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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30일 야곱의 우물- 마태5,1-12ㄴ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30 조회수457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1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 12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이여, 저의 길을 밝히시어 제 영혼을 빛으로 채워주소서 !

세밀한 독서 (Lectio)
오늘 복음은 산상설교 (마태오복음 5 – 7장) 의 진수인 ‘참행복’ 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5, 1 – 2) 를 산상설교의 배경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에서 ‘산’ 은 하느님의 계시가 이루어지는 장소 (17, 1; 28, 16) 로 모세가 호렙 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베푸시기에 ‘산상설교’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시자 옥좌에 좌정하듯 ‘자리에 앉으시어’  절대적 권위로 가르치며 율법의 참뜻을 밝히시는데, 그 가르침의 대상은 ‘군중’ 입니다.

행복선언에서 ‘행복’ 의 근거는 “하늘나라” (3ㄴ. 10ㄴ절) 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가치를 압도하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당신 백성에게 베풀어질 것이 ‘행복하다.’ 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대상이 되는 것일까 ? 병행문인 루카복음 (6, 20 – 23) 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을 대비시키는 반면, 마태오는 내적 가난을 받아들여 윤리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참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의 가난과 품행에 따라 (5, 3 – 9), 그리고 박해와 (5, 10 – 12) 관련되어 나타납니다.

마음은, 단순히 육과 구분되는 ‘영’ 만이 아니라, 인간의 중심으로 인격의 원천입니다. 전인격을 드러내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 “마음이 가난” (3절) 하다는 것은 어리석은 부자처럼 세상의 재물에 자신의 생명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루카 12, 16 – 21)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께 희망을 둔 겸손에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늘로 채워져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 하느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며, 두 마음을 품지 않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 입니다. (8절; 시편1, 1 – 6 참조) 맑은 호수가 산 그림자를 비추어 내듯, 깨끗하고 단순한 마음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깨끗한 성품은 다른 품성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온유함, 자비로움” (5. 7절) 을 겸비합니다. 이들은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서도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한테서 약속의 땅을 받았듯, 이들은 이웃과 더불어 이뤄가는 이 땅에서 “새 하늘, 새 땅” (묵시록 21, 1) 에 대한 주님의 약속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슬퍼하는 사람들” (4절) 은 왜 행복할까 ? 그들이 지닌 상황, 곧 가난이나 슬픔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을 눈여겨 보아주시고 그들의 유산이 되어주시리라는 믿음, 곧 최종적 위로의 근거를 하느님께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올바른 관계를 최고 가치로 여기며, 이웃과 평화를 이루고, 하느님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완덕을 이뤄가는 사람들은 “의로움” (6ㄱ절) 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더불어 자신들이 이뤄가는 사랑의 길 때문에 “흡족하며” (6ㄴ절) 행복합니다.

행복선언은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 (10절) 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예수님께서 “의로움” 과 “나 때문에” 를 동일시하며,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11 – 12절)  의로움을 위한 고통은 하늘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의로움을 행하는 그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삶에서 때때로 경험합니다. 또한 의로움의 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참행복’ 은 우리가 지니는 의로움에 기초해 종말론적 구원에 맞추어져 있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3절) 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10 – 12절) 이 수미상관 (Inclusio) 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처해도 그리스도인 삶의 궁극 목표는 ‘하늘나라’ 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참행복의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는 그분께 바라고 희망하며 그분을 따르는 올곧은 삶만이 참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시편 1, 1 – 6 참조)

묵상 (Meditatio)
“행복하여라.” (마태 5, 3) 하시는 예수님의 선언은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여정인 동시에 우리한테 하시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의 길을 따라갈 때 그 길은 하늘나라로 이어지고, 그곳에 이르는 이정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주님의 약속에 충실하고자 내가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되새겨 봅니다. 가난한 마음과 온유, 그리고 자비와 평화가 나와 내 이웃을 행복하게 했는지, 이 모든 것에 앞서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하고자 했는지 …. 하지만 내가 어떤 처지에 있다 해도 내 앞에 계시는 예수님의 손을 잡을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이정표인 동시에 동행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Oratio)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시편 128, 1. 5)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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