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 (14) 강론 : 미사의 감칠맛 더해주는 필수 양념 미사 전례는 모든 부분이 매끄럽게 연결돼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편안하고 쉽게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어 하느님을 흠숭하고 자신의 성화를 위해 힘쓰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복음 봉독이 끝난 후 사제가 하는 강론의 효과는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성장시키는" 사제 강론은 미사 맛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본당 신부의 강론에 대해 좋게 평가하면서 본당 신부를 자랑하는 신자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는 그 신부의 강론이 그만큼 신자들 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론은 거룩한 미사나 그와 유사한 전례의 거행에 속하는데, 집전 사제나 위임된 공동집전 사제가 강론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신도는 강론할 수 없다"(구원의 성사 64항). 결국 강론은 사제 몫이다. 잘 준비한 강론은 사제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충분한 기도로써 준비한 강론은 그리스도를 통한 삶의 지혜를 주고 신자들의 의식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사제들이 강론을 하지만 모든 이들을 똑같이 이해시킬 수는 없다. 전례력과 그 날 성경 말씀을 간결하면서도 쉬운 문장과 단어 그리고 예를 들어가며 적절히 해설한다면 강론을 듣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친숙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강론을 사제 자질에만 두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신자들 입장에서 보면 강론을 잘하는 사제가 좋지만, 사제 입장에서는 강론을 경청하고 반응을 보이는 신자들을 볼 때 힘이 솟는 법이다.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독서대에서 강론할 때 신자들이 주보를 보거나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영적 양식을 제공해 주는 신분으로서의 신원의식을 상실하곤 한다. 필자가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 강론할 때 아무리 잘 준비를 해도 언어 한계 때문에 의사전달이 잘 되지 않곤 했다. 어느날 열심히 경청하던 분이 오셔서 용기를 주셨다. 강론이 무척 좋았는데, 내용이 길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해주니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결국 강론은 ① 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주일 강론은 7~10분, 평일 강론은 4~6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②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나누는 장소이며 시간이지 토론의 장이어서는 안 된다. ③ 일상적 언어 사용을 통해 묵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좋은 강론이다. ④ 원고를 읽어 나가는 형식이 아니라, 대화를 하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 ⑤ 침묵 시간을 통해 강론을 듣는 신자들 마음 속에 하느님 말씀이 새겨지고 자라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 때에 따라서, 사목적 배려에서 평신도가 강론을 할 수 있지만, 강론에 관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전례의 흐름에 부합한다. 강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규범을 다루기 때문이며, 그 날의 일용한 영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09년 11월 1일, 조학균 신부(예수회, 전례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