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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원한 사제" - 1.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19 조회수421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1.19 연중 제2주간 수요일

히브7,1-3.15-17 마르3,1-6

 

 

 

 

"영원한 사제"

 

 

 

별개의 영원이 아니라

시간 안에 있는 영원이요 영원 안에 있는 시간입니다.

영원을 통해 성화되는 시간입니다.

 

지금 여기서 영원을 체험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

계속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

늘 그 자리의 불암산,

언제나 그 자리에 살고 있는 정주의 수도승들 모두가 영원을 상징합니다.

땅위 곳곳의 하얀 잔설(殘雪)들 역시

‘하늘 꿈’의, ‘영원’의 흔적을 상징하는 듯

흑백의 조화가 참 신비롭습니다.

하느님의 영원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영원을,

영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영원의 체험은 바로 하느님 체험입니다.

‘영원을 생각 않는 인간이라면 제 몸을 죄악에다 묶고 마오니’란

시편 구절도 있듯이,

영원을, 하느님을 체험해 갈 때

비로소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 있는 삶입니다.

하느님 눈에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 하지 않습니까.

시간도 하느님 앞에는 상대화 되어 하느님께는 늘 영원한 오늘뿐입니다.

하여 깨달은 분들은 관심사는 오래 살고 짧게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에 일생을 담아 영원을 살 수 있는가가 문제였습니다.

성불사 주지인 학명 스님의 글이 좋습니다.

 

 

묵은해니 새해니 가리지 말게

겨울가고 봄이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라고,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살지.

 

 

과거에 아파하거나 후회하지도 말고,

또 미래에 대한 온갖 환상 말끔히 버리고

영원한 현재의 오늘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영원을 체험한 이들은

오늘 여기서 가까이 만나는 사람들과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일일일생의 삶을 삽니다.

바로 복음의 예수님이 그 모범입니다.

늘 지금 여기서 맡겨진 사람과 사명에 올인(all-in)하면서

영원한 현재를 사신 예수님이셨고

그분의 사명을 두말로 요약하면 정의와 평화였습니다.

각자 원래의 제자리에로의 복귀가 정의요,

모두 제자리에 충실할 때 조화와 균형으로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안식일법의 준수가 아니라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늘나라의 공동체 실현이었습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손을 뻗어라”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를 통해

본연의 제 모습으로 복귀시키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행위를

안식일법의 잣대로 재단하는 완고한 이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너무나 자명한 단도직입적 질문으로 이미 이 질문 안에 답이 있습니다.

안식일 ‘법대로’의 삶에 충실하다 보니 완고해져

측은지심을 상실한 바리사이들입니다.

마음의 완고함보다 더 고약한 마음의 병도 없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고,

이들은 한 술 더 떠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합니다.

악의 세력들 간의 연대는 이처럼 신속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을 뵈올 때 마음의 완고함은 치유됩니다.

마음은 활짝 열려 온유와 겸손의 마음이 됩니다.

영원한 사제이신 주님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의 모습을 깊이 렉시오 디비나 한 결과가

오늘 히브리서의 영원한 사제로서의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창세기의 멜키체덱 사제는

바로 대사제 예수님의 예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다음 히브리서의 고백이 참 심오합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있습니다.”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묘사 같지 않습니까?

온전히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한 정의와 평화의 임금이자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예표가 바로 멜키체덱 사제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영원한 사제이신 주님을 고백하며

결론을 맺습니다.

 

“그분께서는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 중

영원한 사제이신 주님은 당신 말씀과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불멸하는 생명의 힘을 주시어

우리 모두 정의와 평화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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