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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23일 야곱의 우물- 마태4,12-23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23 조회수485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2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18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23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를 찾아오신 주님을 의식할 수 있도록 저를 일깨워 주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의 유혹을 딛고 시작되는 갈릴래아 전도 (마태 4, 12 – 17. 23) 와 제자들을 부르심 (4, 18 – 22) 을 담고 있습니다. “요한이 잡혔다.” (12절) 는 것은 이제 세례자 요한의 활동이 끝나고, “그때부터” (17ㄱ절) 예수님의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장엄하게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17절) 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첫 선교지는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에 위치한 “가파르나움” (13절) 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태오는 이사야 예언서 8, 23 – 9, 1을 각색해 인용하며 예수님 전도활동의 보편적 구원 의미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5절) 를 선교의 첫자리로 선택하신 것은 그분의 직무수행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민족에게까지 관련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28, 19 참조) ‘갈릴래아’ 는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뒤떨어져 있으며 이방지역과의 접경으로 이교의 위협 속에 있다고 해서 천대받던 도시였습니다. 이교의 영향은 “어둠” 과 “죽음” (16절) 같은 것으로 빛 · 생명과는 먼 거리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은 어둠 속에 “큰 빛이 떠오르는” (16ㄴ절)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구원은 온 세상 모든 이를 향해 열렸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를 받아드리는 데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회개” (17절) 입니다. 세상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을 향하는 빈 마음 안에서만이 하늘나라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에제 36, 26)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따르는 이들은 현세의 시련 중에서도 그분의 공정과 자애로 내적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태 5, 3 – 12)

하늘나라 선포는 제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스승한테서 가르침을 전수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증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신 후에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심’ 입니다. 당시 라삐들은 제자가 스승을 선택했지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4, 19) 고 하시며 당신 친히 제자들을 부르시고 직무를 부여하십니다. 이 직무는 그들에게 익숙한 용어를 빌려 ‘사람낚는 어부’ 로 표현됩니다. 하느님의 일은 나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나 동떨어진 그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머무는 일상의 자리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응답은 어떤 조건이나 물음도 없이, “그물” 과 “배와 아버지를 버려둔 채”, “곧바로” 따라가는 즉각적 순종과 완전한 포기로 이뤄집니다. 성경에서 “따라갔다” (4, 19ㄱ. 22)는 것은 단순한 추종이 아니라 제자가 되어 그분과 운명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능력을 부여받고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하며 그분과 공동 운명체가 되어 그분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마르 3, 14; 마태 16, 24)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어 선택하셨기에 드릴 수 있는 응답이며 소명입니다. (1요한 4, 10ㄴ)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오심을 선포하시며, 그 나라의 모습을 당신 공생활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은 가르침, 선포, 치유로 드러나는데 (23절), 예수님의 치유는 하느님의 통치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포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모두”(23ㄴ절) 에게 베푸신 치유는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을 보여줍니다.

묵상 (Meditatio)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4, 17) 예수님한테서 이미 시작된 하늘나라가 저한테도 시작되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선포는 곧 저의 소명이자 직무일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하느님의 자비로운 통치라면, 하늘나라의 선포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통치가 모든 이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으로만 향하는 이기적 관점은 자신을 가두어 세상에 묶고 맙니다. 사고의 지평을 넓혀 눈길을 밖으로 향할 때, 비로소 이웃을 바라보게 되고 하늘나라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일상 안에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며 부르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귀여겨 듣는 사람만이 그분의 소명을 완성해 갈 것입니다. 문득 하늘나라를 열어 오기 위해 열성을 다하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 이태석 신부님을 생각해 봅니다.

기도 (Oratio)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 (시편 24, 3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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