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기념 없음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복음서에 잘 묘사되어 있으며, 초대 교회 때부터 공경해 왔고, 중세기부터 대중적 신심 대상으로 확산되었다. 1921년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예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로 성가정 축일을 제정하였다. 이후 1969년 전례력 개정 때, ‘성탄 대축일 후 첫 주일’로 옮겼다. 한국 천주교회는 2001년부터 성가정 축일의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아기 예수님과 그분의 부모님께서 함께 사셨던 나자렛의 거룩한 가정을 기억하고 되새겨 보는 날입니다. 그분들께서는 인간적 갈등들을 신앙으로 극복하시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먼저 받드는 거룩한 가정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모든 일의 첫자리에 오게 하여 성가정을 닮은 가정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주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복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5.19-23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동아시아 전통에는 ‘사천’(事天)과 ‘사친’(事親) 사상이 있습니다. ‘사천’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고, ‘사친’은 어버이를 섬기는 행위입니다. 가정은 하늘이 맺어 준 혈연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극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갈수록 그 농도가 엷어지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섬길 줄 아는 자식은 어버이를 섬길 줄 압니다. 어버이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는 것이지요.
서로를 위하며 오순도순 모여 살았던 대가족 시대가 참 아름다운 전설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같은 핵가족에서는 조그마한 틈만 벌어져도 곧 부모가 이혼하고, 자녀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연로하신 조부모 손에 맡겨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족 안에서 사랑이라는 것, 서로를 섬긴다는 단어를 찾아보기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자식들은 부모를 욕되게 하는 패륜이 아주 흔하게 자행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패륜이 무엇입니까? 천륜마저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가정은 고통이나 시련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을 이겨 낸 가정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의 성가정도 인간적 갈등과 고뇌가 있었습니다. 다만 주님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셨기에 성가정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성가정을 본받아, 하느님을 섬기고 가족을 사랑하는 성가정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