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을 기다립니다. -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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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0-12-23 | 조회수702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당신을 기다립니다.
전례력에 따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대림 제 1주일 미사를 홀로 봉헌했습니다. 중국에서 살 때 혼자 봉헌하는 미사에 질려서 이제는 꼭 다른 신부님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 참여하는데 오늘따라 모두 근처 수녀원과 병원으로 미사를 나가버리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미사 중에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비롯된 또 한 번의 극도의 긴장과 반목과 대립으로 얼룩져 가는 조국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빌고 또 빌었습니다. 미사 중에 문득 주님께서 저로 하여금 한 가지 생각에 오래 잠기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나는 늘 고독하면서도 행복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사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과 차림으로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요 며칠 벼르고 있었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작품들을 직접 만나보려고 나선 길입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레포르마Reforma 길에 도착했습니다. 차량으로 항상 붐비는 평일과는 달리 차량 출입이 통제되는 주일에는 시원하게 뚫린 대로에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과 친구들을 따라 달리는 강아지들로 가득 차 있어 생동감이 넘쳐 났습니다.
알라메다 센트랄 공원Alameda Central의 입구에서는 ‘평화PAZ’라고 쓰여 있는 큰 깃발들을 들고 몇몇의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사진이 담긴 해가 다 지난 2010년 달력을 팔고 있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 달력 안에는 군복을 입은 체 게바라가 손수레를 끌며 노동을 하고 있는 사진이 한 장 실려 있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찾았던 바로 그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 기쁨이 커서 해 지난 달력치고는 꽤 비싼 값을 치루고 그 달력을 구입했습니다.
알라메다 센트랄 공원의 서쪽 끝에는 ‘무세오 무랄 디에고 리베라Museo Mural Diego Rivera’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 미술관 안에서는 디에고의 ‘알라메다 공원에서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Sueño de una tarde domenical en la Alameda Central’이라는 무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벽화 앞에 앉아서 그 안에 그려진 인물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노라면 스페 인 정복자들에서부터 독립과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멕시코의 모든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꿈속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 미술관에서 나와 조금만 더 중앙광장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멕시코 문화와 예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 궁전Palacio de Bellas Artes’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 궁전에서는 멕시코 근대 미술의 4대 거장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이들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루피노 따마요Rufino Tamayo’의 ‘오늘날의 멕시코Mexico de Hoy’와 ‘국가의 탄생Nacimiento de la Nacionalidad’, 디에고의 ‘인간, 우주를 통치자El hombre, controlador del Universo’, ‘호세 끌레멘떼 오로스꼬José Clemente Orozco’의 ‘카타르시스Katharsis’, 그리고 ‘다비드 알파로 시께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의 ‘새로운 민주주의Nueva Democracia’와 ‘꽈우뜨목의 찬미와 부활Apoteósis y Resurrección de Cuauhtmoc’등의 작품들......
이 4대 거장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작품들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은 이 궁전 밖에는 없습니다. 바로 이 웅장한 대리석 궁전의 3층에 제가 가장 관심 있어 했던 디에고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제게 아주 많은 묵상거리를 제공해 주는 ‘인간, 우주의 통치자El hombre, Controlador del Universo’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작품은 풍요로운 멕시코의 자원을 상징하는 옥수수와 선인장을 비롯한 여러 식물들을 바탕으로 그 위에 여러 인간 군상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포커를 즐기는 부르주와 여성들도 있고,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인물인 레닌도 있고,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도 원숭이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작품의 한 중심에는 한 젊은 남자가 네 갈래 십자가 형태의 길목 중간에서 마치 기계를 작동하듯이 레버를 통해 한 손으로 움켜 쥔 세상을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신神은 방독면을 쓴 채 중무장을 하고 있는 이상한 생김새의 하늘의 군대와 함께 작품의 오른 쪽 위 한 구석에 쳐 박혀 있습니다.
‘혁명은 혁명예술을 필요로 하고, 혁명가의 예술은 밀과 같은 투쟁의 양식이다’라고 말했던 디에고 리베라의 사상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짓밟힌 조국의 역사 위에 또다시 반복되는 독립과 혁명이라는 피와 투쟁의 역사는 사상과 자본의 치열한 권력투쟁의 결과로 이는 결국 신이 아닌 권력을 차지한 인간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써내려간 역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주의 통치자로서의 ‘신의 뜻’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설령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스스로의 뜻을 펼쳐나갈 힘이 없이 한 구석에 쳐 박혀 있을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무기력한 ‘뜻’입니다.
자! 디에고가 혁명의 사상과 눈으로 바라보고 그렸던 세상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제의 이 세상의 모습은 서로 어떻습니까? 또 다시 피어나는 포탄의 연기 속에서 우리는 힘없이 디에고의 사상에 동의를 해야만 할까요? 우리는 이제 거룩한 기다림의 시기, 대림시기에 막 접어들었습니다. 매년 대림시기를 지날 때마다 많은 신자 분들이 단지 전례적으로 만 좁게 생각하여 아기 예수의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대림시기를 보다 영성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구원의 역사라는 종말론적 관점에서는 장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주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기라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단지 몇 주 후에 있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들떠 지내는 시기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2천 년 전, 하느님께서 기꺼이 인간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 그때 ‘이미’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야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들 기다림의 최종 목표이기에 아마도 우리들의 신앙과 인생은 ‘영원한 기다림’이라는 강물 위에 떠가는 나뭇잎과 같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 이 영원처럼 긴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구원이라는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도대체 주님은 언제 오신답니까?
섭섭한 한 말씀 드리자면 주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말씀을 듣고 놀라거나 섭섭해야 할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절대와 영원의 차원에서는 오고 감이 불필요합니다. ‘이미’ 시작된 구원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두 가지 차원의 긴장 사이에는 오직 우리들의 욕심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장이라도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세상을 부리고 싶은 욕심을 전부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영원한 기다림’이라는 인생의 강물을 거스르려는 욕망이 없이 단 한 순간만이라도 무심無心하게 떠서 그 흐름 그대로 우리를 맡길 수만 있다면, 바로 그때 주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하나가 되어 ‘이미’와 ‘아직’이 서로 오고 감이 없이도 어느 새 하나인 구원의 완성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는 표현을 좀 더 영성적으로 깊이 이해하려면 마태 복음 25장 13절의 말씀을 잘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항상 깨어 있어라’라는 주님의 명령이 바로 세상을 자기 뜻대로 다스리고자 하는 허황된 욕심으로부터 깨어날 것을 우리에게 주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대림시기는 우리보다도 더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깨닫고 느끼는 시기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까지 무기력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기다리는 때가 아니라,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주님과 하나 되는 그 체험을 위해 세상을 내 뜻대로 다스리고자 하는 우리들의 교만과 욕심을 내려놓는 때입니다.
바로 그렇게 깨어날 우리들을 디에고의 그림에서처럼 역사의 한 구석에서 오늘도 고독하게 우리를 지켜보시고 기다리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대림시기는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 쳐 박혀 계시는 주님을 다시 한 가운데로 모시는 때입니다. ‘이미’와 ‘아직’이라는 긴장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은 욕심으로 가득한 당신의 마음뿐입니다. 대림시기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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