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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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1-16 | 조회수807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 요한. 1,29-34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완벽한 조연 세례자 요한>
오세영 시인의 '12월'이란 시(詩)를 좋아하는데, 한번 읽어보십시오. 마치 세례자 요한의 삶을 두고 지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뛰어난 언변과 타고난 지도력으로 당대 백성들에게서 큰 추앙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삶이 얼마나 경건했던지 세상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야말로 오시기로 된 메시아일거야'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세례자 요한은 진정 겸손했습니다. 자신의 신원,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 '예수님이 주연인 연극에 가장 충실한 조연'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자 예수님을 향해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오신다"고 거침없이 외칩니다. 긴가민가하고 의구심을 갖던 당대 백성들에게 예수님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틀림없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다한 세례자 요한은 깔끔하게 꾸며진 무대를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조용히 뒤로 사라집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주연인 구세사 무대에 최고의 '남우조연상' 후보였습니다. 자신의 신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요한이었기에 결코 주연이신 예수님보다 튀지 않습니다. 결코 나대지 않습니다. 주연이신 예수님이 더욱 확실하게 '뜨도록' 목숨 바쳐 열연한 조연 중의 조연이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눈발이 휘날리는 황량한 산 능선에 묵묵히 선 이정표와 같은 존재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위험한 겨울 산을 타는 등산객들이 길을 헤매지 않도록 안전하게 산정(山頂)으로 인도하는 고마운 이정표로서 삶이 세례자 요한의 삶이었습니다.
오랜 만에 아이들과 농구경기를 했습니다. 선수교체로 잠깐 들어가 뛰었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 올라와서 '이제 나도 맛이 갈 때까지 갔구나'하는 느낌에 약간 서글퍼졌지요. 반면에 어느새 부쩍 커버린 아이들은 펄펄 날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리바운드 하나 잡는구나'하고 흐뭇해하는 순간, 어느새 달려온 한 아이가 제 공을 낚아채 갔습니다.
힘으로, 실력으로 아이들을 이길 수 없었지만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무대를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주고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나는 일, 그것도 결코 속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 순리에 따른다는 것, 나이에 맞게 적당히 물러서는 일,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고 서로를 위해 너무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날 때가 왔음을 알았을 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바람처럼 떠나는 수행자 뒷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또 없는 듯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의 삶은 우리 수도자들에게 귀감 중 귀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물러설 때를 확실히 파악했습니다.
비록 그 순간이 가장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 소나기 골을 마구 터트릴 수 있는 절정의 순간이었지만, 일말의 아쉬움이나 미련도 없이 확실하게 뒤로 물러섭니다. 때가 왔음을 알게 된 세례자 요한은 조금도 망설이는 법이 없습니다. 완전히 자신의 모습을 감춥니다. 주님께서 확실하게 '뜨도록', 주님께서 활짝 꽃피어나도록 철저하게도 자신을 죽입니다.
우리 안에서 매일 우리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서 매일 우리 자신이 소멸되길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사라지고 소멸되어야만 비로소 그 자리는 주님 현존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순간,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성장하시는 순간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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