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은 우리 삶의 주어(主語)이시다." - 12.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24 조회수392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24 대림 제4주간 금요일

사무 하7,1-5.8ㄷ-12.14ㄱ.16 루카1,67-79

 

 

 

 

 

 

"하느님은 우리 삶의 주어(主語)이시다."

 

 

 

주어가 없는 문장은 없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이 하나의 문장이라면 주어는 하느님이십니다.

과연 여러분은 ‘하느님’이 주어가 된 삶입니까?

또는 ‘내’가 주어가 된 삶입니까?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 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동사들의 주어이시다.

  (God is the subject of all the verbs)”

 

바로 믿는 이들의 삶을 지칭하는 심오하고 은혜로운 말입니다.

성경은 물론이고 오늘 1독서 나탄의 신탁(oracle)을 통해서도

이 진리가 입증됩니다.

다윗 왕의 신앙을 일깨우는 천둥 같은 말씀입니다.

다윗의 삶의 주어는 다윗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계속 ‘내가…’ 또는 ‘나는…’

하느님이 주어가 된 다윗의 삶임을 설파하는 나탄의 신탁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결정적 위대한 업적인 구세주 탄생이 예고됩니다.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구세주 탄생에 이어 실현될 영원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약속합니다.

이런 다윗의 삶에서 주어인 하느님을 뺀다면 무엇이 남을까요.

완전히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몰라서 ‘내’가 주어이지 진정 알면 ‘하느님’이 주어이심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느님이 아닌 ‘내’가 주어인 착각의 삶을 살아가는 지요.

내가 주어인 삶은 얼마나 위태한지요.

이래서 어둠 중에 방황입니다.

내가 주어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삶이기에 액세서리 신앙인 것입니다.

주어가 아닌 형용사의 장식품 정도의 하느님으로 전락한

가짜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즈카리야 찬가(canticle)도 참 은혜롭습니다.

온통 하느님이 주어가 된 이스라엘 백성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즈카리야 역시 하느님께서 자신의 삶에 주어이심을 깨닫자

기쁨에 넘쳐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온통 주도권을 잡으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주어가 되어 이루신 업적을 노래하는 즈카리야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보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하느님의 결정적 위업인 구세주 탄생을 고백합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나탄의 신탁과 즈카리야의 찬가의 결론이 일치합니다.

즈카리야 찬가에서 주어인 하느님이 빠진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새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의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우리는 아침성무일도를 마치면서

즈카리야와 함께 이 찬가를 부르면서,

또 저녁성무일도 마치면서 성모님과 함께 성모찬가를 부르면서

우리 삶의 주어이신 하느님을 상기하며 마음 깊이 각인 합니다.

 

성경의 모든 동사들의 주어는 하느님이듯이

우리 삶의 문장 역시 주어는 단 하나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믿음이 진짜 믿음이요, 진짜 겸손입니다.

진정 겸손한 이들은 ‘내가’ 란 말이 아닌 ‘하느님’이란 말을 씁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느님 자리에 나를 주어로 놓으면서

얼마나 ‘내’가를 강조하는지요.

우리 ‘삶의 성경’ 역시 ‘내’가가 아닌 하느님이 주어임을 깨달을 때

여기 겸손에서 저절로 샘솟는 찬미와 감사요 기쁨입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터져 나온 즈카리야와 시편 화답송의 하느님 찬미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하느님이 우리 삶의 주어임을 깨달을 때

저절로 샘솟는 감사와 찬미와 기쁨이요,

하느님을 찬미할 때 하느님의 우리 삶의 주어이심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삶의 주어이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주어이심을 마음 깊이 각인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