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생활] 성작에 축성된 빵조각을 왜 넣는지 궁금해요 미사 - 스물 두 번째 이야기 무엇 때문에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눈 다음 그 작은 조각을 성작 안에 넣는지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아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미사경본 총지침은 아무 설명없이 단순하게 기술합니다. “섞음: 사제는 나눈 빵조각을 성작에 넣는다.”(구 56 d) 이에 비해 새로 나온 미사경본 총지침은 약간의 설명을 덧붙입니다. “사제는 축성된 빵을 쪼개어 조그만 조각을 성작에 넣는다. 이 예식은 구원의 업적에서 주님의 몸과 피의 일치, 곧 살아계시고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표시한다.”(총지침 83항) 이 예식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여러 다른 실천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써 로마의 주교인 교황은 교황미사에서 축성되지 않은 포도주를 축성하기 위하여 축성된 성체 한 조각을 성작에 넣었습니다. 또 다른 실천은 평화의 인사와 관련되었습니다. 아마도 미사의 연속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교황이 평화의 인사 후 그 전에 거행한 미사 때에 이미 축성된 성체조각을 성작 안에 넣었습니다. 오늘, 어제 그리고 내일도 같은 성찬례가 거행된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시간을 뛰어넘어 언제나 같은 분으로서 교회 안에 현존하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예식의 기원은 아마도 지역 사제단 교회에서 자리 잡았던 성체조각의 관습에 기인하였던 것 같습니다. 한 도시에서의 주교가 미사에서 성찬의 빵을 축성하고 그 한 조각들을 인근 모든 사제들에게 건네주면, 사제들은 소속 성당의 미사에서 축성된 포도주에 섞었습니다. 이로써 교회의 일치, 그들 주교와 함께 하는 소속 성당 공동체들과의 일치를 상징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이 섞음의 예식이 일치와 공동체성 그리고 평화의 의미라는 그 상징적 가치에 의거해보면 평화의 인사와 결부되어있다는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섞음의 예식은 미사경본 개정 전에 빵나눔의 예식과 비슷하게 공동체 신자들에게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상징적 의미를 상당히 잃어버렸습니다. 개정 이후에도 바뀐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또한 미사전례 개정 때 이 섞음의 예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섞음의 예식 바로 전에 행하는 빵 나눔의 예식은 본래의 의미를 완전히 되찾아내었습니다. 그럼 비록 역사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 예식을 계속 존속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의회 전례헌장에서 예식은 “그리스도교 백성이 쉽게 깨닫고 공동체 고유의 전례 거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21항), “단순성과 함께 간단명료하여야”하며(34항), “시대의 흐름에 따라 중복된 것이나 덜 유익하게 덧붙여진 것은 삭제되어야 한다.”(50항)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미사경본 총지침의 결정판이 나오기 전 초안에서 “이 예식의 중요성에 대해 논란이 있다. 한 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몸과 피의 일치의 표지라는 관점을 대변하고, 이에 비해 또 다른 관점은 이 예식에서 중요한 것은 양형 영성체를 위한 준비라는 점을 대변한다. … 이 의미도 로마전례가 언제나 그렇게 여겨왔던 대로 이 예식을 동방교회들과 서방교회들을 고려한 관점에서 존속시킨다.”하고 기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대부분의 동방교회 전례가 이 예식에 비중을 두고 거행하고 있기에 교회일치를 고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기부여는 다른 교회, 즉 동방전례를 거행하는 교회들입니다. 동방전례에서는 미사 때에 성체를 성혈이 든 성작에 담갔다가 작은 숟가락으로 떠서 신자들에게 영해주는 관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정작업에서 전례헌장의 근본원칙에 입각하여 성혈에 축성된 빵조각을 섞는 이 예식을 아예 삭제시켰으면 보다 정직한 해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동방전례를 거행하는 교회들과의 일치라는 관점보다는 이 예식 자체가 신자들이 알아보기가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성혈영성체를 할 경우에 해석에 어려움을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월간빛, 2009년 10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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