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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상과 관상_타울러 (중세 신비가)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21 조회수805 추천수4 반대(0) 신고
 
영성 : 하느님에 대한 나의 태도, 나의 마음가짐이라고 봅니다. 사실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Tauler 타울러 신비가는 14세기에 도미니칸입니다. 기도는 무엇인가? 영혼에 마음안에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만남·대화입니다. 요한복음 7,6 6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아무 때라도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8 너희나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라. 나는 이번 축제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갈릴래아에 머무르셨다.
신비가들은 일생 통찰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너희들은 축제 곧 예루살렘은 지역적으로 높은 곳에 있으며 속뜻은 하느님께 올라가라는 뜻으로 묵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의 축제, 너희들의 시간은 가능하지만 예수의 ‘때“=카이로스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결정을 하도록 요구하는 순간의 뜻) 아직 오지 않았다. 복음서에 너희들은 오늘의 우리들을 칭하고도 있습니다.
불어로 de taus les instants (佛語) (영어로 taus = all , instants = instant 의미)모든 것이 마음만 먹으면 매초 매순간 가능하다. 라는 의미이다.
 
해석 ; 축제는 초막절에 부정하지 않고 빨리 들어가는 것이 관례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탈출을 축하하는 과월절은 그당시 빨리 떠나야 하였고, 건초로 임시로 거처를 만들고 다시 떠나는 순례의 길이었다. 삶은 계란이 아니고 (웃음) 삶은 순례이지요. 마음을 고정시키려 하면 마음이 힘들어 집니다. 정주해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을 향하여 갈 때, 떠날 때 만이 평화가 옵니다. 이 축제란 하느님을 향해 가는 여정안에 곧 루가복음의 돌아온 작은 아들이 세상에서 온갖 것을 다 겪고.. 회개하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과 같이 우리를 내리신 하느님을 향해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집에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안주하지 말고... 가장 진실한 것...하느님께로부터 나왔기에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참되고 진실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왕이 마련한 혼인잔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 (루가 14,15-24 ; 마태 22,1-10)
17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신앙으로서 혼인 잔치에 초대 받는 것 보다 자신의 삶의 가치관, 태도, 일...등이 우선순위를 차지한다면... 위에 있다면 ...믿는다고 말을 하는 것 뿐이다. “...믿음을 ...확실히 믿습니다....”믿는다고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착각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생각과 말로 믿는 다고 하는 것은... 있지 않는 데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신기루’와 같습니다. 사막에서 출렁이는 물처럼 목이 말라서 죽도록 물을 찾아가면 그곳은 모래 뿐이고...태양과 복사열의 현상인 신기루가 또 저멀리 보입니다.
신앙이 자유롭지 않는 것은 종교로서 믿고 싶을 뿐인거죠. 더 좋고 더 추구하고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할 때 역설적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삽니다. 복음서에 말하는 축제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혼인잔치에 초대 받기 보다...) 향해 살아가야...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서 그 물을 마셔야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인생여정에서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찾아나온 것처럼 찾아야 합니다.
영원한 삶의 축제(=그 자체로 영원함에 있는 하느님과 같은 것)를 추구하면서 슬퍼서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것)은 무화과 나무에 아무 열매가 맺지 않아 주인은 가지를 잘라 버린다.
(마태오복음서 21:19) 19 마침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다. 그러나 잎사귀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 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다.
 
“너희들의 시간은 한 순간도 모든 순간마다 축제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순수,순결,참되고 가장 나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축제로 영원한 삶을 향하여 살아야 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의 면전에 진정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지금은 있지만 온전히 있지 않습니다. cf)마치 고향을 떠나 유배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차로 아시리아 제국에 패하고 2차로 바빌론에 망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흩어지고, 죽고, 학자, 지배층들은 유배지로 끌려 갑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국방’이 약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 제대로 못해서...하느님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하느님을 못 보는 무질서를(혼란) 나를 ‘턱’ (고통 시련)치십니다. 뭔가 한 대 맞어야 정신을 차립니다. 안 맞고 못 가지요. 하느님과 함께 할 때는 제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왕은 혼인 잔치에 모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마태오 22장)2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잔치에 오지 않는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변명을 합니다. 오늘 밭을 샀는데요,... 겨리소를 샀는데요, ...방금 장가 들었는데요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이것은 죽으면 소용 없지요.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영원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영원함 안에서 1년 2년 만년이 아니라 1억 2억년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합니다. 겨자씨가 성장하는 *기준은 나에게 이 영원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열심히 믿어야 ...열심히 기도해야 ... 영원함=혼인 잔치의 비유 (루가 14,15-24 ; 마태 22,1-10) 에 들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1장 거짓 경신례와 참된 경신례 1,11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하느님께 참된 경신례는 고난의 여정 끝에 참된 정착(머문다)이다.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을 드리려 한다. 내가 믿고 싶은 되로 한다. 내가 믿고 싶은 되로 한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도가 아니다. 죄송한 이야기 이지만열심히 기도는 하는데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합니다. 그리스도 계신 곳에 내가 가야 하는 데 겨리소, 밭 사고, 장가를 가기에 당신이 오세요! 마술 주술과 같습니다.
 
타울러는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야 합니다._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는 지복직관을 이루는 주님의 면전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여기는 유배지와 같습니다. 지금 삶은 세상속에 살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향을 떠나 이국 땅에서 비참하게 처참하게 살고 있는 것과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국 땅에서 죽어서는 안됩니다. 시편에 이국 땅에서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즐거운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나옵니다.
시편 제137편 1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2 거기 버드나무에 우리 비파를 걸었네. 3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하는구나. “자, 시온의 노래를 한가락 우리에게 불러 보아라.” 4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
이민간 사람은 떠나온 본향에서 처음 맛본 음식, 명절에 입던 옷...고국을 떠날 때는 한편으로 미워하면서 떠났지만 그리워 한다. 이것을 무시하는 것은 마음이 병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온 본향을 그리워 하지만 영원함을 향해 가고 가야만 합니다.
 
de tous les instants(佛語)
매순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가 안가서 못가는 것입니다. 가고 싶는데 못가는 것은 영원한 삶, 축제 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no excense (佛語) 변명은 없다. 하느님 앞에서는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찬란함 앞에 어두움이 있을 수 있나요? 복음에 ‘이를 갈면서 후회 할 것 이다.’라고 나옵니다. 세상에서 본향을 향해 갈 수는 있지만... ‘축제’을 온전히 가질 수는 없지만, 맛 볼 수는 있다. cf) 내가 부모곁을 떠나 ...그 누가 부모보다 더 잘 해주시겠는가? 먼 이국 땅에서 엄마 품이 그립다. 지금 그것을 온전히 가질 수 없으나 ...그것이 위로하고...그 기억을.. 통해 완전하지 않치만 고향의 엄마와 하나되고...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면 머물 수는 있다.
 
지금 온전히 갖을 수는 없지만 기억하고 ...왜? 그곳에서 왔기 때문에...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기도로 미리 맛 본 것은...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하느님께서 행하신 방법대로 하시기에 우리가 자기의 것으로부터 무장 되었기에...벗을수록 느낄 수 있다. 죽음 이후에는 온전히 느낄 것이다. 그러나 미리 맛 볼 수는 있다. 그 맛이 일어나는 상태. 내가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를 착각,혼돈...왜? 기쁨의 맛이 없는가? 원하는 방식이 마치 어린이가 과자를 달라고 하는 것같다. 엄마가 아이에게 원하는대로 과자만 준다면 아이를 살릴 수 없다. 요즈음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먹거리로 싸운다. 이 맛 저맛 더 달고 향기롭고 ...점점 자극된 과자를 찾는다. 밥을 안먹는다. 어떻게 되는가? 이 맛조차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매순간마다 원하는 것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맛을 알았어 내가 가고 싶은대로 가면 못 간다.
 
※전적으로 하느님이 모든 것을 주제하신다. 그것이 ‘영성’이다. 이 영원한 삶을 맛 보는 것. 이것이 고리이다.
  영원한 것 ∞ 지나가는 것
            ↪(영원한 삶을 미리 맛 본 것)
 
영원한 것지나가는 것은 공존할 수가 없지요. 고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주 낮은 단계이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봉사 열심히 하고 기도 열심히 했는데 ...주님께 복을 주세요...열심히 기도하고 지냈는데...그 삶이 얼마나 안타까워요. 영성에서 보면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있다는 체험이 ...영원한 생명을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르셨다.“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요한4,14).
이 *물을 - 현대 심리학에서 물은 무의식의 그림자를 말한다. 내 안의 분노,욕정,탐욕...)
 
사마리아 여인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달라고 청한다. ...예수님께서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4,23-24) 기도 안에서 맛 볼 수 있다. 성경 말씀은 계속 나를 정화시키고 아프게 한다. 성경이 달면 정화된 것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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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마음)에 대하여 창세기(1,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었어요. 모상이란 거울 앞에 상을 보고 나를 알지요. 거울을 보고 거기 누구요? 하면 멘탈에 문제가 있는거죠.(웃음) 인간의 영(마음)은 하느님을 닮아 있다. 다른 사람을 보고 하느님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 1,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El=신 Elobim=신들 bara=만들자 (5강, 차동엽신부 성서 맥으로) bara 사상 : 바빌론 억압과 박해상황에서 역사의 절단, 예언자를 통해 역사를 새로 쓰시는 하느님. 끊어졌으나 역사를 다시 쓰게 하시는 하느님. 개인의 삶안에서 건강 사업 생존 기로에 서있어도 bara의 하느님을 붙들고 늘어져야 한다. 1.하느님의 창조는 완벽했다.선했다. 2.인간의 타락-선택-책임성.3.현실의 좌절 죄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근거-하느님의 축복의지가 태초에 있었다.bara 동사는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이 성귀에만 쓰임.
본래 우리를 보면 하느님이 보여야 한다. 창세기1,26-27. 유사성...하느님을 파악해서 마음에 맺혀야 한다. 닮아가야 한다. 마태5,8 행복하여라, 마음이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다. 어찌보면 영(마음)의 역할이 더 중요할 수 있죠. 영혼은 우리의 아무런 수고도 없이 우리 안에 담겨진 하느님의 내용이 담겼다. 영원한 삶, 생명이 있다.
 
기도안에서 맛 볼 수 있는 것은 원래,처음에 그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세상은 정보를 키워가야...머리에 넣어서 하는 것인데 ...이런 것으로 인하여 흐려져서 기억을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깨끗해야 하느님의 방식으로 해야 *내 마음(영)에 맺힌 ...하느님의 빛으로 어두움을 몰아 내니까 오!!! 지성이 *할() 
 
! 그것이 뭔지 파악하는 것이다.
지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 각도의 하나 일 뿐이다.*
  ①선가(禪家)에서 말이나 글로 나타내기 거북한 도리(道理)를 나타내는 소리 ②사견(邪見)ㆍ망상(妄想)을 꾸짖어 반성하게 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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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주어진 시간안에서 이해 표현 능력을 수능도박에 온통 줄 서기를 하고 있다. 0.1점으로 갈라진다. 이 얼마나 비복음적인가. 정보를 넣어서 키우고 기억이 살아나서 그게 뭔가...완전히 알지 못하고... 추상 *abstraction (佛語) 이란 것은 가장 드러나는 부분을 아~ 이런 거구나...착각 마세요 보호 합니다. 아는 것 같은 데 ...의사들 감기 걸리면 어떤 의사는 항생제 먹어라, 먹지 마라, 푹 자라....곧 data를 근거로 하고 있으면 결심할 때는 ...이것도 저것도...환자는 어쩌란 말인가? 담배가 유해성이 있었는데도 법은 최근에야 인정하고 있다. 그간에 이권이 커서 의학계에서도 확실하게 근거를 제공하고 주장하지 않았다. 더 이상 은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성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언제나 믿음의 관리 하에 두어야 한다. 지성은 원자로 안의 핵과 같다. 핵의 분열을 원자로 안에서 통제해야 한다. 하느님은 당신을 알아서, 닮아가야 찾을 수 있도록 영혼안에 두시었다.
 
왜 힘드는가 ...건강 주시어 몸으로 때어 내서 내 식대로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이것 딱 저것 딱 판단한다. 지성은 모호하다. 의지는 결정을 한다. 의지는 몸(육)의 오감을 통해서 보고,듣고, 촉각,청각,미각으로 구체성을 가지고 있다. 오감으로 부딪치면서 추상적으로 어설프게 선택을 한다. 예) 지도 등산길에 오래된 지도를 보면 어설프지만 어리버리 만들었다. 올라가보면 그 길이 없지만 중요한 순간에 그 지도를 보고 도움을 얻는다.
다시 back해서 의지, 지성을 키워서 = 그것이 기도 이다.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이것이 안된다. 길을 잃는다. 이것이 묵상과 관상을 통해서 가는 길이다. 묵상은 힘들 수 밖에 없다. 영원한 빛을 찾아가는 데 지성(본질적으로 모호함)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실히 알 수 없으되 친밀해 진 것이다. 분명히 알아가는 게 아니라 친숙하게 알아 가는 것이다. 그것이다. 영적세계에서는 지적인 것은 보조적, 부차적이다. 그래서 이사야 55장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예언자를 통하여 생생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면전에서 왜 진작 가르쳐 주시지 그러셨어요 따질 것인가? 그렇다면 옆에서 아브라함이 성경을 딱 펼쳐 줄 것이다. 루가복음17,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부자가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부자가 다시 안됩니다...아브라함 할아버지!죽은이들이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성경에 이미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루가 복음 15장11-32 되찾은 아들 비유(성경본문이동(루카 15,3-7)에서 아버지의 것 완전히 탕진하고 가난한 아들처럼, 어리석은 부자(루가복음17,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처럼 성당 안가고... 자비를 사실 내버린 것이에요. 어찌보면 무서운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진정한 기도가 되려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씻어내야 합니다. 비워내야 합니다. 그렇치못한 기도 그것은 이사야 하느님이 원하지 않는 제사입니다.이사야 1: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축제에 가는 것은 의무일수는 없다. 축제인데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지요. 기쁨,생명입니다. 매순간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보다 다른 것이 더 좋은것이죠. 자기를 속이는 것이에요. 지금은 가질 수 없지만 지금은 맛 보는 것과 같아요. 멀리 떨어진 아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존재,실존,현존
존재 - 부부관계 내남편 결혼전에도 남편이 아닌 존재로 있었다. 존재했지만 남편이 아닌 존재.
실존 - 그 사람이 남편이 됐죠. 불행히도 웬쑤가 됐어요(웃음)
현존 - 지금 웬쑤로 있다.
하느님은 지금 (중요하다.) 기도하면 지금 계시는 친밀감. 온마음을 다해 (사랑해서 그냥 있는 것) 하느님 은총으로 미리 알아서 ...가장 좋은 것은 다이아 5캐럿을 사 주겠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그냥 같이 있어서 좋은 것... 궁극적으로 만남의 축제이며 현존은 친밀감이다.
히브리서 4: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예) 기도 잘하고 있나요? 그분이 하느님과 친밀함이 있는가? 그 친밀함을 모른다면 내가 ...컨세서스(공감)을 맺고 있는지 봐야 한다. 하느님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마음이다.
그분의 현존하심은 외적 기쁨이 아니다. 대학입학을 앞둔 딸의 합격은 금방 지나갑니다. 내적 기쁨은 비석처럼 세워져 지워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녹도 좀도 슬지 않는다. 훔쳐가지도 못하죠. 혼인잔치에 입고 갈 예복이에요.마태오복음서 22:11-12 11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것없이 가면
당신 왜 왔어요? 예복이 없는데 있어라고 해도 있지 못할 것이다. 어둠이 빛과 함께 있을 수 없다. 기도한다는 것은 축제하러 가는 것이다. 그 축제는 언제든지 매순간 마다 할 수 있다. 영원한 생명의 ...처음에 있었던 종착에 갈...하느님의 면전...지금 갖을 수는 없지만 맛은 볼 수 있지요. 기도 안에서 친밀을 맛보고 듣고...보고...그것은 친밀함을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느낌이라고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과 자캐오(루카 19,1-10)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배부르게 잘 사는 세관장 자캐오를 부르시자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마치 마태오 사가가 세관 앞에서 나와서 ...성경에는 아무 대화도 전해 주지 않치만...마태오 자기가 있는 곳(세관)에서 나왔기에 예수님을 보았다. 세관안에 있었으면 ...곧 자기 안에서 나와서...자신의 하고 싶은 것에서 나와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더듬어 찾아 가는 것이다. 자캐오는 절심함이 있었다. 그분을 봐야한다.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지나가시는 중에 굉장히 화끈하시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내려오라고 하시지 않으신다’(웃음)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에게 이것은 현존의 느낌이다.
*Sentiment [sɑ̃timɑ̃] 쌍티마 (佛語) : 감성, 감상(感傷),애정, 사랑 (= amour) déclarer à qn ses sentiments …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자캐오의 느낌은 아마 점프해서 뛰어 내려 왔을 것이다. 다리가 다칠까봐서 조심해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tout intime 완전한 친밀함이 일어나야 한다. 100% 온전히. 이빠이 꽉.
유배지로 떨어져 나가기 전에...
기억은 1차 나의 기억을 살리는 것이다. 예) 신부가 되어서...원래 생긴데로... 자존심이 산적(산), 해적(바다), 마적(땅)이...이정도로 변화되었어요.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 ...내 자신이 말씀(성경)에 맛들어져 말씀으로 바뀔 때...상대방이 바뀌기를 원하면 내가 먼저 말씀에 맛들어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이 하시는 방식이시다.
 
내가 열심히 하면 하느님에 의해서 맛들이기 전에 무능한, 비천한 성경에 시편 51:19 19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초기증상이다. 히브리서12장 시련과 인내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처음에는 기쁨을 주신다. 하느님이 보통분이 아니시다 (웃음) 계속 기쁨만 주시면 엉뚱한 짓 하겠죠. 쓰라림을 통해서 씻어진다. 친밀함도 내가 원하는데로 하면 안된다. 한 달란트을 땅에 묻어 둔 하인을 주인은 가장 싫어하신다. 마태오복음서 25:24-26 24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기도는 그것을(탈렌트) 불리고 불리는 영적행위이다. 매순간 마다 모든 맹세tout le jure Par moment 내가 안가서 그렇치 언제든지 갈 수 있다. 우리 삶이 가족의 의식주, 출세로 가기 위한 교육 보조자로 밀려났다. 다른 것은 도망 갈 수가 있다. 그러나 가족관계는 회피할 수 없다. 혈연 그 안에서 나의 현존을 경험하라. 그 일 때문에 마음만 아파하지 말고 ...땅에 묻어두지 말고...처참한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 하지 말고...하느님의 말씀에 맛들이면...의로움을 구하면 ...그런데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신부님들과 낚시를 간다. 손맛을 놓기가 어렵다. 살아있는 생선을 잡는 맛이란?그래서 예수님이 손맛을 아시는지 “너희는 사람낚는 어부가 되어라” (웃음)라고 하셨나봅니다. 강의가 낙싯대 사려고... 낛시밥에 걸려서 피할 수 없는 방법으로 꼬신다.
피할 수 없는 일, 가족안의 상황(내용)은 하느님을 찾는데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느님을 찾는 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용인안에 (...막을 수 있으시죠) 일어 난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 ....그래야 내용이 보인다. 확실한 검증을 말씀안의 내용 = 성경과 만나야 한다. 그렇게 기도안에서 하느님을 진정으로 찾게 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찾을 수 없다.
 
마태오가 세관 안에 있으면 못 만났다. 묵시록3장 내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느님은 문을 열 수 있으시죠. 물과 같으세요. 폭력적이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젠틀하시면 예루살렘까지 여인들이 따라 다니셨을까.마르코복음서 15:41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안목을 믿는게 낫다.
그분의 오심은 하느님과의 만남... 하느님을 찾는 것... 찾아야 만나지요. 만나야 되는데 기도하는 내용을 하느님이 주신다. 비워간다는 것은 내가 보고 느낀 것으로 1차 만나지만 나의 역할은 끝났다. 그때 하느님은 성경(말씀)안에 볼 수 있도록 기도안에서 ...다른 일도 기도이다. 나쁜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지 않는다. 저 사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장애이다. 위험성을 뼈속 깊이 정화, 회개하게 하신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 루가 15,1-32 작은 아들은 정화 되었다. 하느님이 주신 것 다 탕진한 후에 돼지와 같이 되어서 아버지 품에 돌아와서 쌍티마Sentiment [sɑ̃timɑ̃]를 알게 느낀다.현존의 느낌이다.*Sentiment [sɑ̃timɑ̃] 쌍티마 (佛語) : 감성, 감상(感傷),애정, 사랑 (= amour) déclarer à qn ses sentiments …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자캐오와 다른 점이 있다.
믿음은 쌍티마를 추구해 가야 한다. 밭에 묻힌 보물을 사야 한다. 마태오복음서 13:44 44“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한단계씩 찾고 구하고 그 보물보다 다른 것, 다른 차원...더 귀한 보물을 만나고...있는 것을 팔아 정화,회개 (고백성사)는 그런 것들에 대한 성사이다.
 
예) 미사, 묵주기도 몇 번 빠졌다고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고...그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에요. 쪼잔하게 만드는. 그런 것 가지고 예수님을 보내셨겠어요. 그렇다면 천사를 보내셨겠죠. 축제로 가는 것. 매순간 가능하다. 근본을 찾고 구해야 한다. 그것을 도울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뛰어난 학자도 모른다.4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에 하느님이 다음 자리에 있다. 요한복음서 19:39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니코테모처럼 다시 태어나야 한다. 기도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냥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기도 안에서 만나라!라는 말씀이시다.
 
모든 일, 삶, 사랑 속에서 기도가 배여서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유배지에서 기존 삶은 영원히 죽은 것이다. 영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본래의 나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만나면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으면...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것 가지고...껍데기가 금 1톤을 가진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느님 나라는 작은 아들이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면을 찾아가는 아들이다. 자기가 자기를 모르면 얼마나 비참한 것이에요. 불로 타 죽는 것보다 괴로운 상태이다. 1차적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기도는 발전되어야 , 커져야 한다. 씨앗이 썩어서 땅속에 묻혀서 신비롭게 자란다. 비록 새 순은 약하지만 가는 줄기, 싹이 자라서 30 배~100배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 분이 내안에 태어나시고 피에타...성모님처럼 완전히 자기 것을 맡기는 것이다. 꽂꽂이하고 댄스하러 가야되는 것 포기하고 아니 다음 번에 뒷집에 가야 하는 데...믿음의 궁극적인 내용은 피에타이지요. 죽음의 골짜기 안에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어떤 장을 펴서 피에타...궁극적으로 나의 모든 것 안에서 성경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살아가는 것. 주술,주문이 아닙니다. 격하시키면 안됩니다. 내가 가장 소중한 분에게 불평한다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방패막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모세의 구리 뱀, 예수님의 십자가 그것을 본 사람은 보았다. 거기에 이르렀다. 아하~ 그래서 아하 알게 된 것이다. 이 죄가 있음에 보고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변해야 한다. 하느님이 원하시는데로 되어야 한다. 들어 올릴 수 없다. 말씀안에 말씀대로 되어가지 못한다면 아프지만 알 수 없다. 모르겠다.묻지마...믿음에 안되는 거죠. 하느님 계신 곳에 나를 두어야 합니다. 그분말을 원하고 사랑해야 한다. 순결함이다. 그분만을 찾고 나를 넘어 그분인 곳에 ..분명히 모르죠. 초막집 짓고 까부수고 또 옮기고 치고...둥지 틀고 다 됐다.가 아니다. 본향(죽음 너머)가야 된다. 이제 됐겠지요. 그건 너 생각이다. 요한복음 18,34 34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요한복음서 19:8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본향(죽음 너머)...2000년 거짓이었다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하겠죠. 돌에 맞아 없어졌을 것이에요. 잘못 원하고 잘못 사랑하고 잘못 사랑했어요. 잘못 사랑하고 원할 수 있어요.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는 매순간 마다 가능합니다.*기도는 그것을(탈렌트) 불리고 불리는 영적행위이다. 매순간 마다 모든 맹세 tout le jure Par moment
 
축제로 가라 !
팁 : *레골라 피디 Règles de La foi : 어느날 하느님이 눈을 열어 주실 것. 신앙의 규칙(법칙)
예수님의 관점에서 다가 가 본 것이죠. 어떤 대상이 성인이 아니기에 왜 나를 보게 해주셨나? 하느님의 관점에서 요한복음 6장 오천 명을 먹이시다 (마태 14,13-21 ; 마르 6,30-44 ; 루카 9,10-17) 빵 기적후 보내고 혼자 기도하러 가신다. 믿어라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셔라.
요한 6,36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아니 배가 고픈데 빵을 준다는 것인가 안준다는 것인가? 예수님 보고 맛이 갔구만...많은 제자들이 떠났다.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세관원 마태오 입장에서 보면 세금에서 떼어먹고 더 내라고 할 수 있을텐데...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세관원을 나와야 한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교부, 신비가들은 일생을 기도와 묵상으로 캄캄한 세계를 넘어 수행하였다.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고 보려고 하였다. 나는 모르겠다. 자신을 버린 순간 눈이 열렸다. 그렇게 성경 말씀이 들어왔다. 저 김병로 신부도 바닥치고 세상 한 바퀴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기도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타울러 “매순간 마다 축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때가 안되었다.” 자기 것이 하나도 없어야 신약에 시메온,한나처럼 (늙은 나이에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야) 구세주가 아이로 오심을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시메온과 한나의 예언 루가 2장25-39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원하는데로 오시지 않는다.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한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창조하면 안된다. 말씀이 열려서 내가 들어 갈 수 있어야 말씀이 보인다. 일생을 통해 주님에게 업혀감으로 걱정하지 마라. 나만 업혀가면 된다. 하느님께 업혀서. 내것을 벗어야 업힐 수 있다. 들판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야 한다. 바람에 실려가야 한다.
깃털이 바람에 실려 날아 가듯이, 화살이 날아 가듯이...궁수가 쏜 화살이 하는 일은 그냥 날아갈 뿐이다. 그 때문에 할 수 있다.
 
*레골라 피디 Règles de La foi : 어느날 하느님이 눈을 열어 주실 것. 신앙의 규칙(법칙)
①.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시다. 이 말씀은 뭐냐?하면 쌍티마Sentiment [sɑ̃timɑ̃]를 알게 느낀다.현존의 느낌이다.*Sentiment [sɑ̃timɑ̃] 쌍티마 (佛語) : 감성, 감상(感傷),애정, 사랑 (= amour) déclarer à qn ses sentiments …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자캐오가  행동을 가져온 것. 자체가 깨달음이 와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못 느끼는 것이지 ...그분이 안계신다면 할 수 없다. 네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믿음이란 없다. 믿음이란 전적으로 하느님이 이끄시고 날아가는 화살처럼, 바람 속에 깃털처럼 믿음이 있어야 날아 간다.
②비록 못느껴도 찾고,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더 애써 구하고 찾아야 한다. 좌절, 절망이 있을 수 없다. 내가 한 일은 감춰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건 나의 문제이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은 영원한 축제의 장이다. 종말에만 있는 곳이 아닌 ...미리 맛 볼 수 있다. 바로 네 안에 있다. 그 안으로 축제로 들어가야 한다. 충실하게 Loyale. une intention loyale 끝까지 가야 한다.
 
성 이냐시오“영적인 것은 훈련excersize이다." 훈련은 되기 위한 일이 될 때까지 해야 한다. 훈련은 되면 더 잘되게, 그래서 이냐시오 성인이 군인이기에 더 훈련을 잘한 것이다. 그래서 무서운 말이죠. 안느껴져요? 답을 구하는 방법은 2가지 뿐이다.
 ①.영원한 죽음으로 들어 간다.
 ② 될 때까지 훈련(교부, 신비가들이 그렇게 했다.)-극기의 삶을 산다. 예수님의 인생은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으로서 끝까지 하느님을 찾으셨습니다. 영원한 기쁨,생명은 기회가 좋던지, 나쁘던지...바오로 사도처럼 ”
낚시에는 고기가 안잡히는 100가지 이유가 있다. 초짜 낚시군은 잡는데 고수가 안될 때 100번째 이유는 ‘이상하게 안된다.’이다(웃음)
 
변명에 숨어서는 안된다. 찾아가는 여정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머물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루가 17장7-10 “저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겸손하게 섬겨라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종은 loyal (충성·충실)해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우리는 죽는다. 고스톱 몇 만원으로 부들부들 싸운다. 영원한 것에 감이 없는거에요. 왜 충실함이 없을까요? 자기 것·원하는 것에 사로 잡혀서 그렇습니다. 네가 쌍티마Sentiment [sɑ̃timɑ̃]를 못했다고 하여도.현존의 느낌이다.*Sentiment [sɑ̃timɑ̃] 쌍티마 (佛語) : 감성, 감상(感傷),애정, 사랑 (= amour) déclarer à qn ses sentiments …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그것을 믿고 희망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의 삶 안에서 충실한 지향이 있을 때... 느끼지 못해도 믿음을 갖는다. 느낄 수 있다 또는 못 느낀다고에 연연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면 누가 목숨을 내놓겠습니까? 하느님을 못느끼는 것은 언제나 계시는 그분을 그냥 모르는 것이다.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새로워지지 않으신다. 내가 변해야 깊이 알아 들어야 또다른 상황에 와 계시는 분을 알아보는 것이다. 늘 숨어 계시는 하느님! 보이지 않는데 믿음은 더 커져 갑니다.
 
요한복음서 20:29 29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분이 오셨는데 새로운 상황에 익숙 친숙해져야 한다. 그 상황에 친밀 쌍티마Sentiment [sɑ̃timɑ̃] 해져야 한다. 그 때 성전에 들어와 맛본후 새로워졌다. 또 하느님은 숨으신다. 껌벅껌벅 졸면서도 성경 공부하던 시절에 앗 느낌이 들었었다. 하느님은 또 숨어 버리셨다. 그분을 놓친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때가 되지 않아서 감추어 계시고 숨어 계시어 참다운 하느님이 순간이고...찰나(현존의 경험)이다. 친밀하려면 얼마나 수고가 많아야하는지...말씀으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씻어내고...그분이 마련해 주신 것으로 받아 들일 때...안보이는 데 저 멀리 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순례여행에서... 내것은 하나씩 버리고...마음만 가지고 가는 것이다.
 
축제에 가는 것. 그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고 할 수가 있다. 그때마다 숨어 계시는 것 같다. 늘 내가 새로워 지기 때문이다. 내가 하느님을 안다고 하면 ... 우려먹는 다면 그것은 진부한 사람이다. 흥하고 콧방귀를 켜도 된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다. 내가 새로워져서 내가 들려 올려져서 (희생제물) 하느님께 영원한 것을 맛을 보고, 생명을 주시고 친밀함(=자캐오 같은 기쁨 : 쌍티마)을 주시는 그분을 모든 것 안에서 찾고 발견해야 한다. 영신수련에서 관상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6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아무 때라도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8 너희나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라. 나는 이번 축제에는 올라가지 않겠다. 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갈릴래아에 머무르셨다. 초막절에 가르치시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요한 7,6-10)
이전의 것에서 새로움으로 나가기에 주님이 나타 나시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성경으로 기도하고 보는 영적 전통 - . *레골라 피디 Règles de La foi : 어느날 하느님이 눈을 열어 주실 것. 신앙의 규칙(법칙)
거의 언제나 숨어 계시는 것처럼 내가 새로워지므로 친밀해져가서 보면 또 숨은 듯해져 계신다. 나는 또 친밀해져야 한다. 새로워져 감으로써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은 영(마음)과 영혼 안에서 일어난다.
 
           
          ⤺
  
영원한 생명 - 기억(추상성) - 육 (구체성)
            ⤻
 
지성·기억 알긴하는데 미분화 되어있다. 추상성은 모호하다. 추상성과 구체성이 나누어져 있는데 뭉텅거려 있다. 술도 원액만 있으면 맛이 없다. 원액과 물이 일정하게 희석되어 있는 것이 술이다.
 
영과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인류 역사안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무지한 것이다. 영과 영혼이 만나는 곳이 성전이다. 마음이 모아지는 곳이다.
 
 
 
 
 
 
하느님
오감
 
 
현존의 기쁨-감추어진 것이 드러나서 ...나의 죄로 못봐도....기쁨
아빌라의 데레사 - 칠궁방 (거주,머무는 곳)
우리의 중심, 요새이다.
가 거기에서 쉴 수 있고, 쉴 수 있다. 그 요새에 들어가야 한다. 신비체험 동일하지만 표현이 다르다.
돈보스코 신부님이 살레지오 수도회를 창설하셨다. 영성지도 신부님이 fine point 점. 즉 가는 점이 모여 선이 된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다.라는 표현과 통한다. 친히 하느님이 인간과 똑같이 싹, 눈으로 되시었다. 내我가 죽으면 그분도 죽고 내我가 살면 그분도 사신다.
정작 우리 멋대로 오만 방자하면 죽는다. 무질서의 파괴로 작은아들이 루가복음15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죄에 떨어져 본 사람만이 체험해야 알 수 있다. 제자들은게셋마니에서 죽을 때까지 몰랐다. 부활하신 후에 알았다. 야고보는 끝까지 예수님을 기다린 인내의 사람이었다.
 
예수님과 자캐오. 서양 그림에서는 보통 예수님이 내려 보시는 데 자캐오의 그림장면에서는 자캐오가 예수님을 내려 본다.(그림) 루가복음 19장에 자캐오는 예수님이 내려오라고 하자 얼른 내려와 기쁘게 예수님을 집으로 맞아들인다. 복음서에 옆에 있던 죄인들은 자기식대로 본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기쁨에 넘쳐 그 기쁨이 변화를 가져온다. 변화를 바라고 구하고 애써 찾아야 한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축제에 언제든지 갈 수 있다. 그런데 숨어계시는 예수님을 보는 순간에 사라지신다. 모든 것을 그분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루가17,9)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그분과 함께, 우리 앞에 함께. 성경에 *레골라 피디 Règles de La foi : 어느날 하느님이 눈을 열어 주실 것. 신앙의 규칙(법칙) 이 있다.
하느님 역시 양식의 변화는 없이 내용이 다르게 온다. 묵상,관상...이웃에게 오는 방식을 알아채는 통찰까지 가야 한다. 그렇치않으면 게으른 종은 주인이 언제 올지 모든다. 종이 누어있으면 주인이 좋아하겠는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수련원에서 누어있다가 원장님이 들어오셨는데 ...지금까지 부끄러움이 새겨졌다. 그런 양식에 해석이 되어야...기억, 해석, 분석->통찰->힘, 용기(생명이다.)
그것이 신전,성전이고 축제 때 가는 것이다. 묵상은 늘 준비하는 것. 묵상은 어슬픈 지도이지만 큰산을 가는 데는 도움이 된다. 관상은 머무는 것이다. 사랑하는 하느님을 찾았는데.. 그자체로 좋은 것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기도이다. 관상을 준비하는 것이 묵상이다. 머물면 관상이다.
 
2011년 1월5 예수회센터장 김병로 라파엘 신부 피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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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관상
꼭 알아야 하는 데...이렇게 하면 된다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 없으며 그런 방법도 없습니다. 묵상이 무엇이고 관상이 무엇인지 알면 그것이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영적인 것은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에 가둬주지 않습니다. 묵상이란? 다음 강의 주제인데 ...주제 찾는 데 살이 빠졌어요...쉬는 시간에 물어보는 용감한 형제님이 있어 ...미사중에 내어 놓으면 주님께서 또 채워 주실텐데...다음에 찾는 자료를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웃음)_
 
묵상과 관상에 대한 비유: (중세 신비가)...
“...불火이 마르지 않는 나무를 태울 때 우선 젖고 두꺼운 나무에서 진한 연기가 나고...눈이 따갑고 불火이 잘 보이지 않고... 연기가 난다. 불火은 안보이고 두꺼운 연기가 엷어지고 그 사이 사이로 불꽃이 보인다.
불火은 계속 타 들어가면서 습기가 말라 가면서 불꽃이 승리한 자 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서...그때 젖어 있던 나무가 따딱따딱 (마치 전쟁의 총소리처럼...)소리가 난다. 불火이 나무 속으로 겉에서 내부로 들어간다. ...
나무에 불火이 점점 타들어 가면서 ...불火의 본질을 주입시켜... 나무가 불火이 되어 간다. (습기가 있을 때는 안되었는데...) 즉 나무는 불火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이 연소가 지속되면서 나무가 불火이 되고...나무가 따다닥 거리지 않고 불만 남아서...오로지 불火만이 고요,침묵안에 타고 있다. 불과 나무가 동화되는 것이다.
이 젖은 나무는 우리의 감각적 마음이다. 성령의 불이 태워야 하는 데 뭔가 가려서 안 보인다. 타지는 과정에 연기를 피해 갈 수 없다. 「」
나무가 불火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절박함, 절실함.
불火이 나(我)를 태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기도」하게 된다. 9일기도 9번...54일 기도...off the record ....제대로 된 기도...
 
 
십자가의 성 요한의
 
‘통나무가 불속에서 타는’ 비유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고통스러운 자아인식은 늘 병행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것을 통나무가 불 속에서 타는 유명한 비유로써 표현하고 있다.
 
나무가 타면 시커멓게 되어 우지직 소리를 내며 터지고 연기가 난다.
 
그리고 옹이와 흠집이 드러난다. 만약 그 통나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불타고 싶어 하던 나의 소망은 실수였어! 나는 처음보다 더 나빠졌어.
 
시커멓고, 추하고, 흠투성이가 되었어. 옛날의 내 모습이 더 나았어”
 
라고 소리칠 것이다.
 
통나무는 영혼이고 불은 하느님이다. 사실 통나무 자체가 전보다 더 나빠진
 
것은 없다. 모든 추한 모습과 흠집은 숨겨져 있던 현실이었다. 통나무가
 
불타오를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통나무인 그대로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개방하고 나타내 보이는 것뿐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외모와는 반대로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한 참된
 
성숙의 표시이다. 그래서 참으로 진보하고 있는 훌륭한 영혼들은 가끔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퇴보하고 있다고 느낀다.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로」
 
 
♣영혼의 밤이니 영혼의 사막 체험이니 하는 것들은 바로 십자가의 성 요한의
 
‘통나무가 타는 비유’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통나무가 타기 시작하면(하느님의
 
사랑의 불길), 연기가 나고 눈물이 나서 앞이 보이질 않고 캄캄한 밤이 되어
 
버립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형체가 시커멓게 그을려 자신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무지의 구름’을 헤매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추하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볼품없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의 시기입니다.
 
이러한 어둔 밤과 고뇌의 사막과 같이 영혼이 메마른 시기는 바로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한 성숙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넘어져서 오히려 퇴보한다는 것입니다.
 
이 좌절의 단계를 이겨내면 하느님의 사랑의 타오르기 시작하여 통나무는
 
없어지고 하느님의 사랑의 불꽃만이 피어나는 최종 단계인 온전한 일치의
 
단계에 이릅니다.
 
그러기에 ‘너무 부정적인 내적 성찰은 오히려 해가 되고 너무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마침내 소심증을 부채질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관상기도 생활의 큰 위험은 기도를 자기 분석과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두려움, 불안, 공포...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한 것을 살펴 봐야 한다. 이것이 되어야 ....성전, 축제의 장소로 가야 한다. 젖어 있어 짙은 연기가 나다 기도가 되는지? 안되는지? 캄캄한 것이 「묵상」이다. 짙은 연기가 나는 나무와 같다. 성경에서 헤매고 찌브러진 아프고 도대체 어떻게 된지 모르고 연기가 점점 사라지고 ...불火(성령)...따다닥 (나의 저항) ...성령이 원하는 데 나를 태워 버린다. 이것을 알 때까지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고꾸러지게 가는 것. 그것이 「묵상」이다. 무질서한 욕망을 태워 버리는 것이다.
 
내용을 찾는 것보다 찾아 가는 데 잘못된 욕망(연기,어두움)으로 타는 것을 멈춰서 안된다. 거기서 포기한다. 그게 태워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묵상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누가 묵상을 아름답다 했는가? (웃음) 타울러도 평생 고통스럽게 모든 것을 다 타버렸을 것이다. 찾아가는 중에 연기가 없어진다. 엉터리가 지도만 달라고 한다.
방법은 다 탈때까지 충성스럽게 불에 타는... 타다닥 소리처럼 ...이 과정을 피해 갈 수 없다. 파브로 곤충기에서 나오는 데 알에서 나와 곤충이 되어 날아가기까지 자동으로 프로그램 된 것을 ...인간이 인공적으로 개입하면 ...나비가 되지 못하고 죽는다.
이 것을 피해 갈 수록 죽는다. 영원한 불火 속에 타는 것보다 낫다. 어려풋 하지만 찾아 가는 중에 어렴풋하게 비추는 그것을 향해 가는 중에 다 타고 ...임종후에 ...영원한 생명으로...
묵상이 되면 자연스레 관상이 된다. 관상은 나무가 불火속의 불火이 된 것과 같다. 관상은 나무가 불火이 되는 것이다.
 
미사강론 1월5일 수요일
예수님은 오천명을 배불리 먹인 후에 일어난 일이다. 군중들을 빨리 돌려 보내었다. 배고픈 자들은 먹는 것을 원하고, 혁명 당원들은 로마를 쫒아내고, 상인들은 파생상품의 왕으로(웃음)...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 줄 아시고 ...빨리 해산시키고...(죄의 현장)를 떠나 기도하러 가신다. 우리들은 죄에 빠진 경우 더 죄를 키운다. 배가 호수 가운데 있고, 맞바람( 더 고통 중)이 불고...지나 가시는데(확신이 안들어..)...배 안에 오시어...나다 두려워마라!
cf) 네가 감독이 되어 장면을 보면서 그것을 흔히 관상이라 착각한다. 한 두번하고 ...영화 보는게 낫지...그러고 관상을 안한다. 참 어려운 문제이다. 이때 묵상을 해야 한다. 도대체 이게 뭐냐? 하고 보다 깊이 들어가야 한다.
오늘 교회에서 독서와 복음을 왜 묶었는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11-18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면 사랑안에 머물러 집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이외는 이제 다른 분이 없다. 온 존재론적 존재 -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믿는 하느님을 찾아야 머문다.
왜? 자캐오처럼 쌍티마sentiment [sɑ̃timɑ̃]
• 1.감정,기분2.의식,자각,느낌3.감성,감상(感傷),애정,사랑 = amour가 되도록 그 과정중에 나의 모습은 바다 가운데... 나를 원하는데 ...지나치고, 유령 같고... 그 풍랑 가운데 ...나는 있습니다. 성경 복음이 겉장면이 아니고, 젖은 나무가 불꽃이 되는 것처럼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죠.
 
묵상은 젖은 나무가 성령에 태워져 불꽃이 되기가 20년 기다려야 성인이 될 수 있다.(웃음)
하느님이 이끄시는 것에 나를 맡겨야 한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실 때에도 바람은 불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받아 들이자 바람이 두려운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정말 두려워 마라! 용기를 내라! 복음을 체험한 경험이 있습니까?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그간 해온 묵상을 돌아 봐야 합니다. 묵상이란 모든 것이 성경대로 들어가는 것이고, 내가 그렇게 타지 않아서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이 하라구! 얼마나 각자 고유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나가는 중에 나의 욕망, 거짓 자아를 태워야 합니다.
이것을 휴즈는 쉽게 나무와 불을 관상하며 그 안에서 신비롭게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것을 어떻게 증거 할 수 있을까요? 마음 안에 있는데 그분처럼 살아 가는 것이 증거가 될 수 있겠다.
무능한 능력 즉 주님이 나를 태우실테니까. 그런데 우리는 과정도 모르는데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데서 기도는 허공과 같고 진공과 같다.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두려움은 벌과 같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머무를 때 젖은 나무(我)에게 말씀(성경)이 머물 때, 젖은 나무(我)가 불(성령)안에 머물를 때...그렇게 태워질 때, 초막 축제는 천막을 치고 또 떠나야 한다.... 초막은 비, 바람 잠시 가리는 것일뿐이다. 영원한 거주는 따로 있다.
친숙해야 보이고 ..보일 수 없는 것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과 친밀함에 대답이 있다.
묵상에 있어 *레골라 피디 Règles de La foi : 어느날 하느님이 눈을 열어 주실 것. 신앙의 규칙(법칙)
“친밀함”=말씀 안의 친밀함. - 그것이 묵상,관상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 ○ ○ ○ ○
 
 
 
 
<< 성 로무알도의 은수처 내부. 이것은 거실에 놓여 있는 탁자인데, 기도하거나 앉아서 묵상을 할 때 사용했던 것 같다. 거실 옆방에는 개인 기도실이 있어서 미사나 기도를 그곳에서 거행하였고, 공부를 하는 작은 방도 딸려 있었다. >>
 
 
<< 내가 머물렀던 은수처인 '성 마르띠노' 내부. 각 개인의 은수처 마다 성인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곳이기 때문에 한 여름에도 난로를 피우지 않으면 상당히 추웠다. 밤새 불을 꺼뜨리지 않고 유지하려면 장작을 많이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은 불씨들을 재로 잘 덮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 때 배웠다.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는 장작 창고에서, 하루 동안 땔 나무들을 도끼질 해야 했다. 불을 피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도착한 날은 까말돌리 수사가 불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다음날 불을 꺼뜨리고 다시 피워야 하는데, 두 시간을 애를 썼는데도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았다. 장작을 아주 잘게 쪼개서 해 보기도 하고, 집 근처의 마른 나무들을 모아다가 불을 붙여 보기도 했다. 종이와 기름먹인 톱밥도 사용해 보았는데, 그 때만 잠시 엄청나게 뜨거운 불꽃이 솟는가 싶더니만 금방 사그라들곤 했다. 그렇게 해서는 장작에 불이 옮겨 붙지를 못했다.
  
오후 3시 반이 지나면 찬기운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불은 붙지를 않았다. 강의록으로 부채질을 해 가면서, 방 안 가득히 들어찬 연기를 참으면서 불을 붙이려 했지만 불은 자꾸만 자기 먹을 것만 먹고는 죽어버렸다. 할 수 없이 저녁 식사 후에 다른 수사님에게 부탁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화로의 문을 닫았다. 그런데........ // 갑자기 불꽃이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마치 송풍기로 바람을 불어 넣는 것 처럼 불꽃이 위로 솟아 올랐다. 화로 문을 닫으니까 화로 아랫부분의 작은 구멍들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위의 굴뚝을 타고 빠져나가면서 엄청난 상승 기류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하도 신기해서 화로의 문을 여니 다시금 불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불을 붙이려고, 입으로 불고, 책으로 부채질 한 것이 다 부질 없는 일이었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내 버려 두었을 때 저절로 더 잘 되었다!! 하여튼 매일 매일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면서, 새로 불을 붙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http://cafe.daum.net/99songsr/Hoqg/35  상백리수도원 안내

평화방송 영성의 향기2 인간의 구원자(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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