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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남의 축복" - 12.2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21 조회수384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21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아가2,18-14 루카1,39-45

 

 

 

 

 

 

"만남의 축복"

 

 

 

만남의 은총, 만남의 선물, 만남의 기쁨,

만남의 축복, 만남의 구원, 만남의 일치입니다.

저절로 이런 만남의 행복이 아니라

진정 하느님을 찾을 때 이런 만남의 선물입니다.

만남에 대한 본격적 묵상을 나누기에 앞서 몇 가지 묵상을 나눕니다.

 

태몽과 태교에 대한 묵상입니다.

그저께 복음이 요셉의 아기 예수에 대한 태몽이라면

어제 마리아의 아기 예수에 대한 태몽이고

두 분 다 꿈(?)속에서 주님을 만나

아기 예수에 대한 탄생 예고를 들었습니다.

이 또한 복된 만남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엘리사벳입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복된 믿음의 어머니들의 만남을 통해,

엘리사벳 태중의 요한과 마리아 태중의 예수님이 만남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이상적 태교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완벽한 아기 예수의 탄생 준비입니다.

과연 이런 준비된 탄생을 맞이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온갖 청소년 문제들은

바로 태몽도, 태교도 사라진

오늘날 현실에서 기인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하나는 달력에 대한 묵상입니다.

올해도 본원 출판사로부터 달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200부를 받았는데 저는 뜯어진 박스의 달력이

아름다운 성모자상 달력이기에

필요한 분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욕심에 50부를 집무실에 갖다 놓았습니다.

다음날 달력의 일부를 갖다 달라는 한 형제의 말을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200부가 다 똑같은 성모자 달력이 아니라

100부는 성모자상 달력, 100부는 유럽수도원 사진의 달력이었습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이 모두가 딱딱한 돌 건물의 수도원 사진보다는

아름다운 성모님의 달력을 방안에 걸어두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빛, 희망과 사랑, 아름다움,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은은히 배어나오는 성모 마리아는

그대로 하느님의 모두를 반영하는 매력적인 모습입니다.

‘아, 성모자상을 찾는 보편적 마음들,

  이 또한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구나.’

깨달았습니다.

하여 가져온 50부 중에서 25부를 갖다 놓고

대신 수도원 달력을 갖다 놓았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돌 건축의 수도원 건물과 성모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만남의 욕구는 본능적입니다.

이런저런 만남으로 이루어진 만남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만나야 삽니다.

그러니 만나야 합니다.

참 좋은 만남보다 큰 축복도 없습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이 궁극으로 지향하는바 역시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 만날 때 주님과의 일치로 인한 자기해방,

자기초월의 자유에 참 나의 발견, 참 나의 실현입니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또 수도성소에 불림 받은 우리들은 주님과 운명적 만남의 복된 존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이 참 감동적입니다.

동병상련이라 만남을 갈망했던 두 믿음의 어머니들임이 분명합니다.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의 엘리사벳을 찾는 마리아요,

이런 마리아를 환대하는 참 도반 엘리사벳입니다.

엘리사벳의 만남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다음 고백에서 잘 들어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중의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태중의 주님을 만남으로 즐거워 뛰놀았던 태중의 요한처럼,

우리 또한 이 미사를 통해 주님을 만남으로

우리 영혼 또한 즐거워 뛰놉니다.

우리가 바치는 성모송의 기도 역시

주님과 성모님을 만나 기뻐하는 엘리사벳 같은 마음으로 바쳐야 합니다.

두 믿음의 어머니들은 이 축복된 만남을 통해

충만한 기쁨으로 마음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었고

불안의 어둠은 말끔히 사라졌으며, 맺힌 한은 완전히 풀렸습니다.

서로의 만남을 통해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이 한 말씀에 마리아는 온전한 참 자기를 찾았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함 중에 솟아 난 주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립니다.

엘리사벳을 통해 주님을 만남으로

참 나를 발견하여 충만한 기쁨의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이어 터져 나오는 마리아의 찬미가며 내일의 복음 내용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삽니다.

 

한번으로 끝나는 만남이 아니라

매일 평생 만나게 하고자 '만남의 수련'과도 같은

매일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시간입니다.

고정불변의 하느님이 아니요 고정불변의 내가 아닙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초월의 내적변화로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 우리의 내적여정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싫든 좋든 주님을 만나야

주님과의 일치로 인한 자기초월에 자기실현의 자유인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

자기에서 벗어나 주님과의 일치로 주님을 닮아가는 길 말고

참 자유에 이르는 길은 없습니다.

오늘 아가서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의 연인인 주님과

주님의 애인인 우리 영혼 간의 대화를 상징합니다.

사랑하는 영혼은 누구나 아가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는 법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사랑을 나눠야 영원한 청춘의 행복입니다.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들을 뛰어 넘어 오잖아요.”

 

마치 대림시기,

당신의 애인들인 우리가 그리워 달려오는 탄생하실 주님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우리의 연인이신 주님을 만나려 마중 나가는

은총의 대림시기입니다.

 

당신의 애인인 우리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대로 대림의 기쁨, 성탄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주님과의 이런 사랑의 관계 중에 살아나는 우리의 영혼입니다.

이런 주님과 사랑의 만남에서 활짝 피어나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매일 우리의 연인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애인인 우리 영혼을 찾아오십니다.

주님과 만남의 일치로 충만한 참 나의 행복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노래하여라.”(시편33,1ㄱ과3ㄱ).

 

 

아멘.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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