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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 12.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20 조회수363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19 대림 제4주일

이사7,10-14 로마1,1-7 마태1,18-24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한국군의 다음 주 연평도 사격 훈련 계획으로 인해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최근 한반도 긴장 사태와 관련해

19일 긴급회의를 소집한다고 합니다.

어느 때 보다도 평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어제 미사 화답송 후렴을 기도로 바치며 강론을 시작합니다.

 

“주님의 대림시기,

  한반도에 정의가 꽃피게 하소서.

  큰 평화가 영원히 꽃피게 하소서”

 

오늘 강론 주제는 평화입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말도 있듯이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전쟁을 하게 되는 참 모순적 인간이요 세상 같습니다.

평화가 이상이라면 전쟁은 현실 같습니다.

폭력적 전쟁의 쇠붙이 앞에

참 연약하고 부드럽기가 흙 같고 돋아나는 연초록색 싹 같은 평화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의 마지막 연도 생각이 납니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바로 쇠붙이의 전쟁은 가고

향그러운 흙의 평화만 남게 하라는 간절한 절규입니다.

 

참으로 애지중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기 같은 평화입니다.

평화를 지켜야 하고 평화를 살아야 하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최고 관심사도 평화입니다.

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 고백합니다.

성경도 미사 경문도 무수히 강조되어 나오는 ‘평화’라는 단어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평화를 이뤄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 수도승들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진정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수도원은 바로 기도의 집이자 평화의 집입니다.

하여 수도원의 자매들을 위한 개인 피정집 이름 역시 ‘평화의 집’입니다.

무수한 이들이 끊임없이 주님의 평화를 찾아 수도원을 방문합니다.

수도원 정문의 성모자상이나

주차장의 예수 아기를 안고 있는 성 요셉상 역시

평화로운 모습으로 이들을 맞이합니다.

 

평화를 살아야 할 곳은 바로 지금 여기 내 공동체 삶의 자리입니다.

얼마 전 불교의 조계 종정, 해인총림 방장이신 법전 스님의

동안거 결제 법문 중 다음 대목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결제라고 하여 고요한 경계에만 스스로를 묶어두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입니다.

  …공부를 함에 시끄러운 것을 피하여 고요한 곳으로 가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귀신 굴속의 살림살이를 지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혹여 그것을 공부라고 여겨서도 안 됩니다.

  옛 선사들은 이것을 흑산 밑에 앉아서

  썩은 물에 잠겨 있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공동체 현실을 떠난

현실 도피적 관상생활에 대한 질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평화는 착각 속의 자기 속임의 평화요

현실 삶에 하나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어느 아빠스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진정한 관상가는 우리를 현실 밖으로가 아닌

  현실 속으로 더욱 깊이 끌어들인다.

  어느 누가 우리를 화내게 했을 때,

  깊은 관상가는 반응하는 것을 피하고,

  온유와 사랑으로 우리를 응답하도록 이끈다.”

진정한 평화의 사람인 관상가는

공동체 밖의 사막(환상)의 평화를 찾아 나서지 않고,

공동체 중심의 깊이의 내적사막에서 평화를 이루며 삽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평화의 사람, 의인 요셉입니다.

 

 

 

침묵할 때 평화입니다.

 

침묵의 사람은 평화의 사람이며 의인 요셉이 바로 그러합니다.

침묵할 줄 모르는 게 참 큰 영적질병입니다.

침묵은 사랑입니다.

침묵은 평화입니다.

침묵은 개방입니다.

침묵은 자기 비움입니다.

침묵은 부요함입니다.

침묵을 잃어 공허하고 황량한 내면입니다.

침묵은 깨어있음입니다.

침묵할수록 우리는 주변이 모두에 깨어 있게 됩니다.

침묵은 인내의 기다림입니다.

인내의 기다림 중에 숙성되는 사랑입니다.

침묵은 들음입니다.

침묵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아하즈 역시 침묵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침묵은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침묵할 때 올바른 분별입니다.

겨울나무 같은 침묵이요 흙 같은 침묵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침묵의 스승으로 가득 한 세상입니다.

침묵 중에 고요히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의인 요셉은 침묵의 자비 중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밤의 침묵 중의 떠오른,

마리아의 처지를 배려한 의인 요셉의 지혜로운 해결책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침묵 중에 주님의 뜻을 찾았던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평화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평화의 사람이며 의인 요셉이 바로 그러합니다.

침묵은 그대로 기도로 연결됩니다.

당신 천사를 통해 침묵의 영혼, 의인 요셉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기도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완전해결을 본 요셉입니다.

요셉의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웠을 것입니다.

이런 답을 하느님 아니곤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답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께 답을 찾지 않으면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침묵의 기도 중 호수처럼 맑아진 영혼 위에 계시되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순종할 때 평화입니다.

 

순종의 사람은 평화의 사람이며 의인 요셉이 바로 그러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 들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지체 없는 순종의 모습인지요.

진정 아름다운 매력적인 사람들, 이런 순종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참으로 고마워하는 사람들은 이런 요셉 같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요셉이 순종으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임으로 비로소 평화의 완성입니다.

 

마리아의 처지가 얼마나 약하고 위태합니까?

그대로 평화를 상징하는 마리아요

세상 모든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상징하는 마리아입니다.

진정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은

세상의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이들의 평화를 위해 진력합니다.

평화처럼 약한 이들입니다.

이들이 평화로워야 세상도 진정 평화롭습니다.

약하기로 하면 흙 역시 약합니다.

흙의 평화도 보호되어야 합니다.

사람간의, 국가 간의 전쟁만 아니라

자연과의 전쟁 중에 무수히 망가지는 자연의 흙입니다.

어머니 자연, 어머니 흙이란 말도 있습니다.

어제 읽은 글귀도 잊지 못 합니다.

“흙을 파괴하는 나라는 스스로 멸망한다.”

“흙이 사라지면 우리 또한 사라진다.

  바위를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모를까.”

날로 흙이 사라져가는, 또 흙 같은 평화의 어머니들이 사라져가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경종이 되는 말입니다.

 

평화의 어머니 마리아를 지킨 의인 요셉이 참 고맙습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부드러운 흙처럼 순종하는 마음으로

매사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

그대로 또 하나의 요셉이요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만이 임마누엘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

하느님이 그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입니다.

동정의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 안에만 태어나는 임마누엘 예수님이 아니라

순종의 깨끗한 마음 안에 태어나는 임마누엘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의 우선적 특징은 순종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일하시고

우리는 순종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갑니다.

 

 

 

평화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침묵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고, 순종을 배우고 실천하십시오.

 

평화의 사람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국내외적으로 평화가 참 절실한 때입니다.

평화를 주십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되게 해 달라고,

평화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의인 요셉은 진정 평화의 사람입니다.

침묵과 기도와 순종으로 평생 평화의 삶을 사셨던 의인 요셉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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