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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 디자인" - 1.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17 조회수539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1.17 월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251-356)

히브5,1-10 마르2,18-22

 

 

 

 

 

 

"인생 디자인"

 

 

 

그냥 놔두지 못하고 손대고 싶어 하는 디자인 본능을 지닌 사람입니다.

어느 형제님 집을 방문했다가 

장작불 난로 따뜻한 운치 있는 휴게실 구석 탁자위의

기묘한 돌들과 몇 그루의 분재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어, 돌들이 참 기묘하네요.”

 

이어 묻지도 않은 형제님의 대답이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하느님 믿기 전에는 온통 돌 모으기와 분재에 몰두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보니 이 또한 우상 숭배 이더군요.

  하느님을 믿으니 저절로 이 취미들 사라졌습니다.”

 

돌 모아 이리저리 배치하고 감상하는 것이나,

이런저런 나무들 분재하여 놓고 감상하는 것 역시 디자인 본능의 표출입니다.

하느님을 믿은 후 보이는 것들의 디자인에서

내 인생 디자인으로 전환됐음을 뜻합니다.

바로 이게 회개입니다.

내 인생 디자인 보다 더 중요한 디자인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묵상 주제는 ‘인생 디자인’으로 참 재미있고 의미심장합니다.

 

수도원 정문을 들어서면 눈길 가는 게

왼쪽 수도원 담장 넘어 쭉 늘어서 있는 수녀원의 참나무들입니다.

참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자란, 마음 넉넉하고 편안하게 하는 참나무들과

수도원 배 밭의 전지로 인해 잘 디자인된 배나무들의 대조가

참 재미있습니다.

전자의 참나무가 이상이라면 후자의 배나무는 현실입니다.

최대한의 수확에 일하기 편리함을 목적으로 하는 배나무이기에

전지를 통한 인위의 디자인은 필수입니다.

그냥 참나무처럼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방치한다면

풍성한 열매의 수확은 기대할 수 없고

일하기도 불편하고 힘들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나무만 디자인이 아닙니다.

과연 디자인의 시대라 불릴만합니다.

급기야는

4대강의 디자인은 물론 전국토가 디자인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자연을 배려하지 않은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이 깨진

일방적인 인간 중심, 이익(돈) 중심의 디자인으로

자연이 무참히 훼손되고 있습니다.

모든 상품이나 책 역시 사람의 눈길을 끄는 디자인의 홍보는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학교 교육 역시

좋은 상품의 사람을 만들어 내는 디자인 교육으로 기울어 가는 추세입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을 내적으로 디자인할 뿐 아니라

성형수술을 통해 외적으로 사람을 디자인 하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죽 했으면 모당 대표의 ‘자연산’이란 천박한 말이 나왔겠습니까?

디자인되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지요.

내면이 공허할수록 외적 디자인에 마음을 쏟기 마련이요,

점점 눈에 보이는 외적 디자인으로 마음 향하는 천박한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디자인의 거부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된 디자인을,

본래의 내 모습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안토니오 성인과 모든 성인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 본연의 모습으로 참 잘 디자인된 모습들입니다.

우리 수도승들 역시 기도와 일이 조화된 일과표의 궤도에 충실할 때

하느님 은총으로 하느님을 닮은 참 나의 모습으로 디자인됩니다.

비단 수도승뿐 아니라 하느님을 진정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하느님은 역시 그를 당신을 닮은 당신의 사람으로 디자인해주십니다.

 

중요한 건 외적디자인이 아니라 내적 인생디자인입니다.

내적 인생디자인에 충실 할수록 외적디자인에 초연해 집니다.

사실 내적인생디자인 만으로도 부족한 시간이요

내적인생디자인이 부실할수록 외적디자인에 몰두하기 마련입니다.

하느님 최고의 인생디자인 작품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은 당신 외 아드님을 온갖 인간고를 겪게 함으로

새롭게 디자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주셨습니다.’

 

삶에서 겪는 온갖 시련과 역경을 직면하면서

하느님께 기도로 들어 올릴 때

역시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디자인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세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가면서 자신을 비움으로

하느님께 완전히 자신을 맡기신 예수님을

최고로 디자인하여 대사제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자유로움도 여기서 기인함을 깨닫습니다.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가면서 자신을 비워갈 때

하느님의 은총에 따른 내적디자인 인생에 자유로움입니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야 단식할 수 없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정말 자유로워 보입니다.

내적디자인이 잘 됐기에 분별의 지혜요 자유로움입니다.

하늘나라의 축제가 계속되는 현재 삶의 기쁨을 100% 누린,

외적디자인의 무분별한 외적수행에서 자유로운 아주 현실주의자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삶에서 오는 온갖 시련과 고통을 순종의 계기로 삼아

부단히 자기를 비워감으로

하느님의 내적디자인 작업에 충실히 협력할 때

주님을 닮아 자유로운 참 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를 당신의 사람으로 디자인해주시고,

새로 디자인된 새 부대의 우리 안에

새 포주의 말씀과 성체를 담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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