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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엔베니도스(Bienvenidos)! -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20 조회수597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비엔베니도스(Bienvenidos)!

http://www.catholic.or.kr/

                                             

 

 

     멕시코는 여러 가지 독특한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했던 아즈텍과 마야라는 문명이외에도 아직 우리에게 채 알려지지도 않은 수많은 신비로운 문명들이 흥망을 이어갔던 땅이라서 그 흔적들은 여전히 그 후손들의 삶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전통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망자들의 날(Día de los Muertos)’이 될 것입니다. ‘디아 데 로스 무에르또스’는 멕시코 가정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들의 영혼을 기억하면서 기도해 주는 날입니다. 이래저래 우리들의 추석과 비슷한 면이 많이 있지요.

 

     이 전통은 적어도 삼천년 정도를 이어온 것이었는데 이것이 스페인 정복자들의 문화와 혼합이 되면서 가톨릭 전통의 위령의 날(11월 2일)과 혼합이 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날 멕시코 사람들은 집이나, 사무실 또는 상점마다 죽은 이들을 위한 제대를 화려하게 꾸며 놓습니다. 이 역시 우리들 추석의 제사상과 개념이 비슷합니다.

 

     죽은 영혼들이 집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향기가 강한 셈빠수칠(cempasúchil)이라는 꽃의 향기와 수많은 촛불이 길을 인도합니다. 향기와 불빛을 따라 옛 집을 방문한 영혼들은 생전에 자신들이 좋아했던 음식과 과일과 떼낄라를 원 없이 즐기며 아직 생존해 있는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통의 백미는 역시 공동묘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 하이메Jaime 신부님과 함께 미쵸아깐 주州(Estado de Michoacán)에 있는 빠츠꾸아로(Pátzcuaro)를 향해 떠났습니다. 빠츠꾸아로는 이 ‘디아 데 로스 무에르또스’라는 전통의 기원지라고 여겨질 뿐만 아니라, 하니찌오(Janitzio)와 싱숭산(Tzintzuntzan)이라고 불리는 곳에 차려지는 화려한 공동묘지는 멕시코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어서 수많은 멕시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전통을 체험하고자 하는 많은 외국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여섯 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충분히 가격이 올라 있는 오래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먼저 빠츠꾸아로 호수에 있는 하니찌오라는 섬에 갔습니다. 호수를 보기 전에는 ‘호수 안에 떠 있는 조그만 섬에 뭐 그리 볼 만한 것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막상 호수에 직접 가서 보니 우리는 차라리 바다라고 부르는 것이 편할 정도로 컸습니다. 섬에 사는 주민들 모두가 자신들의 집과 상점과 묘지에 제대를 화려하게 꾸며놓고 이제 저녁이 되면 찾아올 영혼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1월 1일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엄마를 찾아오는 날이고, 11월 2일은 성인이 되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가족들을 찾아오는 날입니다. 셈빠수칠 꽃향기로 가득한 섬은 이미 그리운 영혼들과의 해후를 앞두고 축제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영혼들이 자기 가족들을 찾아올 시간이 가까워 질 때쯤 우리는 싱숭산이라는 옛 아즈텍 문명의 피라미드 유적이 남아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반반한 가게나 식당 하나도 찾아보기 힘든 형편없이 깊은 시골 마을이었는데도 이미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낮에 내린 비로 질퍽거리는 진흙 길을 따라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공동묘지에 도착했을 때 마침 가톨릭 전통을 따르는 기도와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동네의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곳에 모두 모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바치는 죽은 영혼들을 위한 묵주기도 소리는 꽃향기와 촛불의 길 안내를 받고 무사히 옛 고향에 도착한 영혼들에게 휴식을 안겨주는 노랫소리처럼 편안하게 들려왔습니다.

 

     가톨릭 전통을 따른 예식이 모두 끝나면 이제는 수천 년을 이어온 원주민들의 방식대로 축제가 계속됩니다. 모든 가족들이 지난 일주일 내내 정성스럽게 꾸며놓은 묘지 주위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먼 길을 찾아온 영혼들과의 즐거운 해후의 시간을 즐깁니다. 생전에 비행기를 좋아했던 어린 아이의 영혼은 샛노란 셈빠수칠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꽃 비행기를 타고 엄마가 준비해 놓은 햄버거와 과자들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싸이클 선수였던 어떤 아들의 영혼은 묘지 옆에 잘 개어놓은 자신의 운동복을 입고 예쁜 꽃 자전거를 밤새 달릴 수 있습니다. 공동묘지 전체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촛불로 채워져서 밝게 빛나고 셈빠수칠 향기는 달에 머물고 있는 영혼에게까지 라도 닿을 것 같았습니다.

 

     묘지 옆에서는 여러 가지 갖가지 악기들이 동원되어 먼 길을 달려온 영혼들을 흥을 도와주고 그 음악에 맞춰 곳곳에서는 춤을 추며 환호를 합니다. 새벽이 와서 다시 먼 길을 떠나가야 하는 죽을 이들의 영혼을 위한 살아남은 자들의 요란한(?) 위로입니다.

 

     그렇게 흥겹게 죽은 이들을 환대하고 있는 살아있는 자들 사이에 끼어 앉아서 저는 묘지의 정문에 새겨진 글귀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비엔베니도스Bienvenidos(환영합니다)!” 이 한마디는 죽은 이들의 영혼이 살아남은 자들을 향한 조용하면서도 의미심장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시간이 흘러 죽은 자들의 땅으로 건너가야 할 때가 되면 이제는 죽은 이들이 우리를 그곳에서 반가이 맞아줄 것입니다. 아마 ‘비엔베니도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우리들을 힘차게 끌어안아 주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날의 예식처럼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서로 친구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환영하듯이 삶과 죽음 역시 서로를 배척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아주 가까운 이웃으로 지낸다는 것입니다.

 

     마치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 하나를 통과했을 뿐인데 이제는 그들이 ‘비엔베니도스’라고 하면서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처럼,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일 역시 담장 하나 가볍게 넘어가는 일처럼 자연스럽고 쉬운 일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들의 코앞에 닥쳐 있는 냉정한 현실과도 같은 것이고, 삶은 반대로 이루지 못할 꿈으로 가득한 뜬 구름 같은 허상과도 같은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삶은 죽음을 향하면서 점점 깊어가고, 죽음은 우리들의 지나왔던 삶이 ‘나비의 꿈’이 아니었음을 보장합니다. 우리들의 공부의 목적은 삶의 순간순간에 죽음을 기꺼이 체험하는 것이고, 그러한 죽음을 통해서 더 생기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평소에 지내던 모습대로 집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수술도, 항암치료도 거부하시고 스스로 병원 문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의학의 힘을 빌리면 얼마간 삶을 연장할 수는 있겠지만 병원 안에 갇혀서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흘러 보내고 싶지는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당신의 고향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사람들로 북적대는 휴게소에 들렀을 때였습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차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께서는 뭐가 그리 재밌으신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계셨습니다. 이 길로 집에 돌아가면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의 최후를 맞이하게 되실 분이 그렇게 웃고 계신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여쭈었었습니다.

 

     “아버지! 왜 웃고 계셨어요?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강아! 저기 저 수 많은 사람들을 한 번 자세히 살펴봐라. 다들 코앞의 목적지를 향해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지만 내게는 우습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일이다. 삶의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내 코앞에 다가와 있는 죽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저 사람들의 삶은 틀림없이 바뀔 것이다. 너는 내일 죽을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라! 그러면 가장 쉽고 단순한 삶의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죽음이 삶의 스승이다.”

 

     아버지께서는 떠나시기 전 당신의 신체 부위를 일일이 쓰다듬으시며 ‘그 동안 고마웠다. 이제는 가자!’하고 인사를 하셨고, 병자성사를 위해 집을 방문한 당시 본당신부님과 교우들에게도 한 마디 인사를 남기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봄날, 옆 산에 소풍이라도 가시는 듯 가볍게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먼저 가서 좋은 자리 잘 잡아놓고 기다릴 테니 서두르지 말고 좋은 일들 많이 하신 후에 천천히 오십시오.”

 

     항상 죽음이 코앞에 와 있음을 잘 묵상하면서 살아갑시다. 항상 마지막 하루를 지내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이 마지막 하루라는 시간 안에 사실은 우리들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배신도, 분노도, 평화도, 희망과 절망도 모두...... 그러니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시공간에 집중하며 살아가십시오. 죽음은 삶의 스승이니......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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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바람되어 (A Thousand W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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