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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26일 야곱의 우물- 마태2,13-15. 19-2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26 조회수376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3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버리려고 한다.” 14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복음을 읽을 때 제 마음을 비추시고, 복음에 따른 삶을 살도록 저를 변화시켜 주소서.

독서
네 복음서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오늘 복음은 요셉이 한 일들을 들려줍니다. 앞서 마태오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태 1, 19) 의로움은 마태오에게 중요한 덕인 것 같습니다. 마태오복음 5장 20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당신은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러 왔다고 하십니다. 의로움은 고루한 구약시대의 주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신 지금 오히려 이전보다 더 충만하게 실천해야 할 덕입니다.
마태오가 말하는 ‘의롭다’ 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마지막 심판 장면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태오복음 25장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가게 될 의인들은(25, 46) 다른 어떤 계명을 잘 준수한 이들이라기보다 가장 작은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고, 자비를 베푼 이들입니다. 그것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입니다. 그 날에 예수님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 (25, 40) 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요셉은 그런 의로움을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아기와 그 어머니’ 라는 표현입니다. 마리아라는 이름도 예수라는 이름도 ‘네 아내’ 또는 ‘네 아들’ 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성가정의 가장인 요셉을 주변부로 밀어내는 듯한 인상도 줍니다. 그 자신의 위치는 없어지고, 그는 다만 ‘아기와 그 어머니’ 를 위한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요셉의 관계는 언제나 ‘데리고’ 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사실은 자신의 피를 받은 아들도 아니고, 사실은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생각한 약혼녀였는데, 다만 주님의 천사가 그렇게 명했기 때문에 그들을 아내와 아들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보호하는 책임을 지며 그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헤로데에게 위협 받고 있던 ‘아기와 그 어머니’ 는 요셉의 보호 없이 이집트로, 또 나자렛으로 옮겨 다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모든 행동은 다만 천사의 명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집을 떠나 베들레헴에 와 있던 중에, 천사가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라 하니 요셉은 언제까지가 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한마디 말도 없이, 아무 준비 없이 그 밤에 즉시 그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요셉은 헤로데가 그 아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살림살이도 물론 챙기지 못했겠지요. 그렇게 해서 떠돌이 생활 몇 년을 한 다음에는, 다시 천사의 지시를 받고 간신히 몸붙이고 살던 곳을 떠나 갈릴래아의 나자렛으로 갑니다.

가족이란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서는 존속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요셉이 ‘아기와 그 어머니’ 에게 한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리아와 파혼을 했더라면 그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요셉은 그 모든 손해를 감수합니다. 나는 모른다고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이 보일 만큼, 다만 ‘아기와 그 어머니’ 가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 요셉의 역할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육체를 지니지 않은 천사를 대신해 그가 ‘아기와 그 어머니’ 에게 천사가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성찰
요셉의 보호를 필요로 했던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습 안에는, 오늘도 의로운 이들의 관심과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이집트로 피신하는 세 식구 안에는 난민, 외국인 노동자, 집 없는 이들, 미혼모, 가난한 이들, 박해받는 이들, 자신들의 집과 나라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는 이들의 얼굴이 서려 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내 가족의 얼굴이 들어 있습니다.

가족 사이라고 해서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체험합니다. 특별히 가족 가운데서도 언제나 다른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족에게 한결같이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자렛 성가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라는 말이 네 번이나 되풀이 됩니다. (마태 2, 13. 14. 20. 21) 의로운 요셉이 평생 되뇌며 살았던 말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데리고’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마태오가 말하는 요셉의 ‘의로움’ 이었을 것입니다.

기도
행복하여라, 가련한 이를 돌보아 주는 이 ! 불행의 날에 주님께서 그를 구하시리라. 주님께서 그를 보살피고 살려주시어 그가 땅에서 복을 받으리라. (시편 41, 2–3)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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