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육화로 인해 인류가 얻은 가장 큰 은총은 ‘생명’ 이다. 오늘 복음은 그 생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생명의 기원이신 하느님에 대해, 생명을 발산하는 동력으로써 빛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생명 · 말씀 · 빛을 통해 아직은 언급되지 않는 삼위일체의 표상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의 가슴속에서 확산되는 죽음 · 침묵 · 어둠과 대비되는 희망의 얼굴이다.
나는 한때 몇 개월 동안 집안에서 거의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살다 온 탓에 국내에 아는 사람이나 친분 있는 사람이 극히 제한적인 탓도 있지만, 그들의 바쁜 생활과 대비되는 내 모습이 초라해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주일미사 외에는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학회나 현지조사 등을 핑계로 굳이 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병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사람이 더불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사랑 · 평화 · 정의 · 일치 · 화해 등은 물론 각종 싸움이나 미움 · 원망도 여럿이 있는 가운데 일어나는 건강한 정신적 · 육체적 · 감정적 활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믿는 하느님이 단일한 위격을 지니신 분이 아니라 삼위의 ‘건강한 하느님’ 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고 든든했다. 건강한 하느님의 두 번째 위격인 성자의 육화를 통해 우리가 생명 (성부) 과 빛 (성령) 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
김혜경(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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