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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창문" - 1.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12 조회수422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1.12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히브2,14-18 마르1,29-39

 

 

 

 

 

"하느님 창문"

 

 

 

며칠 전 초등학교 교장공모제에 지원한 옛 동료교사가

기도를 청하기 위해 수도원을 방문해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보다 더 열심히 잘 사셨네요.”

 

저절로 우러나온 저의 솔직한 감동의 고백이었습니다.

공모제에 지원한 제출서류를 보니

책 한권의 분량 안에 그분의 교직 40여년의 삶이

그대로 아름답게 축적되어있었습니다.

정말 가정생활, 직장생활, 신앙생활 전 분야에 걸쳐

열심히 부지런히 충실히 살아온 분이셨습니다.

현재의 세상과 학교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참 눈부시게 변화된 학교 현실이요 세상임을 실감했습니다.

 

“아, 학교는 기업이 되어가고 학생은 상품이 되어가는 구나.”

 

제출 서류를 다 읽고 난 후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기보다는

철두철미 좋은 상품의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대학에서 초등학교까지 내려온 느낌이었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나, 가난한 아이가 설 자리는 없어보였습니다.

오로지 아이들이 공부와 스펙 쌓기에 전념하다 보면

공동체의 이웃과 단절, 자연과의 단절, 삶과의 단절로

괴물이 되어가지 않겠나 하는 우려심도 들었습니다.

새삼 교회역할의 중요성을 통감했습니다.

아이들을 하느님 세계에로 창문을 내주어

참 자기를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종교교육, 공동체교육의 필요성입니다.

 

현재의 거대한 감옥처럼 보이는 아파트 주거 형태도 문제입니다.

예전과 같은 고유의 집이 사라져 가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집은 우리의 몽상과 꿈을 지켜주는 하나의 우주'라는 데

이런 집 역할에 아파트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듭니다.

완전히 이웃과, 자연(흙)과 단절된 익명 속에

원자화된 괴물 인간을 만들어 가는 아파트 환경 안에서

역시 교회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느님 창문을 내줘야 삽니다.

이 하느님 창문이 없는 꽉 막힌 벽속의 삶 같은 학교교육이요

아파트 삶이라면 사람은 서서히 괴물로 변할 수뿐이 없습니다.

이게 소위 복음에서 말하는 마귀 들린 이들이 상징하는 바입니다.

하느님의 꿈을, 희망을 잃어 정신분열이나 우울증 등

모든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을 뭉뚱그려 마귀 들린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병자들 많고 마귀 들린 이들 많기로는 예나 이제나 똑같습니다.

 

“모두가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Everyone is looking for you!).”

 

화두처럼 마음에 와 닿은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이 빛살처럼 쏟아져 내리는

하느님의 창문인 예수님을 찾습니다.

이 복음 장면에서 예수님의 빠져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온통 사방이 꽉 막힌 참 어둡고 절망스런 답답한 상황일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병도 많고 마귀 들린 이도 많을 수뿐이 없습니다.

이래서 복음 선포의 사명 수행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하늘로 난 ‘하느님의 창문’이요

이런 하느님 창문을 지녀야 비로소 질병의 치유요 마귀로부터 해방입니다.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모든 이들이 주님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복음의 장면에서

새삼 우리 삶의 중심은 하느님의 창문인 그리스도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주목할 구절은 복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다음 구절입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입니다.

예수님의 빛과 생명이 어디서 유래되는지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하느님의 창문인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중심에 자리 잡은 정주의 삶입니다.

예수님이 밤마다 기도하셨던 곳은

바로 예수님의 정주 처인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수도자든 세상에 믿는 자들이든

누구나 이런 외딴 곳의 장소와 시간을 마련하여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나눠야 비로소 참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하느님을 만나는 외딴 곳의 정주 처는 어디 입니까?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외딴 곳의 정주 처에서

하느님의 생명과 빛으로 자신을 충전하면서

신원과 사명을 새롭게 한 예수님이셨습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을 체험한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처럼 그분을 고백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시고,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주셨습니다.

자비로우신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고,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형제로서 오시어

우리를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당신의 생명과 빛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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