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월 31일 월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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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1-31 | 조회수1,085 | 추천수19 | 반대(0) 신고 |
1월 31일 월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 마르코 5,1-20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둘 수 없었다.”
<어제의 나를 거두어가시고>
언젠가 단골 이발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따라 늘 면도해주시던 자매님이 안계셨습니다. 그 대신에 ‘상당히’ 연세가 있으신 할아버님께서 어울리지 않게 하얀 가운을 입고 면도사 역할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 앞 사람한테 면도하시는 폼을 봐서 할아버님은 ‘초짜’ 알바가 분명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차례 때 저는 무서워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시는 것이 영 서투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세가 있으셔서 면도칼을 쥐신 손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그런 할아버님께 얼굴을 맡겨드리고 있노라니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안 그래도 만만치 않은 얼굴인데, 칼자국이라도 하나 더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머릿속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꼬마 때 들은 이야기, 어떤 이발소에는 무서운 이발사가 있다, 그 이발소의 특징은 사람들이 들어가기는 하는데 나오지는 않는다, 그 이발소에는 지하실이 있고, 어느 순간 이발의자가 자동으로 바닥이 밑으로 꺼져버린다...
오늘은 가난한 청소년들의 사도이자 저희 살레시오 회원들의 사부이신 성 요한 보스코(혹은 돈보스코)의 축일입니다.
돈보스코께서도 어느 날 저와 비슷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돈보스코가 사제로 서품된 지 2년 정도 지난 때,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던 1943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머리를 깎으러 단골 이발소에 가셨던 돈보스코는 거기서 한 어린 소년을 만납니다. 당연히 그 소년은 갓 이발소 일을 시작한 왕초보였습니다. 바닥이나 쓸고, 이발 도구를 정리하고, 겨우 면도를 위한 비누칠 정도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 소년이 돈보스코의 얼굴에 비누칠을 하기 위해 다가왔습니다.
“친구야, 네 이름이 뭐지? 나이는 몇 살이고?”
“카를리노예요, 열 한 살이고요.”
“좋아 카를리노 비누칠을 잘 해다오. 아버지는 안녕하시냐?”
“돌아가셨어요. 엄마 밖에 안계세요.”
“저런, 저런, 가엽구나.”
대화가 오가는 중에 카를리노는 비누칠을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돈보스코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를리노, 어디 가니? 면도를 해줘야지. 자, 이제 용기를 내고 면도칼을 가져와서 내 수염을 깎아다오.”
그 순간 주인이 깜짝 놀라서 달려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맙소사, 신부님! 이 아이는 초짜예요. 아직 면도를 못하지요. 그저 비누칠만 하는 아이랍니다.”
돈보스코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언젠가는 이 아이도 면도를 시작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내게 시험 삼아 한번 해보게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겁니다. 자 카를리노, 용기를 내거라!”
카를리노는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 돈보스코의 수염을 깎았습니다. 사실 돈보스코도 카를리노가 면도칼을 턱 주변에 댈 때에는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세게 깍은 곳도 있었고, 몇 군데 작은 상처가 나긴 했지만 카롤리노는 면도를 끝냈습니다. 돈보스코는 긴장으로 얼굴이 잔뜩 경직된 카롤리노를 향해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했다. 카롤리노! 이제 우리는 친구니까 자주 나를 만나러 와주길 바란다.”
나중에 카롤리노는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오라토리오에 들어오던 날 돈보스코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보다시피 난 가난한 신부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게 빵이 단 한 조각 밖에 남지 않는다하더라도 난 그걸 너와 나눠 먹을거란다.”
그 후 카롤리노는 훌륭한 살레시오 회원이자 돈보스코의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반자가 되어 50년간 오라토리오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보스코는 당시 어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길거리 청소년들에게 다가섰습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억압과 죄와 고통의 족쇄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들을 해방시켜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돈보스코는 그들 안에 깃들어있던 가능성을 눈여겨보셨습니다. 끊임없이 그들을 격려하고 지지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펼쳐놓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 때문에 죽을 고생을 다하고 있는 한 사람을 치유하십니다. 더러운 영의 활동으로 인해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 못하고 무덤가에서 살았습니다. 더러운 영이 활개를 치기 시작할 때 마다 그의 영혼과 육체는 처참하게 망가져갔습니다.
이토록 비참한 삶을 견뎌내던 그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십니다. 그를 사로잡고 있던 더러운 영을 몰아내십니다.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시며 새 삶을 부여하십니다. 그가 지니고 있었던 태초의 아름다움을 회복시켜주시며 새롭게 출발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어제의 나를 거두어가시고, 새로운 나를 선물로 주십니다. 지난 날 내 삶을 휘감고 있었던 어둠과 슬픔의 자취를 말끔히 거두어가시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해맑은 하늘을 선물로 주십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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