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 13-18)
-유 광수신부-
그 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확실히 알아 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에서 그 아래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의 천사의 역할과 헤로데의 역할이 서로 상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님의 천사는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일어나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요셉에게 일러줌으로써 그들의 목숨을 구하도록 도와주었다. 즉 주님의 천사가 한 일은 죽을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하는 일을 하였다. 한편 헤로데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들을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지만 아기 예수가 자기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를 알아보라고 하였고 그들이 몰래 도망간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면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에서 그 아래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헤로데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회생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구하기 위해 자기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무조건 다 죽여 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천사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였다면 헤로데는 반대로 자기가 살기 남을 죽이는 일을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위해 어떤 삶을 사는가? 를 묻게 된다. 주님의 천사처럼 다른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해주는 삶을 사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즉 내 가족과 이웃에게 주님의 천사인가 아니면 헤로데인가?
2. 오늘 교회는 예수님 때문에 첫 번째로 죽은 무죄한 어린이들을 순교자들로 지낸다. 순교자란 교회에서 주는 최고의 영광스러운 칭호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사람이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죽는 것이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헤로데는 분명 어린이들보다 오래 살았고 높은 권좌에서 호화스럽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며 오래 살았다. 즉 헤로데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누구나 다 바라는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소유한 성공한 사람이다. 그에 비해 무죄한 어린이는 두 살밖에 살지 못한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짧은 인생을 살았다. 인간적으로 볼 때 무죄한 어린이들은 불쌍한 아기들이었고 정말 불행한 아기들이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성공한 사람은 헤로데가 아니라 무죄한 아기들이었으며 헤로데가 장수한 것이 아니라 무죄한 어린이들이 장수하고 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 또 얼마나 높은 자리에 앉았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하느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서 살다가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 비록 두 살밖에 살지 못한 어린이들이지만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순교가 된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필립1,20) 라고 말씀하셨듯이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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