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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2010년 12월 25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23 조회수390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2010년 12월 25일


루가 2, 1-14.


우리는 오늘 밤, 한 아기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지금 우리가 들은 복음은 나자렛의 한 서민 요셉과 그 아내 마리아에게서 아기가 태어났고,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만삭인데도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의 호적등록 명령에 따라 먼 길을 떠났습니다. 타향인 베틀레헴에서 아기는 태어났고, 아기를 영접한 이들은 그 부근에서 밤을 새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초기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발생시켜 기록으로 남긴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주님이라 부르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리기 위해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황제의 명령을 따라 무리한 길을 떠나야 하는 보잘것없는 서민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관에는 자리가 없어 그 아기는 가축을 위해 만들어진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천민인 목자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천사의 입을 빌려 선포합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를 위한 큰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초기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오늘까지 성탄의 풍습이 기쁨의 표현들을 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쾌한 성탄 음악들과 화려한 장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 사이에 오가는 ‘성탄절을 기뻐하자’는 인사말과 선물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체험한 초기 신앙인들이 역사 안에 남겨놓은 풍습들입니다.


어두움이 가장 길어진 동지섣달의 한밤중에 빛을 밝혀 놓고, 우리는 어두움의 한가운데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기념합니다. 이 세상 우리의 삶에는 어둠이 많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재물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웃에게 무자비합니다. 권력을 탐해서 소신을 접어두고 사람의 눈치를 보며, 자기 한 사람 입신양명(立身揚名) 할 길을 찾기도 합니다. 베풀어진 우리 생명의 의미를 보지 못하고, 자기 한 사람 잘되는 것이 구원이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절망 가운데에 헤매어야 할 때도 많습니다. 지구촌을 강타한 금융 위기를 우리는 모두 겪었었고, 우리의 성실한 노력이 실패로 끝나는 절망도 우리는 겪습니다. 우리가 헤매는 어둠들입니다. 구약성서의 코헬렛은 이런 외침으로 시작합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이런 어두움들의 한 가운데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빛으로 오신 사실을 기념합니다. 그분은 율법을 잘 지키는 데에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병든 이, 가난한 이, 불행한 이들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벌 받은 것이라고 가르치는 유대교가 지배하던 땅에서, 그분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면서 그것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이가 행복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재물의 유무에 인간의 가치와 행복의 잣대를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특별한 고행을 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죄인이라는 사람에게 용서를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은 고치고, 용서하고 살리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에게 하느님의 진실을 보여 주는 빛이었습니다.


성탄축일은 예수님이 빈약하고 허약한 인간으로 오신 것을 기념합니다. 호화롭고 호사스런 삶에는 흔히 허세와 허영이 끼어들어 인간 삶의 진실을 외면하게 합니다. 허세와 허영은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려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자기 스스로를 과시하고 확장하겠다는 어둠 안에 살게 합니다. 인간 생명이 살고 자라는 건전한 온상은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보살핌이 지배하는 현장입니다. 재물만, 혹은 높은 지위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보살펴야 하는, 허약한 이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 욕심이 뿜어내는 어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고 요한복음서(1, 5)는 말합니다. 그런 우리의 어둠 안에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우리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빛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참다운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은 율법과 그들의 권위에 맹종할 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맹종이 사람을 하느님에게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은 자유로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당신 생명이 하시는 일을 자유롭게 실천하는 사람이 될 것을 원하셨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인간이 자유롭게 실천할 것을 원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진실을 당신의 삶으로 충분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초기 교회는 예수님의 입을 빌려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요한 14, 9).


자비와 사랑과 용서는 우리 욕심의 어둠이 만드는 각종 차별과 갈등을 그 근원에서 없애버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복수의 어둠이 만드는 악순환도 그 근본에서 차단합니다. 나눔은 가진 이와 갖지 못한 이의 차별을 없애는 데에 나타나는 보살핌입니다. 사랑은 버림받은 이와 버린 이의 차별을 없애는 힘입니다. 용서는 잘못한 이가 은혜로움을 체험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데에 당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차별 안에 안전과 보람을 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져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신심이 두터워서, 비로소 안심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헤매는 어둠입니다. 

 

오늘의 초라한 구유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약하게 다가갑니다. 위세 당당하게 군림하겠다는 사람 안에는 나눔도, 자비도, 사랑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구유의 초라함과 연약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 생명의 진실입니다. 오늘 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입니다. 평화가 무엇인지, 또 거룩함이 무엇인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아기가 태어난 밤입니다. 우리 앞에 던져진 연약한 하나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차별을 없애는 보살핌을 실천할 때만, 성탄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되는’ 축일일 것입니다.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자비와 사랑의 보살핌이 보이는 곳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어둠을 넘어서 하느님 생명의 빛을 보아야 합니다. 그 빛이 오늘 밤 어둠의 한가운데에 비치고 있습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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