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27 조회수1,077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Is a lamp brought in to be placed under a bushel basket
or under a bed, and not to be placed on a lampstand?
"Take care what you hear.
(Mk.3.21,24)
 
 
 
제1독서 히브10,19-25
복음 마르4,21-25
 
 
어떤 사람이 어느 유명한 병원에서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명의로 소문난 이 병원의 의사 선생님께서는 폐결핵에 잘 듣는 약과 그 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처방해 주었지요. 워낙 유명하신 선생님이라 이제까지 그 어떤 사람도 이 분의 처방전과 약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은 달랐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과 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폐결핵이 낫지 않는 것은 물론, 어리석은 바보 같은 사람이라면서 사람들의 놀림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말을 믿고 따라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들 역시 이렇게 어리석은 환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과 힘을 선택하면 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또한 마지막으로는 영원한 생명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방법과 힘이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는 많은 성인 성녀들의 선택을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인 성녀들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 세상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방법과 힘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만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만 이야기합니다. 왜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나에게 주시냐고 주님을 원망하고만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주님의 사랑 가득한 선물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는 당연한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역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선택을 당연히 해야 함을 분명하게 제시해주십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남한테 주는 것이 아깝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과 아쉬움 속에서는 사랑이 열매 맺기 힘듭니다. 대신 선행과 나눔이라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행하는 지극한 정상인인지, 아니면 이 세상 것만을 소중하게 여김으로 인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지를 묵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일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이다. 다음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기다리는지, 돌아보지 않고서는 짐작할 수 없다(무라카미 하루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사람의 잘못 여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 남을 깎아내리면 자기가 올라간다고 착각함.
 
둘,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일로 걱정함.
 
셋, 어떤 일을, 자기가 이룰 수 없으니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함.
 
넷, 대중의 편견을 생각 없이 따름.
 
다섯, 생각의 발전과 진보를 무시하여 독서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아니함.
 
여섯, 다른 사람에게 자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함.
 
정말로 우리들은 이러한 잘못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나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요. 내가 중심에 있기에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주님도 이 가운데 함께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옛날, 바른 나라의 왕이 참된 나라 왕의 초대를 받아 놀라갔습니다. 참된 나라의 왕이 자기 나라 풍습에 따라서 다가와 뺨에 입을 맞추려 하자 바른 나라의 왕은 질겁했지요. 모르는 사람끼리 입술을 갖다 대는 것은 바른 나라에서는 불결한 행동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른 나라의 왕은 자신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신사중의 신사라는 사실을 증명할 생각으로 참된 나라 여왕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슬슬 어루만졌습니다. 왜냐하면 이 행동이야말로 바른 나라에서는 “댁의 아내가 참으로 아름답고 건강하구려.”라는 칭찬이었거든요.
 
하지만 참된 나라의 왕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노발대발했지요. 왕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선전 포고를 했고, 바른 나라와 참된 나라의 전쟁으로 숱한 사람들이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다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이러한 잘못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주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등불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두는 것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연한 진리를 쫓으라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에 세움으로 인해서 진리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에 세워서 진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었는지요? 이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잘못들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의 잘못 여섯 가지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합시다.
 
 
 
 
 
The Emotion Of Love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