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친부모와 양부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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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11-01-24 | 조회수613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캐나다의 대표적인 여류 소설가 마가렛 로렌스(Margaret Laurence)의 소설『하느님의 장난(A Jest of God)』은 두 여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중 레이첼(Rachel Cameron )은 34세의 처녀로 초등학교 교사이며 다른 여인은 전업주부로 아이를 돌보면서 사는 평범한 여인이다. 레이첼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아이가 없는 것이 점점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 아이들은 아무도 자신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서 배운 다음, 학년이 바뀌면 다른 선생님에게로 가버린다. 그녀는 무상함을 느끼면서 심한 상실감을 맛보았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를 갖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느 날 전업주부인 언니에게 자신의 이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언니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친 부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자식들도 때가 되면 날개를 달고 둥지에서 떠나며, 친부모든 양부모든 선생님이든 아이들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이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들이 부모가 되도록 선생이 되도록 또는 멘토가 되도록 신부(神父)가 되도록 삼촌이나 숙모가 되도록 맡겨진 데 불과하다. 그들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고 하느님의 소유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자식을 자신의 분신(分身)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되며 덤덤하게 사랑하고 돌보고 인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이며, 우리는 그들의 인도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위안이 된다. 하느님만이 진정한 부모이고 하느님의 그들에 대한 사랑은 우리들의 사랑과 비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걱정을 해도 하느님께서 더 걱정하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는 감동을 주시어 바른 길로 가게 해주신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등을 돌리고 존경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 곁에는 언제나 친부모가 계신다. 요셉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양부모(養父母)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자식에게서 “존경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만 좀처럼 그런 말을 듣지 못한다. 우리들도 조상들처럼 바르게 살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나쁜 악습과 부조리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보’가 되기를 거부하고 살았던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의 시 <패배자들(Losers)>을 인용하고 있다.
레이첼의 입을 통하여 말한다.
“만일 내가 요나의 무덤을 지나게 된다면 거기 멈추어 잠시 앉아 있으리라.
나도 한 때는 어둠 속 깊은 곳으로 빠졌다가 다시 살아 나왔기에.”
레이첼도 요나처럼 어두운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가 그곳으로부터 광명의 세계로 탈출하여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말미에서 레이첼이 애써 기억해내는 “기쁨과 즐거움을 제가 맛보게 해 주소서. 당신께서 부수셨던 뼈들이 기뻐 뛰리이다.”라는 시편(51:10)의 내용에서도 음울한 땅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마음이 기쁨과 희망에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녀는 미지의 땅에서 그녀에게 닥쳐올 어떠한 어려움도 직면할 용기를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용기이다. 요나는 말과 침묵 사이의 갈등을 구현한 인물이다.
그는 니네베로 가서 그곳이 죄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예언을 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탔다. 그가 예언을 하면 니네베는 회개하여 구원을 받겠지만 자신은 창피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큰 물고기에게 먹힌 후 사흘을 보낸 후 다시 살아나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다.
칼 샌드버그가 말했다.
“아이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하느님의 의견입니다
(A baby is God's opinion that the world should go on).”
하느님께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당신을 본받아 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패배자들>
만일 내가 요나의 무덤을 지나게 된다면
거기 멈추어 잠시 앉아 있으리라.
나도 한 때는 어둠 속 깊은 곳으로 빠졌다가
다시 살아 나왔기에.
내가 네로(Nero)가 묻힌 곳을 지나간다면
바람에게 “아무려면 어때, 아무려면 어때!”하고 말하리라.
나는 하찮은 것에 정열을 다 바치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그 잘난 재주를 부렸기에.
나는 신밧드의 무덤도 찾고 있다.
나는 그 유령의 손을 잡고
“우리 중 아무도 그리 빨리 죽지 않겠지?”하고 말하고 싶기에.
그리고 바벨론의 폭군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영원히 잠든 곳에서
바람에게 말하리라.
“당신은 풀을 먹었지만 나는 까마귀를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또는 내년에는 누가 더 나을까?”
나는 잭 케이드(Jack Cade), 존 브라운(John Brown), 제시 제임스(Jesse James)의 무덤에도 잠시 앉아 있으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묘석(墓石)에
“하느님, 모든 훌륭한 패자들을 기억하게 해주소서.”하고 말하고 싶다. 벨로 우즈(Belleau Woods) 전투의 집중 포화 속에서
부하들에게 “영원히 살고 싶으면 빨리 와.”하고 외쳤던 그 상사의 이름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머리에 재를 뿌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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