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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9일 야곱의 우물- 마태 3,13-17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09 조회수364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3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제 마음이 당신의 의로움으로 채워져 생활하게 하소서 !

세밀한 독서 (Lectio)
예수님의 세례사건을 연결짓는 접속사 “그때에” (마태 3, 13) 는 시간적 의미보다, 옛 시대에 속한 사람 요한이 유다 광야에서 하늘나라를 선포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는 전 (前) 문맥 (마태 3, 1 – 12)의 역사적 현 상황을 묘사하고, 새 시대를 열어 오실 예수님의 등장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활하시던 익숙한 장소 “갈릴래아” 를 떠나 “요르단” 으로 “요한을 찾아가시는데” (13절) 이 새로운 행보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함입니다. 요한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분으로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11절)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는 이유는 “모든 의로움을 이루기” (15ㄴ절) 위함입니다. 마태오복음에서 ‘의로움’ 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15ㄷ절)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요한한테서 세례를 받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의로움’ 의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의로움의 시작은 자신의 뜻을 낮추고 그분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준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와 더불어 놀라운 체험을 하십니다. 첫째,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16ㄴ절) 둘째,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6ㄷ절) 셋째,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17절) 하는 말씀을 들으십니다.

‘하늘이 열렸다.’ 는 것은 하늘이 닫혀 있음을 전제하며, 닫혀 있다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통교가 단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역으로 그분께서 친히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열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하늘을 열고 오실 분임을 계시합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더불어 열린 하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제헌되심으로써 완성됩니다. 성전은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하느님 현존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제헌되시는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져” (27, 51) 성전의 가치는 무너지고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통교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려오시는 것” (16ㄷ절) 은 예수님이 세상에 내려오시는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심을 뜻합니다. (아가 2, 14; 5, 2) 또한 세상 창조 때 심연의 물 위를 감도신 성령 (창세 1, 2) 을 ‘비둘기’  형상으로 이해한 유다인의 전통에 따라 세례 때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세례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 도유된 새로운 변화입니다. (루카 4, 18; 이사 61, 1 – 2)

예수님께서 성령이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 하늘에서 들려 온 ‘사랑하는 아들’ 이란 소리를 ‘들으셨다’ 는 것은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체험이자 확신입니다. 특별히 마태오는 ‘내 사랑하는 아들’ 에 삼인칭 주어 ‘이는’ 을 사용해 객관화시킴으로써 공생활에 앞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공적으로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능력과 권능의 구원자가 아니라 요한의 세례를 통해 죄인들과 연대하심으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하늘을 열어 오실, 제1독서에 나타나는 ‘주님의 종’ 으로 이해됩니다. (이사 42, 1; 마태 17, 5; 필리 2, 6 – 11)

이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어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이사 42, 3) 분으로 우리 가운데 오시는 하느님의 아들이며 주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죄로 단절되었던 하늘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열리게 되어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마태 6, 10)

이로써 세례자 요한한테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이루셔야 할 ‘의로움’ 이 무엇인지 확연해졌습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 그분께 겸허하게 세례를 베풀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 을 완수함으로써 구원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습니다.

묵상 (Meditatio)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태 3, 15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낮추어 요한한테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의로움’ 을 시작하셨습니다. 의로움의 시작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라가며 변화되는 삶입니다. 생활하는 신앙은 세례성사를 통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어남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세례성사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내가 교회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며, 내가 머무는 자리, 처한 상황에서 이루고자 한 의로움은 무엇인지 성찰해 봅니다. 이웃의 뜻을 헤아려 보기도 전에 고착된 나의 관념에 묶여 고집했던 것에서 일어나 하느님의 뜻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 앞에 서 있기에 넉넉한 삶이 되고자 합니다.

기도 (Oratio)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이사 4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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