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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가정 공동체" - 12.2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27 조회수349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26 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집회3,2-6.12-14 콜로3,12-21 마태2,13-15.19-23

 

 

 

 

 

"성가정 공동체"

 

 

 

세상에 문제없는 천사들의 공동체는 없습니다.

 

문제없는 사람들이 모여,

천사 같은 사람들이 모여 성가정 공동체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인내의 노력을 다하기에 성가정공동체입니다.

여기 수도가정공동체 역시

밖에서 볼 때는 평화로운 에덴동산 낙원 같아도

안에서는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입니다.

어찌 수도원뿐이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뿐 어느 공동체나

안으로는 끊임없는 영적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입니다.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는 약한 인간입니다.

공동체의 관계를 떠나 사람이 될 수 있는 길도 없습니다.

과연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있는 강한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 사람이 아닌 괴물일 것입니다.

혼자 살면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만 아는 괴물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함께 사는 일보다 힘든 일도 없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버리고 이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수도생활이 무어냐고 묻는 분들에게

다음과 같이 짧게 이야기 합니다.

 

“수도생활은 공동생활이다.

  수도생활의 어려움은 공동생활의 어려움이요,

  공동생활 자체가 수행이다.

  특별히 도 닦지 않아도 된다.

  함께 산다는 자체가 도를 닦는 것이다.”

 

가정생활을 하는 분들의 이구동성의 말도

함께 사는 일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살고 못 살고는 차후 문제고

  끝까지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함께 사는 길뿐이 없습니다.

주님은, 구원은 저 멀리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함께의 삶 안에 있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내 몸 담고 있는 공동체의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구원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함께 사는 일보다 거룩한 일도 없고,

내 몸담고 있는 보금자리 공동체보다 더 소중한 것도 없고,

이 공동체를 가꾸고 돌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성가정 공동체의 건설입니까?

 

 

 

주님을 중심에 모셨을 때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사람도 약하지만 공동체도 참 약해 무너지기 쉽습니다.

피를 나눈 혈연 공동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모두가 바라보는 중심의 방향이 있어야 하고

바로 이 중심의 방향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방향을 확인해 주는 것이 바로 성전 안에서의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바치는 공동기도입니다.

비단 수도공동체뿐 아니라 가정공동체 역시 성가정을 꿈꾼다면

가족이 함께 기도를 바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공동체의 궁극적 일치도 서로 마음이 맞아서, 좋아서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방향이 같기 때문입니다.

바라보는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잊어버릴 때, 잃어버릴 때

서서히 붕괴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을 향해 주님을 닮아갈수록 견고한 성가정공동체입니다.

여기 성탄 구유를 보십시오.

성 요셉과 성 마리아 모두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와 요셉의 파란만장한 여정에서도

온통 아기 예수님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음을 봅니다.

늘 성가정 공동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할 때

저절로 성가정공동체의 건설이요

이래서 공동체가 끊임없이 함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용서와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중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참 고마운 은총의 선물이 용서와 평화입니다.

하느님 은총 없이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성가정공동체 건설은 불가능합니다.

주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면 집짓는 자들의 노고가 헛될 뿐입니다.

주님의 선물 같은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주님과 인간의 합동 예술 작품이 바로 아름다운 용서와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 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여기서 저절로 피어나는 용서와 평화의 꽃입니다.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주님께 용서를 받았기에 이웃을 용서할 수 있고

주님께 사랑 받았기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은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한 몸의 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누리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런 덕목들 성가정공동체를 이루는데 꼭 필요한 덕목들입니다.

혼자 살면 이런 이웃을 향한 배려의 수행들은 자연 소홀해 지니

사람이 되는 길은 요원할 수뿐이 없습니다.

 

 

 

찬양과 감사의 공동체입니다.

 

찬양과 감사는 함께 갑니다.

감사에서 저절로 샘솟는 찬미요

찬미할 때 저절로 무수히 떠오르는 감사입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감사할 것을 생각하면 끝이 없습니다.

행복은 선택이요 감사를 선택할 때 행복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도 이런 감사하는 사람들 안에 풍성히 머뭅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함께 노래로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보다

공동체 건설에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여기 수도자들이 성가정 수도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매일 평생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성무일도와 미사를 바치기에 가능합니다.

비단 수도공동체가 아니라도

가정공동체는 물론 어느 공동체든

함께 모여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기도로 바친다면

참 아름다운 공동체가 건설 될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도 꼭 내야 할 시간이

함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시간입니다.

이런 감사와 찬미의 기도가 일상의 삶에서도

감사와 찬미의 사람이 되어 살게 합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며 살게 합니다.

 

 

 

순종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의 표현이 자발적 순종입니다.

진정 주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순종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셉처럼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가족에게도 순종합니다.

부부관계든, 부모와 자식관계든, 형제들 간의 관계든

이 사랑의 순종만 있으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 겸손에서 나온 사랑이

순종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순종의 사람들은 따지지도 않고, 모질게 대하지도 않고,

누구를 들볶아 기를 꺾는 일도 없습니다.

요즘 노인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누구나 노인이 되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노인 문제는 장차 있을 우리의 문제입니다.

공동체의 질은,

힘은 약하고 병든 이들과 노인들에 대한 배려에서 들어납니다.

좋은 사람, 좋은 성가정 공동체를 분별하는 잣대입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 받고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습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의 기도도 응답됩니다.

사실 저는 노부모들을 잘 모신 이들의 자녀들치고

잘못된 경우 하나도 본적이 없습니다.

이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에서 나온 순종의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비단 자신의 노부모에 대해서만 아닌,

우리 주변의 모든 노인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 말해 줍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공동체는 

우리의 영원한 이상이자 꿈이자 비전입니다.

 

문제없어서, 어려움이 없어서 성가정공동체가 아니라

주님을 모시고 기도하며 살기에 성가정공동체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얼마나 시련과 고난의 파란만장한 가정이었습니까?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은 각자 주님 안에서 주님을 향해

제자리에서 끝까지 사랑의 의무와 책임을 다했기에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지금 여기서 성가정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바로 이 공동체 중심에 머물러 계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공동체의 일치를 견고히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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