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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28 조회수941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1월 28일 금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토마스 데 아퀴노) 사제 학자 기념일
 

 
"What is the kingdom of God like?
To what shall we compare it?
It is like a mustard seed which, when sown,
is the smallest of all the seeds scattered upon the soil.
But once sown, it grows up and becomes
the largest of the plants in the garden
and even grows branches so big
that the birds of the air can take shelter in its shade."
(Mk.4.30-32)
 
 
제1독서 히브10,32-39
복음 마르4,26-34
 
 
어느 책에서 본 들인데요. 마귀가 유혹할 때 다음의 네 마디 말을 쓴다고 합니다.

첫째, “이 정도는 괜찮지 뭐…….”
 
둘째, “딱 한 번인데 뭐…….”
 
셋째, “내일 해도 돼.”
 
마지막 넷째,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데 뭐…….” 


놀랍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들이 평소에 자주 쓰고 있는 말이며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우리들이 마귀의 유혹을 평소에 자주 당하고 있으며, 또한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마귀의 유혹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해야 합니다. 화가 헤리 리버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1905년 29세 때 단돈 6달러를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평생 장사로 돈을 모았지요. 그리고 77세에 은퇴하여 여유 있고 조용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노인 클럽에 나가 한가로이 체스 상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봉사원이 그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체스 상대가 오시지 않는 것 같군요. 거기 그냥 앉아 계시지 마시고 화실에 가셔서 그림을 한번 그려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리버맨이 당황하며 말했지요..

“내 나이가 올해 77세요. 그런데 어떻게 그림을 그린단 말이오?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붓 한번 잡아본 일이 없다오.”

“뭐, 어떻습니까? 무료하실 텐데 한번 가보시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그 후 그는 10주간 그림지도를 받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이 팔십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오늘날 여러 미술관의 벽에 걸려있을 뿐 아니라, 그림 수집가들이 계속해서 그의 그림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미술평론가들은 리버맨을 가리켜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이라고 극찬하고 있지요.
 
만약 리버맨이 현실의 편안함에 그냥 안주했다면 그러한 극찬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아니 자기 자신에게 숨어 있는 재능을 발견할 수는 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비유를 들어 말씀해주십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자라는 씨앗과 같다고, 그리고 아주 작은 겨자씨이지만 땅에 뿌려지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서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게 한다고 하십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하느님 나라는 저절로 커진다는 의미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없다면 씨앗이 자랄 수 있을까요? 또한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가꾸는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삶을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이 하느님 나라를 더욱 더 커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모습은 하느님 나라를 크게 만들고 있을까요? 아니면 또 다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느님 나라를 허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그래야 밝은 미래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 사장이 집을 나오면서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회사에 나온 사장은 상무를 불러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집에서 못한 화풀이를 하면서 사장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당하고 있을 상무가 아니겠지요. 자기 방으로 돌아온 상무는 부장을 불러들여 별 것도 아닌 것을 사장에게 당한 식으로 분풀이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부장이 과장한테 호통을 쳤습니다. 그리고 과장은 대리에게 화를 냈습니다. 대리는 맨 끝자리에 앉은 직원을 향해 왜 오늘 청소가 이 모양이냐고 삿대질을 합니다.
 
말단 직원이라고 해서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렇다고 화를 풀 대상도 없고, 결국 퇴근해서 아내에게 트집을 잡습니다. 집 안에 있으면서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무엇을 했느냐고 대리에게 당한 그대로 앙갚음을 했습니다. 아내 역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기르고 있던 고양이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담과 담을 넘어가며 처량하게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때 잠자리에 든 사장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고양이의 소리에 신경질이 났습니다.
 
‘웬 고양이가 저렇게 쳐 울어!'
 
그렇다면 사장의 잠을 못 재우게 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아랫사람에 쏟아내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써 대해주었다면 아마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결국 돌아서 자기에게 더 큰 피해로 다가온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있는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모두 다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할 것이 없으며, 나에게 있어서 모두 의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작은 것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이 겨자씨를 지난 성지순례에 가서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정말로 자그마한 씨더군요. 코딱지보다도 조그마한 씨가 커다란 나무로 성장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이 세상 안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씨가 커다란 나무를 일구듯이, 아주 조그마한 것도 소중히 여기면서 최선을 다해 생활할 때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에서 커다란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인 하느님 나라는 바로 우리의 곁에서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작은 것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빠다킹 신부님의 서품 기념일입니다
많은 기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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