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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나라 대헌장" - 1.3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31 조회수491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1.30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스바2,3;3,12-13 1코린1,26-31 마태5,1-12ㄴ

 

 

 

 

 

"하늘나라 대헌장"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아야합니다.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지 못하면 앞으로도 살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 하늘나라의 행복을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게 바로 세상에 태어난 목적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왜 당신은 지구에 왔는가?’묻는다면

‘하늘나라의 행복을 살기위해서’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하늘나라의 행복을 사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얼마 전 춥지만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뜻한 날에 써놓은 글을 나눕니다.

 

 

 

“날씨 춥지만

  행복하다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뜻하기에

  세상 어렵고 힘들어도

  행복하다

  영혼은 맑고 마음은 따뜻하기에

  이 행복 너는 모를 거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때 하느님을 사랑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입니다.

영혼은 맑고 향기로우며 마음은 따뜻하게 빛납니다.

하느님이 주어라면 우리는 목적어입니다.

우리가 주어라면 하느님은 목적어입니다.

주어와 목적어의 관계 속에 있는 하느님과 사람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I love you).”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느님의 고백이자

하느님을 향한 우리 사랑의 고백입니다.

이래야 주님과 사랑의 일치요 행복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짝사랑하지 않으시도록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부단히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너를 희망한다(I hope for you).”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느님의 고백이자

하느님을 향한 우리 희망의 고백입니다.

이래야 주님과 희망의 일치요 행복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혼자 희망하지 않으시도록

우리도 하느님을 희망한다고 부단히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I believe in you).”

 

우리 모두를 향한 하느님의 고백이자

하느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래야 주님과 믿음의 일치요 행복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혼자 믿지 않으시도록

우리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부단히 고백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기대수준은 이렇듯 높습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희망하고 믿는 하느님이십니다.

이에 응답하여 우리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고 희망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운명적 관계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주어 없는 목적어 없고, 목적어 없는 주어 없듯이

하느님 없는 우리 없고, 우리 없는 하느님은 없습니다.

시편 저자의 고백에 공감합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 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시편18,2).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깨달을 때

저절로 솟아나는 사랑의 고백, 희망의 고백,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우선적으로 찾아야 할 분이 우리의 목적어인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찾을 때 비로소 생명과 빛과 희망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방향이자 중심입니다.

하느님 방향을, 중심을 잊어

방황이요 혼란이요 복잡한 삶이요 정력과 시간 낭비입니다.

하느님을 찾을수록 단순 소박한 삶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제자리입니다.

하느님을 찾을 때 안정과 평화입니다.

주님을 찾으라는 스바니야 예언자의 간곡한 호소입니다.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결국 주님을 찾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의로움을, 겸손함을 추구하다보면

의로움과 겸손함의 뿌리이신 하느님께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하늘나라를 찾는 구도자의 본질적 삶에 충실할 때

사람과 돈 등, 부수적인 것들은 저절로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6,33-34ㄱ).

 

찾음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찾아 만날 때

비로소 말 그대로 구도자 인생이요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삽니다.

진선미 하느님을, 신망애 하느님을 닮아,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사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을, 하느님 나라를 사십시오.

 

하느님을, 하늘나라를 찾을 때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지 못하면

절대 언제 어디서도 하늘나라를 못삽니다.

하늘나라를 찾는 우리에게

주님은 고맙게도 하늘나라를 살라고 대헌장을 선사하십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

인도의 성자 간디 등 무수한 성인성녀들이

다음의 하늘나라의 대헌장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부단히 하느님을, 하늘나라를 찾을 때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삽니다.

참 행복의 선물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맙게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삶이 바로 하늘나라의 삶입니다.

그 삶의 열매가 바로 참 행복의 열매들입니다.

가난한 마음의 겸손, 슬퍼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순수한 마음,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삶입니다.

이런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나라를 선사 받습니다.

여러분의 하늘나라 삶의 점수가 얼마나 되는지

한 번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100점 만점으로 하여 기본 점수 20점에

진복팔단의 8개 항목을 항목 당 10점 씩 하여

각 항목 당 점수가 얼마나 되는 지 합산해 보십시오.

하늘나라 삶의 점수가 나올 것입니다.

평생 시험입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미완성의 하늘나라입니다.

평생 하늘나라를 살면서 하늘나라 삶의 점수를 높이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을 닮아 갈수록 높아지는 점수입니다.

 

 

 

하느님을 자랑하십시오.

 

자랑하고 싶은 것은 사람 누구나의 본능입니다.

사실 남 비판하고 험담하는 것 보다는

자랑하는 것이 훨씬 피해도 적고 죄도 가볍습니다.

얼마 전 찾아 본 팔불출의 뜻이 재미있었습니다.

팔불출은 본래, 8달 만에 태어난 아이 즉 여덟 달 동이라는 뜻인데,

팔 푼(八分)이라고도 하며,

매우 어리석거나 좀 모자란 사람을 일컫는 말로,

첫째는 제 잘났다고 뽐내는 놈,

둘째가 마누라 자랑이고,

셋째가 자식 자랑이라고 합니다.

넷째는 선조와 아비 자랑을 일삼는 놈이고,

다섯째는 저보다 잘난 듯싶은 형제 자랑이고,

여섯째는 어느 학교의 누구 후배라고 자랑하는 일이며,

일곱째는 제가 태어난 고장이 어디라고 우쭐해 하는 놈이다.

여기 팔불출에 해당되지 않을 자 어디 있겠습니까?

삭막한 세상 팔불출이란 말을 듣더라도

이런 자랑 거리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자랑거리 빼놓으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지요.

 

과연 여러분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저는 마누라 자랑, 자식 자랑은 없어도

간혹 수도원 자랑, 수도형제들 자랑, 제 자랑을 하니

영락없이 팔불출입니다.

그러니 이건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아주 작은 자랑이고

저에게 최고의 자랑은 하느님 자랑입니다.

이 강론도 결국은 하느님 자랑에 속합니다.

사실 하느님 자랑하는 기쁨에 살아가는 여기 수도승들입니다.

제가 가끔 인용하는 서강대학교의 모토입니다.

‘서강’ 대신에 저는 하느님을 넣어서 읽어보면

자신이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 참 좋습니다.

 

“하느님 그대의 자랑이듯이, 그대 하느님의 자랑이어라.”

 

우리가 부단히 하느님을 자랑할 때 우리 또한 하느님의 자랑이 됩니다.

하느님의 자랑스러운 자녀로서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유지에 하느님 자랑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 자랑할 때 비로소 팔불출에서 벗어납니다.

신명나게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하여 매일 평생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을 자랑하는 여기 수도승들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알고 보면

모두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기에

그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아야합니다.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 못 살면 앞으로도 못삽니다.

하늘나라를 살라고

주님은 당신 친히 실천하신 하늘나라 대헌장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하느님을 사십시오.

끊임없이 하느님을, 하늘나라를 찾을 때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만나 하늘나라 대헌장을 따라 살게 됩니다.

하느님을 자랑하십시오.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로 하느님을 자랑할 때

하느님을 닮아 온유와 겸손과 자비의 마음이요,

참 행복한 하늘나라의 삶입니다.

매일 주님의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하늘나라의 행복을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행복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여러분!

  하늘나라가 여러분의 것입니다.”(마태5,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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