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마리아를 받아들이지 못함과 동시에 성체성사까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복해 말씀드리지만 성체성사는 마리아의 믿음으로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를 빼면 성자께서 지금도 끊임없이 살이 되어 우리 각 개인에게 오실 수 있다는 믿음도 사라집니다.

어쨌건 요셉은 마리아와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동시에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지상 가톨릭교회를 상징합니다. 대림전례 동안 그리스도의 탄생을 준비하며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매우 강조되는 반면 요셉은 별로 강조되지 않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교회가 마리아를 받아들이고 성령강림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살게 되기 이전에 이미, 성모님과 아기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인 지상교회의 첫 인물이고 모델인 면에서 더 많이 강조되어도 마땅한 인물인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가 주는 것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직 요셉만이 순결한 믿음으로 마리아와 예수님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은 합당한 사람에게 합당한 은총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요셉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또한 성모님을 통하여 아기 예수님을 우리 마음 안에 주시려고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첫 지상교회의 모델로서 온전한 믿음으로 성모님과 예수님을 받아들였던 의인 요셉의 마음을 닮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리아는 원죄가 없으신 온전한 믿음으로 성자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요셉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원죄에 물든 인간이지만 완전해진 믿음으로 마리아를 받아들일 줄 아셨던 분입니다. 우리가 성탄을 준비하여 먼저 본받아야 할 인물이 요셉성인인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남자를 모르면서도 아기를 잉태를 한, 그래서 세상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그 성모님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 마리아를 통하여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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