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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여, 왜?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28 조회수394 추천수7 반대(0) 신고

 

 

주여, 왜? - 윤경재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마태 2,16-18)

  

성경을 읽다 보면 의구심이 솟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특히 어린 아기를 잃은 어머니들의 통곡소리, 라마의 울부짖는 소리는 지금도 우리 귀에 생생히 들려오는 듯해서 더욱 애절하기만 합니다. 

유대인들의 임금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헤로데는 그 어린 임금을 죽여야만, 자기 후손이 왕통을 이어가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잔혹하게도 예수 탄생과 비슷한 시기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모두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들의 생명을 빼앗은 헤로데의 잔혹함보다 아기 예수를 지키기 위해 그런 처사를 허용하신 하느님께 더 시선이 머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실 수 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심지어 마태오 저자가 그런 일이 미리 구약에 예언되었다고 전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슬며시 책을 덮게 됩니다. 모두 계획되었다고 하는 것이니 내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고 팔다리를 조여 오는 압박감을 견딜 수 없어서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의 꼬무락거리는 몸짓을 떠올리며 내 몸뚱어리는 진절머리를 칩니다. 아기를 갓 낳은 엄마들의 자그마한 꿈을 송두리째 앗아간 큰 슬픔을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하는지 몰라 내 가슴속에는 찬바람만 붑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적절한 때에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왜?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불행을 허용하시는 것일까? 인간들의 작은 꿈을 꼭 그렇게 훼방 놓으셔야 하는가? 이런 숱한 의구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오릅니다. 지금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냥 흘려들어도 될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지? 내 질문의 상대방은 누구이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질문을 제기할 상대방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의구심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태양은 빛나고 지구가 돌고 있었습니다. 창공의 별들은 여전히 깜박거리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사계절의 흐름은 바뀌어도 여전히 찾아왔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창 밖에는 어둠 속에서 흰 눈이 쌓이고 있습니다. 내가 분노를 느끼며 항의를 제기하는 순간에도 무엇인가 일하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질문하는 것은 ‘그분의 일 처리 방식’이었지 ‘그분께서 일하고 계시지 않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내 질문의 방향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그분께서 일하고 계시지 않은 것처럼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내 질문은 제 방식대로 일하셔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나와 상관없이 멀리 외딴곳에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내 질문의 상대방으로 제 곁에 계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유대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이런 사실을 일컬어 ‘하느님이 나와 상관없는 그분이라면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내 대화의 상대방인 당신이기에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라고 천명했습니다.

내가 질문을 드릴 때 무릎을 꿇게 하시는 분이 계심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저절로 기도하게 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께서는 악을 허락하시지만, 이는 그것을 더욱 큰 선으로 바꾸어 놓으시기 위함이다.’라고 자신의 체험을 통해 고백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 우리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침묵 속으로 침잠할 수 있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이 당신의 자녀에게 상처를 주면, 당신께서는 가만 계시지 않고 악을 선으로, 무기력을 관상으로, 울부짖음을 기도로, 슬픔을 사랑의 행동으로 바꾸어 놓으시고자 꿈꾸시는 분이시니 이 얼마나 놀라운 꿈입니까?” - 까를로 까레또 

라마의 울부짖음을 관상하셨던 수많은 교부는 우리더러 질문을 중도에 멈추지 말라고 요청하십니다. 솟아오르는 의구심을 억제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하십니다. 실컷 절망하고 울어보라고 요청하십니다. 욥이 자신의 무죄를 변호해주실 분을 끝까지 찾았던 것처럼 대화의 상대방이신 당신을 놓치지 말라고 충고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해답을 얻든 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우리의 눈길을 한 곳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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