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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11 조회수978 추천수1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He put his finger into the man’s ears
and, spitting, touched his tongue;
then he looked up to heaven and groaned,
and said to him,
“Ephphatha!” (that is, “Be opened!”)
And immediately the man’s ears were opened,
his speech impediment was removed, and he spoke plainly.
(Mk.7.34-35)
 
 
제1독서 창세기 3,1-8
복음 마르코 7,31-37
 
어제 교구청에 있는 어떤 신부의 화난 목소리를 전화 통화를 통해 들어야만 했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 화를 내는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서야 오해가 있었음을 그것도 사람의 말 때문에 생긴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교구청 신부들과 점심식사 때 오후 3시쯤 볼링을 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총 3명이 함께 가기로 했는데 평소에 볼링을 좋아하는 신부가 생각나서 다른 신부가 직접 연락을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3시에 하기로 한 약속이 2시로 1시간 앞당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락하기로 했던 신부가 다시 전화 통화를 한 뒤에 나왔는데, “그냥 셋이서 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저는 저희는 아무런 부담 없이 볼링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3시쯤 그 신부에게 전화가 왔는데 화를 내는 것입니다. 왜 자기는 빼놓고서 볼링을 치러 갔냐는 것이었지요. 저는 “그냥 우리끼리 치라면서?”라고 이야기했지만 자기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답니다. 결국 나중에서야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화를 낸 신부는 2시 말고 “그냥 3시에 치자.”라고 말한 것인데, 전화를 걸었던 신부는 “그냥 셋이서 치라.”고 들은 것입니다.

빨리 말하면 비슷한 발음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경우는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조금 틀린 글자 하나 때문에 커다란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생신이신 할머니께 손자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답니다. 그런데 이 문자메시지를 보신 할머니께서는 노발대발하시는 것입니다. 손자는 화내시는 이유를 도저히 몰랐습니다. 손자는 분명히 [할머니 오래 사세요.]라고 적어서 보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할머니의 휴대전화에 찍힌 문자메시지는 이러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오래 사네요.]

한 글자를 잘못 쓴 것이지요. 하지만 그 잘못된 글자를 통해서 의미가 전혀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의 말이란 불안하고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말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고 들은 것만이 진실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부족하고 나약함으로 인해 진실과 가장 멀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참 진리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이신 주님께 철저히 의탁했을 때에만 우리 역시 진리의 길에 들어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시지요. 왜 그럴까요? 부족한 인간의 언어로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세상에 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지금의 상태로는 세상에 하느님을 제대로 증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체험을 했다고 예수님의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부족한 말로 떠들어대는 경박함을 저 역시 가지고 있었음을 반성하면서, 이제는 내 뜻이 아니라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길을 밝혀 주는 등대가 될 수 있다(송석구).




조급할수록 정수를 둬라(‘행복한 동행’ 중에서)

‘한없이 느린 호흡, 화려하거나 번득이지 않고, 눈앞의 실리보다는 천천히 자신만의 페이스를 집요할 정도로 유지해 나간다.’

바로 절제의 승부사, 이창호 9단을 설명하는 문구다. 상대의 번개 같은 스피드에 말리지 않고 느릿느릿한 그만의 스타일로 대국에 임하듯이, 절제된 수로 바둑계의 고수가 된 이창호. 이 9단은 어렸을 때부터 전투적이거나 살벌한 수는 여간해서 단행하지 않았다. 수를 자랑하고 싶어 몸살이 날 나이인데도 그는 꾸준히 자제하고 판단하여 급전을 피했다.

특히 그의 절제됨의 미학이 발휘되는 지점은 궁지에 몰렸을 때다. 실리에서 뒤처지면 초조해지기 마련. 하지만 이 9단은 태연히 때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추격에 성공하곤 한다. 뒤처질 때마다 조급함에 그만 강수를 던지거나 옥쇄(깨끗이 죽음)를 하고 싶은 충동이 없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누구나 괴롭듯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가도 초조하지만 뒤에 처지면 더욱 초조하다. 그러나 불리하다고 해서 강수를 던지는 것은 억지일 때가 많다. 고통스럽더라도 정수를 두며 기다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낫다. 고통과 초조함 대신 오직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Little Com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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