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병 환자 시인 한하운 님의 ‘파랑새’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나병이 주는 고독과 사무치는 서러움이 묻어 있는 시입니다. 그 흉해진 얼굴을 내밀 수 없어 소록도 외딴섬에 꼭꼭 숨어 살아야 했던 시인은, 죽어서라도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고 싶어 합니다. ‘푸른 슬픔’이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노래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런 슬픈 노래를 부를지 모릅니다. 육신의 얼굴은 열심히 가꾸며 살지만, 정녕 우리의 흉한 내면의 얼굴은 바라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시기, 질투와 분노, 온갖 욕망들이 종기처럼 돌출해 있는 내면의 얼굴은 나의 얼굴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혼의 나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병의 특징은 감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살점이 하나둘 떨어지고 더욱더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육신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이 병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이렇게 아무런 감각 없이 점점 더 본디의 맑고 깨끗한 얼굴을 잃어 갑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던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제 우리 내면을 치유하고 싶어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 앞에 나서서 겸손되이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사람, 과연 그 사람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