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 1.1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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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1-10 | 조회수442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011.1.10 연중 제1주간 월요일 히브1,1-6 마르1,14-20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성탄시기가 끝나 연중 시기가 시작되니 꼭 제자리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는 연중시기 첫날, 늘 푸른 삶을 살라고 제의 색깔도 초록색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어제 만난 어느 자매님의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종교는 아편’이라는 폄훼가 얼마나 가당찮은 말인지 깨닫습니다. 정말 듣고 보면 공감이 가는, 참 절박한 느낌의 말입니다.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현실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느님 생명의 끈, 믿음의 끈, 희망의 끈을 놓으면 죽음이기에 이 하느님 끈을 꼭 붙잡고 살아 온 분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하느님이나 신앙은 그대로 삶이요, 결코 장식품의 액세서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없이 살 수 없기로는 우리 수도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여 이런 분들과는 이심전심, 서로 통하게 됩니다. ‘하느님 없이 살 수 없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가난함’입니다. 정말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 수 뿐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주로 찾는 저희 수도원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대로 이런 분들과 저희 수도승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참 역설적인 게 하느님 없이 살 수 없는 가난한 분들이 실제로는 마음 부자라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낙관적이며 인정이 많은, 참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허무주의도 이런 분들에게는 감상이요 사치일 뿐입니다. 영적 질병의 신호가 바로 허무주의인지도 모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후 첫 일성이자 복음의 요약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현재성을 띤 긴박한 말씀으로, 우리 안에 창조적 긴장을 조성하며 우리 무딘 마음을 두드리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때가 찬’ 오늘 여기 지금 임박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활짝 마음을 열어 회개하고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의 모범이 오늘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한 어부들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복음의 어부 형제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리 안주의 삶에서 주님을 따라 나서는 역동적 삶에로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참 끊기 어려운 게 소유요 인연입니다. 복음의 어부들은 생존이 달려있는 배와 그물의 소유를, 가족과 동료들과의 인연을 끊고, 문자 그대로 모두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섭니다. 철저한 회개의 표지입니다. 모두에게 이런 문자 그대로의 따름이 요구되는 게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이고 전적인 응답으로 따라나서는 회개의 자세를 지니면 충분합니다. 제자리에서 소유에, 사람에 집착함이 없이 갈림 없는 마음으로 온전히 주님을 향해, 주님을 따라 살 때 자유로운 삶입니다.
주님은 매일 우리를 부르십니다. 한 번 주님을 따라나서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주님의 부르심에 새롭게 따라나서는 우리 삶의 여정입니다. 이래야 매일이 새 하늘, 새 땅의 세상입니다.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꼴도 형성됩니다.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신 주님을,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시는, 우리의 운명이신 주님을 부단히 따라 나설 때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 삶의 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지만 오늘 날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 중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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