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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본문+해설+묵상>-김수복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4 조회수1,964 추천수0
 

<주님 공현 대축일>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7-8.10-11.12-13(◎ 11 참조)

◎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 주 하느님, 주님의 공정을 임금에게,

주님의 정의를 왕자에게 베푸소서.

그가 주님의 백성을 정의로,

주님의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통치하게 하소서. ◎

○ 그의 시대에 정의가, 큰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그는 약한 이와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제2독서


<지금은 다른 민족들도 공동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2.3ㄴ.5-6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2,2

◎ 알렐루야.

○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 알렐루야.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마태 2,2 참조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예물을 가지고 왔노라. 

 

해설과 묵상


제1독서(이사 60, 1-6) 해설

<하느님께 구원받은 예루살렘이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의 빛이 된다>


오늘 읽게 되는 이사야서의 대목은 이사 60-62로 이루어진 단원에 속하며, 예루살렘의 영광을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이, 들어 높여져야 하고 ‘빛이 되어야 할’ 여인으로 인격화해 있다. 주님의 영광, 즉 당신 성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발현(나타나심)이 예루살렘 위에 드러나고(1-2절), 그리하여 예루살렘은 빛을 발산한다. 한편 다른 나라들은 암흑과 어둠에 싸여 있다(2절). 뭇 백성이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이 한데 모여 하느님을 찬양하는 축제를 지낸다.

그때 예루살렘은 마치 어머니처럼 자기에게 모여든 자식들을 기쁨으로 맞아들인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바다에서 나는 보물들과 백성들이 가져오는 선물로 가득 차 부유해질 것이다(5절). 동쪽에서 낙타 떼가 금과 향료를 실어올 것이다(주님께 향을 피워 올리는 제사에 사용된다. 참조. 말라 1,11).

예언자가 본 웅장한 환시에서 드러나는 보편주의(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사상)는 예루살렘을 그 중심지로 삼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이 구원받는 구심점이 될 것이다.


화답송(시편 72[71],1-2.7-8.10-11.12-13[◎ 11 참조]) 해설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섬기리이다>


시편작가는 ‘정의와 평화의 왕’을 기대하고, 그 왕의 다스림이 ‘땅 끝까지’ 미치리라고 약속한다. 타르시스(스페인의 극동)의 왕과 아라비아와 스바(에디오피아 또는 누비아)의 왕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와 충성을 바칠 것이다.

이 왕은 지혜로운 자로서 자기의 권능을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사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을 풀어 주고, 압제자들을 몰아낸다. 그 왕은 사랑과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제2독서(에페 3,2-3ㄱ.5-6) 해설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


하느님이 품고 계신 신비스런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한데 모아 하나 되게 하는 데 있다.

“같은 조상으로부터 나오고, 오직 한 뿌리에서 나온” 인류는 어느 날엔가 반드시 참된 일치(한마음, 한뜻, 한 몸)를 이루는 데 성공할 것이다. 그날에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똑같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사람이면 누구든 무시하거나 따돌리거나 이용하거나 빼앗거나 억누르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오늘 읽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대목은 그 서간의 가르침을 결론짓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묘사한다. ‘하느님의 심오한 뜻’(에페 1,9)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를, 이방인들까지를 포함하여, 하나 되게 하는 데 있다.

예전에는 감춰져 있던 그 심오한 하느님의 뜻이 이제는 성령으로 인하여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밝히 드러났다. 그러나 바오로는 자기가 특히 이방인(외교인)들을 위하여 파견된 사도라고 느끼고 자부한다. 자기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교인으로 태어나게 하고 생명을 전달하는 은총의 도구라고 자처한다(참조. 1코린 4,15).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에페 3,6)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이 온갖 차이를 넘어서 유일하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다. 우리는 인종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한 분뿐이신 아버지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약속에 참여하여”,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해 주신 약속의 유일한 공동상속자가 된다(참조. 갈라 3,16).


복음(마태 2,1-12) 해설

<이방인들로서는 처음으로 메시아를 보게 된다>


오늘 복음은 마태 1,18-2,23 중의 일부분이다. 메시아의 유년기에 관한 다섯 가지 이야기가 구약성경의 미드라쉬(전설적 이야기 형태) 형식을 따라 엮어져서 마태 1,18-2,23에 모여 있다.

마태오는 그리스도교 신자로 개종한 팔레스타인의 유다인들을 위하여 이상의 이야기들을 실음으로써, 예수께서 구약의 약속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깨우치려 한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 또는 현자들이란, 그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에서 온 학자들이나 사제들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들은 별을 보고 유다인들의 왕을 찾아온 것이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에 이끌려 찾아왔던 것처럼 찾아왔다.

마태오는 박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발라암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다. 발라암의 이야기와 복음서의 이야기가 분명히 대비되고 있다. 발라암의 이야기(참조. 민수 22,2 이하)에서는 백성을(또는 왕을) 저주하러 왔지만, 복음서에서는 박사들이 복을 기원해 주러 온다. 두 이야기에 다 빛나는 별이 나오고(민수 24,17), 발라암도 박사들도 무사히 돌아간다(민수 24,25).

별에 관한 이야기가 교육적인 목적으로 끼워 넣은 미드라쉬의 요소라고 볼 적에, 마태오의 의도는 처음부터 이방인들을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로 들여보내려는 것이었고, 하느님 나라의 보편성(온 인류에게 해당됨)에 대한 생각을 불어넣어 주려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예수께서 계시는 곳까지 와서 아기가 그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경배했다(9,11). 유다인 헤로데는 메시아를 죽여 없애려 꾀하지만(7-8절), 이방인인 박사들은 메시아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11절). 구원은 온 세상을 위해 도래하였다. 그러나 그 구원을 먼저 찾아 나선 사람들은 이방인이었다. 구원은 어쩌면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마음 착한 외교인들이 먼저 찾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바친 선물들을 가지고 중세기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왕권(황금), 그리스도의 신성(유향), 그분의 복을 가져오는 수난(몰약)으로 설명했다.


묵상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다>


“유다인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한 예언자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무관심하고 있을 때, 하느님은 멀리 있는 이방인들을 불러 유다인들 가운데 계시는 유다인의 왕을 찾아보도록 하신다. 예언자들의 예언을 듣지도 못한 페르시아인(이방인)들이 오히려 유다인들을 가르치도록 하신다.”(성 요한 그리소스톰)

그렇듯 순박한 믿음으로 기나긴 여행을 해온 동방 박사들은 선한 뜻(착한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상징한다. 동방 박사들이 유다인의 왕을 뵙고 싶은 일념으로 신앙을 가지고 여행을 계속한 것처럼, 선한 뜻을 가진 무수한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든, 메시아(구세주)를 목마르게 찾고 질문을 던지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흠숭하기 위하여 찾아다녔다.”(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들의 “기쁨은 그분을 위하는 사랑에서 솟아났다.”(성 요한 그리소스톰)


<공현 대축일의 신비를

오늘날에 되살려야 한다>


우리 안에 공현의 그리스도,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을 위하시는 그리스도가 실현되어야 한다. 공현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을 위한 은총이 되어야 한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고, 한 몸을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참조. 에페 4,11-16). 공현은 이 같은 신비가 계시되기 시작하는 축일이다. 예언자들이 깨달았던 그 신비가 맨 처음으로 온전하게 드러났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신비가 교회에 온전하게 전달된다.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신비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이 당신의 빛 안에 걸어가고, 왕들이 당신의 새벽 빛 속에 걸어갈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에게 보여 주는” 사명은 교회에 맡겨지고 우리 각자에게 맡겨졌다.

 

<사랑의 보편성>


복음의 보편성(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을 위한 복음)은 나와 남,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오만한 가치기준을 세우려는(가문, 단체, 국가, 종족에 차등을 두려는) 경향으로부터 위협받는다. 사회・정치・종교의 이념과 신념을 두고서 각기 다른 사람들 사이에 상대를 무시하고 분열을 일으키고 투쟁하려는 흐름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심지어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분열주의자들의 속세적인 요소와 조건 때문에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사랑이 일그러지고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인류를 괴롭히고 흉측하고 굴욕스럽게 분열시키는 온갖 차별 앞에서, 우리 각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세계와 인류의 단결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아무리 험하고 거칠지라도, 인류를 하나로 엮어나가는 사랑의 능력을 당해낼 상대는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시는 하느님의 위력은 우리의 온갖 인간적 범주를 한없이 뛰어넘는다. 우리는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위력이 활동하는 방법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계시의 신비는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형제자매)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비 앞에 전율을 느껴야 한다. 그 정신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그의 거듭될 수 없는 일회적인 인격과 생애를 놀라워해야 한다. 하느님은 각 사람(형제)에게 당신만 아시는 어떤 모양으로 당신을 계시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했다는 조그마한 우리의 체험에 맞추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다.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범주와 도식에 맞추려 든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은 설복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다 길어낼 수 없는 풍요한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만다.

다른 사람들을 강제로 ‘그리스도께 끌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단지 조금 도와줄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하여금 당신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그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도록 해드리는 방법밖에 없다. 단지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태어나시는지, 성령께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활동하시는지를 끊임없이 발견하도록 노력하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우리와 똑같은 입장의 구도자로 알아 사랑할 일이다. 우리도, 그들도 진리를 찾아 얻으려 하되 아직 완전히 찾지 못했으며, 구원자 그리스도를 만나려 하되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완전하게 만나지 못한다.

이 같은 넓은 사랑은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사랑이 아니고, 선물로 거저 받은 사랑이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을 존중하면서,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시는 수많은 방법들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도록 노력할 일이다. 거대한 당신 사랑이 나타나는 한없는 형태들을 조금이라도 체험하도록 노력할 일이다.

동방 박사들이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더불어 찾아낸 갓난아기, 그 앞에 엎드려 흠숭을 바친 갓난아기는 온 인류를 만나시는 하느님 사랑의 발현(나타남)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나약하고 눈먼 사람이 만든 모든 분열을 이겨낸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고(에페 2,14 이하), 형제자매들과 화해할 의무가 생긴다.

형제들이 우리와 다르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을 받아들이되 그들과 갈라서지 말 일이다. 그 다름과 몰이해는 이미 극복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다른 백성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고, 모든 사람의 ‘평화’로 당신을 제공하심으로써 극복되기 시작했다.

공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회복되기 시작했음을 말한다. 그 회복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들에게 평화의 소식으로 전해질 것이다(에페 2,17).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가족이 될 것이다(에페 2,19).



복음해설(2)


동방 박사들의 방문(2,1-12) 

2장은 그 구조와 문체로 볼 때 문학적으로 한 단원을 이루고 있다. 동방 박사들이 와서 헤로데에게 던진 질문은 성가정이 이집트로 피신하고 죄 없는 아기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을 예비한다. 그 질문이 없었다면, 그리고 ‘유다인의 왕’의 탄생에 관한 소식이 없었다면(2절), 헤로데가 그토록 잔인하게 개입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일화 안에는 ‘유다 베들레헴’, ‘이집트’, ‘라마’, ‘나자렛’이라는 지명이 들어 있다.

‘헤로데’ 왕은 이 이야기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그의 이름이 9번 언급되어 있다. 1.3.7.12.13.15.16.19.22절). 그는 헤로데 ‘대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는 다양한 칭호 아래 팔레스타인의 여러 지방을 통치하던 왕조의 창시자다(참조. 2,22; 14,1.3; 사도 12,1). 헤로데는 스스로를 유다인으로 여겼지만, 아주 그리스인이 다 되어 있었으며, 이방인다운 경향이 더 강해서, 유다교와는 겉핥기식으로만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이방인다운 기질과 폭정으로 말미암아 신하들로부터 호감을 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벌인 가장 웅장한 건축 사업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었다. 그 성전의 규모와 화려함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능가했다. 그럼에도, 34년에 걸친 그의 통치 기간에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그침 없이 많이도 흐르게 했다. 헤로데의 변하지 않는 고집스런 정책은,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배신과 반란의 낌새가 보이기만 해도, 자기 아내나 아들들일지라도, 정적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리스어로 ‘마고스’(동방 박사)라는 낱말은 아주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낱말은 페르시아 종교의 사제들, 초자연적인 힘을 지녔다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 새로운 종교의 주인공들을 가리킬 수 있다. 현재의 본문에서는 바빌론에서 유다인들의 메시아사상에 접했을지도 모르는 점성학자들, 더 일반적인 의미로, 점성술에 능한 현자들, 해몽 전문가들을 가리킬 수 있다. 그리스어 구약성경 번역본인 70인 역에서, ‘마고스’라는 낱말은 다니 2,2에서만 나온다. 전통적으로 ‘마고스’들에게 부여하는 ‘왕들’이라는 칭호는 성경 본문에 근거가 있지 않고, 후대의 전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동방 박사들을 인도한 ‘별’이 어떤 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있다. 많은 경우, 너무 단순하게, 일종의 혜성 또는 별무리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9절에서는 분명히 동방 박사들이 동쪽에서 본 별이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인도하고, 정확한 장소에서 멈추었다고 말한다.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분명히 그 별은 보통 별이 아니었다. 기적적인 표시였다. 그 표시를 동방 박사들만이 보았다는 사실이 그 해석을 확인해 준다.

옛날에 통용되던 관념에 따르자면, 위대한 인물의 탄생은 그 표시가 하늘에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또는 하늘에 새로운 별이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더구나, 랍비들이 믿는 유다교에서는 메시아에 대한 자기네 희망을 민수 24,17에 나오는 별로 상징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자연현상을 경건하게 연구하던 동방 박사들은 하늘에 그 표시가 나타난 왕을 찾아 나서(2절), 이스라엘 땅에 도착한다. 그들이 찾는 사람은 갓 태어난 ‘유다인의 왕’이다. 그래서 유다 백성의 당국자들에게서 자문과 정보를 얻으려 한다.

이스라엘 왕좌를 넘볼 수 있는 자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은 헤로데 왕은 불안을 느낀 나머지 가상의 적을 없앨 방도를 찾기 시작한다. 그런 목적으로 그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소집한다. 마태오는 아마 산헤드린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어떻든 헤로데는 유다 백성의 대표들의 권위 있는 답변을 듣고 싶어 한다.

백성의 대표들은 헤로데에게 미가 5,1을 인용하여 대답한다. 그 구절에서는 메시아가 태어날 자리로서 ‘유다의 베들레헴’을 지목하고 있다. 우습게도, 유다 당국자들은 메시아가 태어나야 할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만이 - 외국인들만이 - 그분께 충성을 바치러 왔다.

헤로데 왕의 생애 전체가 그 소란을 설명해준다. 잔인하고 의심 많은 독재자로서 그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믿지 못했다. 사방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에 비해,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렸다는 말(3절)은 덜 분명하다. 당시 사람들의 기대에 따르자면,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엄청난 기쁨과 환호를 불러일으켰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예루살렘은 기뻐하지 않는 대신 헤로데의 근심을 나누어받고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유아기를 자기 시대의 상황에다 투사하고 있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마태오가 자기 복음서를 편집할 때, 갓 태어난 교회와 유다교 회당 사이에 결정적인 단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세부 사항은 마태오 복음서 전체에 들어 있는 그 주제를 예고하고 있다.

헤로데가 동방 박사들에게 기울이는 신뢰는 어떤 모양으로도 그 왕의 역사적 인물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헤로데가 아기를 찾는 데 동방 박사들에게만 의지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왜 헤로데가 첩자들을 딸려 보내서 동방 박사들을 뒤쫓아 아기가 있는 곳을 찾아내라고 명령하지 않았는지, 그렇게 하여 가상적인 적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는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미가 5,1을 2사무 5,2와 연결 지어서 결론을 이끌어낸다. 복음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달라진 점을 소개한다.

1.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이라고 말하는 히브리어 성경이나 ‘에프라타의 집’이라고 말하는 70인 역 성경과 달리, 마태오는 ‘유다의 땅 베들레헴’이라고 말한다.

2. 또 달라진 점은 마태오가 작은 고을과 메시아의 위대하심 사이의 대조를 더 두드러지게 하려고 소개하는 강력한 부인(그 어떤 모양으로도 크거나 유명한 고을이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이다. 이 대비는 그리스어 ‘가르’(‘왜냐하면’)라는 접속사로 강조된다. “너에게서 한 통치자(‘헤고우메노스’)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베들레헴은 이미 더 이상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3. 세 번째 달라진 점은 2사무 5,2의 본문을 끼워 넣으면서, 자유스럽게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원래 본문에서, 주님은 다윗에게 이인칭으로 말씀을 건네신다. 이인칭을 삼인칭으로 바꿈으로써, 마태오는 본문을 미래 메시아,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언적 예고로 바꿔놓는다(참조. 마태 1,1).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는 구절은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1,21을 되울리고 있다. 베들레헴(다윗이 태어나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고을, 1사무 17,12.15; 20,6.28)에서 태어난 메시아는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 배부르게 먹일 목자로서 제시되고 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달라진 점 가운데서 이 점이 가장 의미가 깊다. 다른 두 가지 점도 이 점을 가리키고 있다.

갓 도착한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 앞에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그러나 선물보다도, 더 귀중하고 결정적인 것은 믿음이다. 동방 박사들의 믿음은 헤로데와 그의 궁궐의 불신으로 생긴 공간을 채워준다. 동방 박사들에게서는 하늘의 지시에 순종한 일(2.12절), 예수님을 뵙고 기뻐한 일(10절) 예수님을 흠숭하고 그분께 상징성을 띤 선물들을 바친 일(11절)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와 반대로, 헤로데의 살인 계획은 처음서부터 예수님의 생명을 죽이겠다고 노린다(참조. 12,14; 26,3-5).

‘흠숭하다.’(그리스어로, ‘프로스키네인’, 3.8.11절; 참조. 28,17)라는 동사를 삼중으로 되풀이한 것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왕권을 당신 부활로부터 출발해서뿐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계셨음을 분명히 해 준다(참조. 사도 2,36; 콜로 1,13). 유다 백성의 정치 당국자들과 종교 당국자들이 모르고 있고 인정하지도 않은 이 왕권을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인정한다. 그렇게 하여, 동방 박사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첫 이방인이 되고, 교회 안에 이방인들이 들어올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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