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얼마 전에 기회가 되어
젊은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 젊은이들도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눈으로는 화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멋진 풍경이 나타나
“야 멋있다!”하고 얘기하는데도
그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보고 있는 것을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그 푸르른 하늘과 들판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하늘은 우리 위에 있고 우리를 위해 있지만
하늘은 보는 이에게만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보지 않던 사람은 어느 날 문득
“어, 하늘이 있었네!”하고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고
오늘 요한복음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깨닫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빛이 엄연히 있는데도
빛이 엄연히 비치고 있는데도
그 빛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 빛을 보지도 쐬지도 않는 존재가 어둠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두운 것은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빛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요한복음 말씀의 시제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한은
빛은 현재형으로 “비치고 있다”고 얘기하고
어둠은 과거형으로
그 빛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얘기합니다.
어둠은 현재의 빛에
미처 도달하지 못한 과거입니다.
어둠은 현재의 빛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빛의 과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어두움은
현재의 빛을 깨닫지 못함으로
결과적으로 과거의 어둠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어둠을 많이 봅니다.
현실이 참으로 어둡지요.
어찌 이리 병든 사람이 많습니까?
어찌 이리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까?
왜 이렇게 참혹한 살인사건이 많습니까?
왜 이렇게 거짓이 판을 치고
속임수가 난무합니까?
왜 이렇게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그리도 뻔뻔합니까?
남북관계는 어찌 이리 꼬여만 가고
화해와 평화는 멀기만 합니까?
우리는 이렇게 현실에서 어둠을 느끼는데
오늘 성탄의 복음은 어둠 속에서
지금 빛이 비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것을 지금 깨달으라고 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지금 그 빛을 보라고 합니다.
과거의 모든 부정적인 경험들을 떨쳐버리고
과거의 모든 고정적인 관념들을 떨쳐버리고
지금 비치고 있는 빛을 보라고 합니다.
채널 고정, 시선 고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빛이 지금 우리 가운데서
현재적으로 비치고 있음을 깨달아
어둠에 고정되어 있는 우리의 시선을
빛에로 고정시키라 합니다.
그리고 빛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은형제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